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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러너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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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10-17 15:44

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런데이 (Runday)’ 모바일 앱을 실행 시킨 후 운동화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집을 나선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내게 익숙한 동네이지만 차로 지나다닐 때와는 다른 풍경처럼 느껴진다. 내 얼굴을 가르며 스치는 바람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게 만든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는 집을 지나거나, 운좋게 멋진 노을 빛 하늘을 보거나, 둥근 보름달을 보면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핸드폰 카메라에 풍경을 담아내기도 한다. 달리기가 끝난 후에 내가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달린 거리와 날짜를 캡쳐해서 카톡에 인증사진을 올린다.

   내가 가입한 ‘아보하 러너스’ 커뮤니티에서는 ‘연희동 러너’라는 책을 읽고 난 느낀 점을 기록하는 책읽기 인증, 달리기를 하고 사진을 캡쳐해서 올리는 러닝 인증, 달리기를 주제로 매 주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답하는 주간답변 인증을 해야하는 세 가지 미션이 있다. 내가 달리기에 대해 새롭게 재미를 붙이고,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계기가 되었다. 아이디도 저마다 자기가 사는 동네 이름에 ‘-동 러너 누구’ 로 이름을 붙이게 하는데, 내 아이디는 ‘밴쿠버 러너 폴’로 정했다. ‘아보하’라는 이름도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줄임말이며,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건없이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뜻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도 이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연희동 러너’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달린 후 인증 사진을 올릴 때, 사진을 캡쳐하고, 텍스트를 삽입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고, 달리기 주제 관련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고,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의 경험이 생각이 난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서 회사내 달리기 대회를 개최했는데, 3 km 정도로 장거리도 아닌데도 숨을 헐떡이며, 곧 쓰러지기라도 할 듯이 힘들게 결승점에 들어 왔던 기억이 난다. 물론 중간에 멈춰서 걷다가 달리다가를 반복했었다.  그 전 학창시절 체력장에서 다른 종목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오래달리기 1km 에서만은 만점을 받은 기억도 생각난다. 내가 빠른 스피드로 달리지는 못해도, 꾸준히 내 페이스대로 달리는 먼 거리를 달리는 데는 더 자신이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장거리 달리기의 경험으로는 6번의 밴쿠서 Sun Run 10 km 달리기와 2 번의 BMO 하프 마라톤을 한 적이 있다. 체계적으로 달리기 연습을 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단 기록이 나쁘진 않았다. 올 해 밴쿠버 선런 달리기에서는 58분이라는 기록으로 1시간 내에 들어왔고, 11년 전 첫 번째 밴쿠버 BMO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기록은 2시간 4분이었다. 내 남은 생애에 꼭 한 번이라도 풀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년 2026년에 개최되는 BMO 밴쿠버 풀 마라톤에 등록을 하였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건데 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무언가를 도전하고, 꾸준히 한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라는 책에서 “나는 달릴 때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생각은 저절로 떠오른다.”라고 이야기한다. 달리는 동안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을 하고, 달리기에만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보다는 달리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강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쓰는 작가로 지금까지 글을 쓰는 원동력이 이런 달리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오르막이나 내리막 길과 마주한다. 어느 순간에는 숨이 목에 차올라 멈추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고비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편안해지며 행복함을 느끼는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 인생도 마라톤처럼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 시간들을 함께 하며 견디어 낸다. 마라톤의 결승점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려 완주를 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인생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살아가는 모습이 마라톤과 닮은 점이다. 밴쿠버 러너 폴의 마라톤 완주의 꿈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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