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제용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 말한다.
마치 인생의 모래시계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기울어져 모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아직 모래시계의 윗부분이 가득 찬 채 천천히, 그리고 지루할 만큼 느릿하게 모래알이 떨어지던 시절 —
나에게 그 시절은 바로 10대였다.
국민(초등)학교 시절의 하루는 끝없는 여정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는 그 작은 꿈조차, 마치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가는 바람처럼 멀고 아득했다.
시간은 정지된 물처럼 고여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답답함을 삼킨 채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리던 시간 속에서도 여름방학만큼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재빠르게 사라졌다.
어릴 적 시간은 그렇게도 모순적이었다.
10살에서 20살까지의 10년은 길고 넓은 평야와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나는 언제쯤 스무 살이 되어서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며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 고희가 넘어선 자리에서 시간을 뒤돌아보니, 그 길고 긴 평야는 순식간에 지나쳐버린 한 장의 풍경화처럼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세월은 내 곁을 천천히 지나가는 듯 보였으나, 결국 긴 여정을 한순간에 휘감아 버린 바람이었다.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
달라진 것은 시간의 속도가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였다.
물의 흐름을 바라보면 끊어진 적 없는 한 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끝없이 흩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물방울의 움직임일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도 결국 마음속에서 조각나고 이어지는 감각의 연속이다.
어릴 적 나는 세상의 모든 사소한 신비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던 아이였다.
주전자에서 쏟아지는 물이 왜 ‘쪼르륵’ 하고 여러 겹의 소리를 내는지, 그리고 잠자리의 눈은 왜 그렇게 큰 채로 몸 옆에 달려 있어서 앞과 뒤를 동시에 바라보는지,
나는 그런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끝없는 수수께끼였고, 시간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긴 기다림이었다.
그 시절 나는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시나리오 작가도 되고 싶었고, 예술가도 되고 싶었다.
심지어는 만화 속에 나오는 독수리 5형제처럼 지구를 지키는 상상도 해 보았다.
어린 시절의 시간은 그렇게도 넉넉했고,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현실 속을 걷다 보니, 시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모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아돈다.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늘 짧고 빠르게 지나가지만, 목표가 흐릿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무겁고 느리게 흐른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고 말하면서 네 시간 자는 잠도 아꼈다고 했다. 이처럼 확고한 목표를 가진 사람의 시간은 숨 가쁘게 달리고, 그 흐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조각해 나간다.
반면 목표를 잃은 사람에게 시간은 길고 지루한 길목이 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개미를 보며 배우라고 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의 삶 속에는 ‘시간을 미루지 않는 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닮아서, 손으로 붙잡아 둘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이 유한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몫을 건져 올린다.
누군가는 그 물결 위에 배를 띄우고, 누군가는 그 흐름 앞에서 멈춰 선다.
그러나 결국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속에서 흘러가는 물결과 싸우고 있고, 해가 기울어지는 속도와 경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공평하게 주셨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선택이고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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