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쿠션 언어

정성화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1-14 16:29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가르치는 학생으로부터 나의 말투에 대한 불만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말에 너무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답을 하는 편이라서 무안하고 서운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내가 정말 그랬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학생은 내 말을 흉내 냈다. “안 돼”, “그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등. 그 말들은 쌀쌀맞고 공격적으로 들렸다. 어떤 상황에 대해 빨리 의사를 밝히려다 보니 상대방을 미처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부드럽게 전해지도록 하는 게 ‘쿠션 언어’다. 벽에 기댈 때 쿠션이 있으면 훨씬 편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테면 ‘미안하지만’ 또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라는 말로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이해는 됩니다만, 저는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쿠션 언어의 역할이다.
쿠션 언어가 상투적이거나 가식적인 말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말이란 낱말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다. 말할 때의 표정, 어조, 몸짓까지 함께 전해진다. 진실한 마음으로 ‘죄송합니다만, 양해해 주신다면, 괜찮으시다면 ’이라고 한다면 상대방도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이 들면서 신뢰가 생길 것이다.
쿠션 언어에 농담을 곁들이면 더욱 효과적이다. 남편은 종종 밤샘 근무를 하고 이른 아침에 퇴근한다. 그리고는 기절한 듯 잠이 들어 너덧 시간을 내리 잔다. 그날 아침에도 그럴 줄 알고 잠시 은행에 다녀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덜거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남편이 화난 표정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기고? 애들도 낮잠 자고 일어나서 엄마 없으면 우는 거 모르나?”
황당한 얘기였다. 이럴 때 강대강으로 가면 시끄러워진다.
“아이구. 당신이 놀랬구나. 나는 이제 당신이 더 큰 줄 알았지.”
나의 조용한 반격에 그는 더 말이 없었다.
말이 거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의 말투를 닮기가 쉽다. 채소를 아무리 부드럽게 데쳐도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질겨 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경향은 특히 유치원 아이들에게서 잘 드러난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주 소리를 지르게 되면 아이도 은연중에 따라 한다. 유치원 선생님이 제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선생님에게 “선생님, 나가”라고 소리 지른 아이 얘기를 들었다. 거친 말을 쓰는 아이 뒤에는 더 거친 말을 쓰는 부모가 있게 마련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옳은 말이지만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그런 의미다. 좋은 화법을 가진 사람은 다소 껄끄러운 말이라 해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전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자신의 문제점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평가와 조언과 충고를 할 때일수록 말에 예의와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쿠션언어가 필요할 때다.
낯선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있을 때, 침묵이 길어지면 불편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때 상대방이 가벼운 농담이라도 건네 오면 반갑고 긴장감도 풀린다. 상황에 맞는 농담 한마디는 멋진 언어유희다. 어떤 토론회에 다녀온 뒤 그날의 주제는 어렴풋한데 비해, 그날 들은 농담 한마디는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농담도 쿠션 언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대략 오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 나의 경우, 말로 인한 영광보다는 말에서 비롯한 오해와 다툼과 갈등이 훨씬 더 많았다. 간간이 지난날 나의 말실수를 떠올리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 주로 배려 없이 내뱉은 말 때문이다.
바둑을 둘 때 바둑 알도 허투루 두지 않듯이, 말도 ‘둔다’는 느낌으로 한다면 나의 언어생활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7월 27일. 6·25 한국전쟁이 정전(停戰) 또는 휴전(休戰)한 지 벌써 73주년이 된다. 1960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에선 주인공인 북한 인민군 반공포로(反共捕虜) 이명준이 남한이나 북한을 택하지 않고 제3국, 중립국을 택해 인도(印度)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닷속에 빠져 사라진다.   인도로 해항(海航) 중에 세상을 떠나는 이명준과는 달리 휴전협정 다음 해인...
김정남
세월은 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지난 76년의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문명이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와 세상을 바꾸어 놓은 시대였다. 때로는 그 변화가 너무 빨라 숨을 고를 틈조차 없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지난 반세기 남짓한 시간의 변화는 수천 년의 역사보다 더 놀랍고 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동네 한가운데 놓인 라디오 한대는 마을 사람들의 귀였다. 한 집에서 뻗어 나온 전선이 집집마다 연결되어...
김유훈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날버스 정류장 새들이 말을 건다 나는 왜 새들은 노래하거나 슬피 울거나 두 가지만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고목의 껍질을 헤집어 찾아낸 벌레들을 새끼들 입 안에 넣어줄 때는노래 아닌 어떤 말을 할 것 같은데 아기새들 둥지에서 떠나보낸 후엔이 숲에서 저 숲으로 떠돌며슬픔 비슷한 어떤 말을 할 것 같은데 멍에를 다 벗고 난 후제 먹이를 찾아 날아오를 힘마저  없을 때그때서야...
윤미숙
눈 감은 동공에 밝음이 느껴지고 더워진 방 안 온도에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삐질 난다 땀이 장판에 붙어있는 뺨에 흥건하여 몸을 일으키니 쩍 하고 떨어진다   창 모양의 햇살이 네모지게 방바닥을 지나 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는 벽을 향하여 직각으로 꺾어져 올라간다 뺨에 묻은 땀을 훔치고 눈 부신 햇살 밖으로 나오니 뜻밖의 어느 여자가 눈앞에 보인다   잠에서 막 깨어 기분 좋게 만드는 건 개운함이 아니고 가끔 누나에게서 났던...
방기호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나는 종종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강들을 떠올린다. 넓은 대양을 떠돌던 장성한 연어들이 제 몸을 붉게 물들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이곳 북미 서부와 캐나다 서부 해안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태평양에는 저마다의 빛깔과 특징을 지닌 다섯 가지 종류의 연어가 있다.   가장 웅장한 몸집으로 연어의 왕이라 불리는 킹(King) 연어, 은빛 날렵한 몸매로 물 위를 힘차게 도약하는...
김호정
「선교는 만남」   선 하신 부르심 따라 길을 나서니 교만했던 나는 낮아져 사람 곁에 서고, 에워싼 세상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한 영혼의 하루를 같이 살아낼 때, 님이 그 삶 한가운데 빛으로 드러난다.   말기 직장암 선고를 받았던 그해 겨울, 나는 삶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한창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호흡하고,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며 교수라는 이름으로 왕성하게 살아가던 50대 초반의 나. 그런데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심정석
마음의 불꽃 2026.07.17 (금)
매일 찾아오는 상상의 가지에 매달려있는 사연 낙옆되어 하나 둘 세상에 구르면   한아름 주어모아 마음 한 복판에 불을 지핀다   피어나는 하얀연기   내음마다 향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불꽃 되어 춤을 춘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생각을 빚어내어   타오르는 가슴에서 거듭되는 고뇌의 퇴고를 거쳐 부족한 한구절 백지를 메운다.  
리차드 양
새벽공기는 항상 신선하다.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며 잠들었던 능력을 깨우는 순간이다. 새로운 하루를 탐구하며 이윽고 맞게 될 삶의 희열과 축복을 기다리는 시점이다. 때로는 비 오고 바람 불어 생각지도 못한 어둠이 찾아오지만, 그 또한 내일의 새벽이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발 끈 고쳐 메고 다시 먼 길 나설 수 있어서 좋다.   내 나라 아닌 땅에서 오랫동안...
이원배 심사위원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