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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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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09-26 16:19

정효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부회장
    내가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이번 출장 다녀오면, 사람을 부르자. 우리가 하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아.” 나도 짧게 답했다. “ 알았어.” 이렇게 답하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우리 집 뒷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무화과나무가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고목이 되어있었다. 열매는커녕 새순 하나 돋아나지 않은 지 두 해가 지났다. 한때 푸르고 울창했던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시커멓게 썩은 커다란 뿌리가 땅을 뚫고 나와 시멘트벽조차 허물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어 뿌리를 포함한 나무 전체를 제거해야 할 상황이었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고목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꽃밭을 만들어 무화과나무를 추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이십여 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주변이 산과 바다로 어우러져 고즈넉한 동네에 햇볕이 잘 드는 뒷마당은 마치 농장처럼 갖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었고, 마당 한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무화과나무는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고 있었다. 이사 후 뒷마당을 잔디와 꽃밭으로 예쁘게 가꾸고 무화과나무를 가지런히 정리하여 내 키만큼 맞추었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크고 무성해 제법 넓은 그늘이 나무 밑으로 드리워졌다. 여름철이면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보거나 낮잠을 즐기곤 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나무 그늘 밑에 가 있으면 고민은 사라지고 답답함이 해소되는 쉼터가 되었다. 때로는 나무 끝에 올라 열매를 따며 하늘을 쳐다보며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무화과나무는 내가 사랑하는 반려 목이 되었다. 나의 반려 목은 매년 꿀처럼 달고 맛있는 무화과 열매를 직접 딸 수 있는 수학의 기쁨도 안겨주었다. 무화과는 돼지고기 요리에 들어가면 잡내를 없애주고 깊은 단맛을 내어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변신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었다. 무화과에 치즈를 얹고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살라미나 프로슈토를 곁들어 만든 카나페에 내 영문 이름을 붙여 ‘토마스 삼합’이라 칭했다. 레드 와인에 토마스 삼합의 조합은 낭만적인 파티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매년 친지들과 뒷마당에서 토마스 삼합 무화과 파티를 열었고, 달콤한 무화과를 예쁘게 포장해 선물을 건네는 나눔도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반려 목과 나의 인연은 어느새 이십여 년이 흘렀다.


   무화과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무척 빨라서 매해 두 번씩 가지치기해야 했다. 늦가을과 봄에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그다음 해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자라 관리하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즈니스가 바빠지면서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자주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나무 관리는 나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해 내가 여름 내내 집을 비우고 돌아오니 무화과나무는 무질서하게 자란 나뭇잎과 줄기로 뒷마당 담벼락의 반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나무를 본 순간 답답한 마음이 앞서 온종일 가지를 마구 잘라버렸다. 사실 나무를 가꾸려면 어느 정도 가지치기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무작정 가지를 자르다 보니 나무 높이의 절반 이상을 베어내고 말았다. 이후 또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었고, 돌아오면 또 가지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대비해 아내에게 새순이 나면 무조건 다 잘라버리라고 당부하였다. 내가 잘라놓은 나무의 크기만큼만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내는 무화과나무의 새 가지가 자랄 만하면 매번 가지를 쳐냈고,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나무는 점점 키가 작아졌다. 그래도 그해 역시 열매를 많이 수확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는 작아진 나무 그늘에서도 나름대로 독서와 낮잠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해부터 갑자기 무화과나무가 시들시들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가 하나둘씩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바쁜 일상에 쫓겨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이렇게 나의 반려 목은 무관심 속에서 애처롭게 죽어가고 있었다. 멋있게 드리워진 그늘로 쉼터를 제공해 주었던 몸체는 점점 흉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이 와도 새순이 나지 않는 고목이 되어버렸다. 그 달콤했던 열매 역시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회생할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나의 반려 무화과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기로 어렵사리 결정하였다.


   몇 개월 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날, 무화과나무 생각에 곧장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황량한 고목 주변에 푸룻푸룻한 작은 가지가 나무를 완전히 에워싸고 있는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고목의 뿌리에서 가늘고 긴 청록의 가지들이 대나무처럼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혹시 이 나무가 스스로 살아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방법을 정원관리사와 상담하고 유튜브를 찾아가며 나무 살리기에 매진하였다. 휘어진 가지는 끈으로 묶어 똑바로 자랄 수 있도록 고정해 주었고, 잔가지 중에 개중 굵고 건강한 가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깨끗이 정리하였다. 잘린 가지 부위에는 목초액을 발라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듬뿍 주며 여름내 정성을 쏟아부었다. 고맙게도 점차 여린 가지들은 굵게 잘 자라 어린나무로 건강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새 작은 열매가 하나둘씩 맺기 시작하더니 뜨거운 햇빛 아래 마침내 큼직한 무화과로 익어가고 있었다. 너무 기쁜 마음으로 매일 나무를 둘러보고 열매의 개수를 세고 또 세어보았다. 비록 예전에 비해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양을 수확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 귀한 열매로 예전처럼 토마스 삼합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자축 와인 파티도 할 수 있었다. 이제 나의 반려 목 무화과나무는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죽어가며 흉물이 되어 버티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가 새 생명으로 살아나 새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무언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전 그 나무 그늘의 편안함을 내년에는 다시 누릴 수 있을지 기대도 해보았다. 나의 반려 목은 이제 다시 내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난 매일 아침 마당에 나가 무화과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안녕! 밤새 별일 없었지?” 말없이 마주 보는 대화 속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제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내 삶의 곁에 함께 하는 친구이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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