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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쌓이는 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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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12-01 16:05

권순욱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내가 살던 낙동강 상류에는 유달리 풀꽃이 많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그 풀꽃을 따서 강물에 띄워 보내며 들찔레 새순을 꺾어 먹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이웃에 초등학교 선생 한 분이 계셨다. 어린 내 눈엔 그분이 늘 우러러 보였다. 강마을, 농촌에서 태어나 비범한 재주도 없을 것 같아 소년 적 꿈이래야 고향 초등학교 훈장이 되어 풀꽃처럼 사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어려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 했다. 그 때는 읽을 책도 많지 않았지만……집안 형들이 주는 어떤 책은 의미도 모르면서 그래도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나에게 책에기록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영역 밖의 일로 생각되었고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러러 보였다.
 
세월이 한참 지나 나에게도 드디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내 나이 칠순을 바라보던 어느 날 남은 세월을 좀 더 보람을 가지고 살고픈 마음에서 에버그린 아카데미를 섬기면서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추천으로 문인협회에 수필로 등단하며 마침내 내 인생의 큰 나무같은 분을 만나게 되었다.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바로 그분이셨다. 매주 토요일이면 습작한 글을 가지고 목사님 댁에서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피쉬버거와 커피를 시켜 놓고 몇몇분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때로는 자신 없어하는 나에게 목사님은 ‘수필은 나이 먹음의 문학’이라시며 지금이 수필을 쓸 때라고격려해 주셨다. 약 일 년을 목사님과 함께 했던 세월 속에서 나름 애쓴 가운데 마침내 나의 수필이 ‘순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 (사)한국문인협회에 등단하게 되었다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으로 머물면서 또 다른 인연중에 하나는 심정석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내가 처음 심선생님을 만난 것은 1982년 5월 이곳 한전지사(당시 석탄과 우라늄 수입이 주 업무)로 발령을 받은 때였다.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당시 심섬생님께서는 교회학교 6학년인 아들의 담임을 맡아 봉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해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 day)을 맞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우리 가족들만을 초정하여 맛있는 turkey 구이를 대접하셨던 것이다. 당시 심선생님께서 UBC 대학 교수로 계셨고 사모님께서는 같은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고 계셨다. 그 후 심선생님께서는 Alberta  Edmonton 대학으로 옮기시고 나는 3년의 임기를 끝으로 다시 한전 본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후 1987년 밴쿠버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심선생님과는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2006년 나의 장로 은퇴식을 하던 자리에서 21년만에 심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심선생님께서는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를 거치면서 나와 심선생님은 서로가 은퇴후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옛정을 다시 찾게 된것이다. 연이란 참으로 끈끈한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마침 심선생님 께서도 밴쿠버 문협에 등단하시어 지금은 함께 수필을 쓰며 남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우리의 삶을 통해 심선생님과 나는 지난 45년의 세월 속에서 3번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 어찌 보통의 인연이겠는가?
 
어느덧 내 나이 인생의 늦은 오후가 왔음을 의식하게된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 진다. 지나온 세월보다 남은 삶이 더욱 짧아 보이는데도 풀릴지 않고 알쏭달쏭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어렸을 때엔 초연히 흘러가는 물 섶에 피어나던 들플의 아름다움처럼 더 자유롭고 더 조용하고 그러나 깊은 사색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 때의초심으로 돌아가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일 것만 같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기때문이다. 때로 한숨이 나오거나,그리움으로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나를 위로하는 것은 결국 글이다.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인생의 모습을 돌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 이 문학의 본연임을 강조하시던 영원한 스승 늘샘 반병섭 목사님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립기만 하다. 반목사님은 이미 안계시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남은 삶과 글의 인연을 이어갈 심박사님이 나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들풀 언덕에서 찔레를 껶으며 초등학교 선생을 꿈꾸던 어린 소년이, 노년이 되어 문향에 젖어 글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지난 20년의 세월이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된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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