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코다리의 추억

양한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1-14 16:30

양한석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캐나다 사람에게 연어가 국민 생선이라면 한국인에게는 명태가 그러하다. 이전엔 명태가 흔하여 보통 서민들의 식탁을 독점해 왔지만, 언젠가부터 그 자리를 뒤로 물러설 만큼 요즘 우리나라 근해에서 명태잡이는 수월하지 않다. 마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여 각종 아날로그 장비와 절차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이젠 동해안 명태잡이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알다시피 지금은 러시아산이나 일본산에 의존하여 소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대중적인 고등어에는 고작 "간고등어" 라는 이름 외엔 다른 어떤 이름이 없지만 명태는 수많은 별칭을 갖고 있다. 생태, 동태, 황태, 노가리, 북어 등등... 여러 명태의 이름 중에 코다리는 색다른 어감을 느끼게 하며 어떻게 이런 코믹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찾아보았다. 아가미와 내장을 뺀 명태에 코를 뚫어 서너 마리씩 한 줄로 꿰어 매달아 반 건조가 되도록 꾸덕꾸덕 말렸다고 해서, 다시 말하면 코를 꿰어 달아 매어 반쯤 말린 것이라 하여 코다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완전히 건조된 북어와 달리 촉촉함이 남아 있어 훈제된 생선처럼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진득하고 매콤한 양념이 뿌려진 조림이나 찜 요리에 좋은 이유는 반건조가 되어 푸석푸석했던 살이 단단해지므로 맛의 농축 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의 입맛을 돋구는 별미 음식이 되어왔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명태를 무척이나 즐기셔서 자주 밥상에 명태로 만든 음식이 올라왔다. 동태국을 드실 때면 어두일미라고 살 부위는 안 잡수시고 머리만 세밀히 발라 드시곤하여, 식사를 마치고 나면 국대접에 수북이 머리 발린 잔뼈들이 고봉밥처럼 쌓였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생선 살 한 점이라도 더 먹이게 하시려던 아버지의 감추신 사랑인 줄 몰랐다. 해체된 머리뼈에서 전투기 모양을 닮은 형태를 들고 비행하는 소리를 내며 철없던 장난도 생각났다. 먹다 보면 머리 부분에서 항상 이빨 같은 하얀 돌 두 개가 나오는 것이 궁금했다. 이것은 부레와 달리 생선이 헤엄칠 때, 균형을 잡아주는 묘한 구실을 한다고 알아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유난히 마른 북어를 쭉쭉 찢어 술안주 삼아 고추장에 찍어 드시길 좋아하셨고, 또한 어머니는 북어채 무침을 매콤새콤하게 무쳐주셨다. 그 중, 가장 좋아하신 것은 코다리조림이었다. 갖은 양념이 듬뿍 들어가야만 해서 어쩌다 가끔 만드셨다. 어머님이 만드신 코다리조림은 무어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감칠맛 나는 밥도둑이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의 손맛이 들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다들 똑같은 재료를 썼는데, 도무지 어머님의 그 맛은 흉내낼 수가 없었다. 비법을 전달해도 미묘한 차이가 감춰있기에 어머님표 코다리조림은 영영 재현 불가능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가끔 그 맛이 그리워서 주된 양념의 포인트를 기억하며 시도해 보지만, 매번 그 맛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신토불이의 손맛이던가, 살아계실 때에 자주 뵙고 솜씨를 물려받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가만히 명태라는 생선을 생각해 보면 이름도 다양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많은 조리법과 아울러 이만큼 우리 생활 문화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은 생선도 없다. 한국인이 지닌 정서와 취향에 잘 어울려서 그런 것 같다. 한류성 회유 어종이자 심해어로 그 맛이 비리지 않고 담백하며, 생선 살은 풋풋하나 덤벼들지 않고 국물 맛이 시원하다. 북어는 막대기처럼 완전히 건조된 모양이 흡사 망자의 몰골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덕북어"란 이름 아래 무속에도 쓰여 왔으며 한편 귀한 제사상에도 올랐다. 그런가 하면 개업한 가게 출입문 위에 하얀 무명 실타래로 묶어진 시커먼 북어를 걸어두어 악귀를 쫓는 역할도 했다. 심지어 두들기는 방망이 같은 구실도 했다. 혼례를 마치고 친구들과 모여 신랑을 매달아 뒤풀이를 가지면서 신부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때 신부가 노래를 안 부르거나 멈칫멈칫하면 매달은 신랑의 발바닥을 향하여 아프도록 북어 막대기로 내려쳤다. 신랑이 아프다고 호소하면 놀란 신부는 얼른 노래를 불렀다. 그 때 들었던 신부의 수줍은 노랫 소리가 잊지못할 평생 추억거리가 되곤했다.

  지금은 전부 수입산으로 국민 생선의 소비를 감당하지만, 한 때는 명태의 조업이 왕성하여 출항만 하면 만선을 이루는 시절이 있었다. 정부는 명태 자원 회복책으로 2020년부터 대량 양식업을 추진하여 명태 보호 수면을 지정하고 포획 금지 구역의 범위도 넓혀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시 동해안 명태잡이 어장이 되살아 숨쉬길 소망해 본다. 어디선가 동해 바다가 출렁이는 뱃사공의 흥겨운 노래 가락이 들려 온다. 살기좋은 원산이나 구경하다가 뜬금없이 이집트 왕의 미라 처럼 보이는 깡마른 북어가 된 자신을 본다. 어느새 가난한 시인의 친한 시가 되고 쫙쫙 찢겨 그가 마시는 소주 안주가 되어도 좋다고 호쾌하게 외쳐 부르는 우리 가곡 <명태>가 들려왔다. "내 몸은 없어질 지라도 내 이름은 남아 있으리라~ 크 크, 명태~!" 하고 노래가 마쳐질 무렵 나도 모르게 <명태 인생가>를 지어보았다.

명절이나 제사 후 먹는 생선전은 부드러운 십 대에
어린 노가리 구워 소주를 마시며 친구와 수다떨던 이십 대에
곤이와 이리가 들어간 매운 알탕은 삼십 대에 먹고
콩나물과 무 숭덩숭덩 썰어 끓인 얼큰한 동태찌개는 사십 대에
용대리 덕장에서 해풍으로 얼고 녹고 말린 누렁이 황탯국은 오십 대에
양념 듬뿍 매콤달콤 구수하게 찌고 졸인 코다리찜은 육십 대에 감칠맛을 알고 
아가미와 내장으로 창란젓, 명란젓으로 짭조름 밥맛은 칠십 대에
명태 순대 장만하고 삭힌 명태 식혜로 고명 만들어 냉면과 비벼 먹는 
팔십 대가 어느덧 와 있고, 말린 껍질 벗겨 돌돌 말아 튀각도 하고 볶아도 보니
이제 더는 맛 볼 것 없는 구십 대여라...명태~!

  명태의 조리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굽든지 찌든지 말리든지 끓이든지 얼마나 서민의 일상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지...머리부터 내장, 말린 껍질까지 그 용도를 말하면 명태로 해가 뜨고 명태로 해가 지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싶다. 예전엔 명태의 간이라 하는 "애"에서 기름을 짜내어 등잔 기름으로 사용했고, "애"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세상을 밝히는 생선이니만큼 밝을 "명"자를 넣어 명태라는 이름이 당연히 생긴 것이라 짐작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마지막 남기는 말 2026.08.21 (금)
변호사와 마주 앉아 마지막 갈 날을 준비한다 잿빛 머리로 가는 해지는 날이 아니라 불쑥 찾아올지 모를 위험 같은 그날을 위함이다네가 없는 독백의 말들이 하얀 상자 속에 나란히 눕는다임박한 죽음이 빚어내는 절정의 드라마도 가슴 할퀴는 울컥함도 없는 빽빽하게 줄 선 말들의 유희 그 마지막 마침표 아래거기가 종점이다익숙하지 않은 죽음 앞에 마지막 글자로 선명해지는 삶소중한 것들이 말갛게 드러나는 일이다 희극도 비극도...
김영선
유(有, 있음. Being/Existence)와 무(無, 없음, Nothingness)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평면적으로 생각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찰자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만져서 대상을 감지할 수 있을 때 ‘있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을 때는 ‘없다’라고 한다. 우주공간은 비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상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 실제로 비어 있기 때문이...
심현섭
죽기 전에 서너 번쯤은 한국을 다시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방문이 계속 미뤄졌고,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엇보다 아내가 두 차례 큰 수술로 쇠약해져 장시간 비행이 어려웠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둘째 딸과 사위가 큰 결심을 했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을 예약해 준 것이다. 요금은 일반석의 거의 네 배에 달했지만, 덕분에 180도로 젖혀지는 좌석에서 편히 앉고, 눕고, 업그레이드된 기내식을 즐기며...
이현재
백작약 꽃 2026.08.20 (목)
울 엄마 시집오던 그 길에 백작약 꽃꽃잎은 하늘 보고 하얗게 수줍음 띤저 멀리 뭉게구름 순백 향 꽃잎 싣고흰 치마 바람결에 나비로 날아올라그 꽃잎 고웁게 따서 백작약 꽃 수 놓아한평생 고달픈 인생 하염없이 닦았네
강애나
2026년 5월 27일 9시, 트왓슨 페리 터미널에서 빅토리아섬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도산 안창호 함 공개초청>;을 받아 견학 가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 도산 안창호 함은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 수주전을 앞두고 캐나다 서안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입항했다고 한다. 캐나다 해군의 환영 행사가 끝난 뒤, 교민들을 초청하여 도산 안창호함과 그 잠수함을 호위하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해 온 대전함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심현숙
김희성/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는 긍정적인 태도와 에너지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협력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며,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 모두 낯설었다. 그때 이웃들이 보여준 작은 친절들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김희성
장경숙/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쌓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먼지 쌓인 서랍처럼 오래된 기억들이 스르륵 쏟아진다누군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무엇을 버려야 할까무엇을 남겨야 할까엉킨 실타래 같은 삶 속에서 손끝은 자꾸 주저한다겉으로는 반짝이는 도자기 같은 하루들그러나 안쪽은 오래된 나무 탁자처럼 균열이 가고한 번도 쓰이지 않은 채시간의 녹이 스민 물건들만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과욕과 허세, 사치라는 이름의 쇠사슬로나를...
장경숙
곰의 겨울잠 파티 2026.08.07 (금)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날, 실버우드 농장 친구들에게 곰이 보낸 초대장이 도착했다.숲속 겨울잠 파티에 초대해!맛있는 음식과 잠옷을 챙겨 친구들과 함께 와!언제: 첫서리가 내리는 날부터 첫꽃이 필 때까지어디서: 실버우드 숲속 큰바위 동굴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꼭 알려줘!개는 초대장을 보자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우와!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실컷 자는 파티라고? 우리 함께 가자!” 돼지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윤경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