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우리가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음직한 “ 정글 북 ” . 그 유명한 책의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 ( Rudyard Kipling: 영국의 소설가겸 시인. 1865년 - 1936년, 1907년 노벨문학상 수상 ) 은 이렇게 말했다 동 (東)은 동이요 서 (西)는 서다. 이 둘은 결코 만나지 않으리라 ( 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rain shall meet. ). 필자는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라는 책의 저자이며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의 창업자인 고 김우중 회장의 말씀을 따라 세상이 좁다 하고 이 세상을 누비던 1970- 80년대에는 키플링의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당시의 일본을 가보면 그들은 이미 서구의 물질문명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는 듯했으며 홍콩을 가보면 그곳에서는 두세 사람 건너 외국인들로, 동서양의 인종들이 뒤섞여 잘 살아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필자가 느낀 점은 홍콩은 이미 “동양 속 서양 “느낌이었으며 그리고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 밴쿠버에서는, 이곳은 분명히 지리상으로는 서양인데, 특정 장소에서는 동양인들이 피부가 희고 눈이 파란 서구인들 보다 더 많이 눈에 띄기도 한다.
1970 - 80년대 홍콩이 이미 동양 안의 서양이었다면 이곳 밴쿠버는 서양 안에 있는 동양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였는지 필자는 이 곳에 살면서도 외국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특별히 없었다. 물론 이것은 이민 온지가 이미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다 바로 엊그제 위에서 언급한 키플링의 동은 동이고 서는 서다. 이 둘은 결코 만나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통감하게 된다.
이야기는 어느 날 로히드몰 근처 어느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주차면이 두 개가 남아 있어 그 중 하나에 주차를 하고 일을 보고 나오니 바로 옆에 주차하였던 흰색 포드 F- 150 픽업 트럭이 차를 빼려고 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런 트럭을 모는 사람은 백인 중산층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때 그는 너무 급했는지 아니면 방심하였는지 후진을 하다 그의 차 뒤 타이어가 필자의 차 후미를 스쳤다. 차 후미에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필자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그 백인 운전자도 그것을 느꼈는지 일단 차를 완전히 뺀 후, 약 20m 정도 떨어진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자신의 차를 들여다보고 난 후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필자는 당연히 서로 사고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것을 본 그 백인 운전자는 알았다는 듯하더니 차를 타고 그냥 가 버렸다. 엄청 화가 났지만 그 차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자에게 바로 옆에 있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친절히 그 흰 차의 플레이트 넘버를 알려 준다. 그런 고마운 사람이 가끔씩 등장한다. 감사를 연발하며 혹시 차량 번호를 잊을까 메모지에 적어 놓고 집에 돌아와 ICBC ( BC주 자동차보험회사) 에 연락한다. 담당자에게 흰색 뺑소니 차 이야기와 그 차량 번호를 이야기해 줄 때는 그런 사람은 벌을 좀 받아야 한다고 기고만장 하기도 했다.
당연히 담당자는 그 차량을 수배해서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ICBC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흰색 F-150 운전자와 통화를 하였는데 그도 사고를 알았고 자기 차를 체크해 보니 아무 상처도 없었으며 또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보낸 손짓이 내 차도 아무 상처가 없으니 그냥 가라는 신호였다고 주장했다고 하였다. 그게 아니고 필자는 분명히 나에게 와서 함께 피해 정도를 확인하자고 보낸 신호였다고 강하게 이야기하니 그럼 다시 한번 그 사람에게 확인하겠다고 한다. 곧 이어 온 전화는 역시 그 백인 남성은 필자가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냥 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고 강력히 주장한단다.
그날 일단 전화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한 행동을 차분히 되짚어보니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그때 내가 그에게 보낸 수신호가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 ( 한국에서는 ) 는 누구를 나에게 오라고 손짓할 때 손등을 위로 향하고 손바닥과 손가락은 아래로 향하고 손등을 수 차례 구부렸다 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똑같이 누구를 나에게 오라고 호출할 때 손바닥을 위로 향해 손가락과 손등을 구부렸다 편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필자의 수신호는 그에게 그냥 가도 좋다고 한 통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 참! 그렇게 수십 년을 해외로 나다니고, 살았으면서도 그 간단한 수신호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다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그래서 그때의 차 수리비용 ( 큰 비용은 아니었다 )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키플링의 말이 맞았다. 이와 관련해서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들어보게 되었는데 이게 의외로 많았다. 역시 동은 동이요 서는 서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교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메트로타운 스카이 트레인 플랫폼에서 일이다. 제법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았던 날이었는데 앞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어 자신이 전동차에 타는 김에 그 휠체어를 밀어주며 함께 전동차를 탔다. 그런데 차 안에서 본 그의 표정은 별로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응당 고맙다는 말을 기대했던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궁금했다. 그 후 우연히 이곳에서 오래 동안 영어를 가르쳤던 분을 만나 위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영어 선생 말은 그 때 그 휠체어 탄사람이 자력으로 오르도록 내버려 두었어야 했단다. 그가 자력으로 해도 안 될 때 또는 그가 도와달라고 말 할 때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좋은 일 하고 욕 먹는 경우인데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들이 서양에는 의외로 많다고 한다.
필자 또한 멕시코의 휴양지 칸쿤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해변에 줄지어 놓인 해변간이침대 ( Beach Cot ) 에는 강렬한 햇볕을 피하기 위하여 필요시 차양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어느 날 햇볕이 너무 뜨거워 차양을 내리니 옆의 침대에 누워 햇볕을 즐기던 영국에서 온 부부가 불평을 한다. 자기네는 햇볕을 쪼이려고 그 먼 영국에서 이곳까지 왔는데, 차양을 치면 자기네는 어떻게 되냐는 이야기였으나 그 속에는 왜 자기네와 상의하지 않고 네 멋대로 차양을 내리느냐는 의미도 읽혔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이미 차양이 드리워진 곳의 해변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햇볕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햇빛이 강한 날 야외 공원에 나가 보면 그늘에 들어가 쉬는 사람들은 필자를 비롯하여 거의 모두가 동양인들이다. 대체로 서양인들은 햇볕 쬐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특히 햇빛이 강한 날 골프장에 가보면 동양 여성 골퍼는 얼굴 전체를 마스크로 가리고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골프를 치는데 반해, 서양 여성 골퍼의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들다. 아니 거의 없었다.
피서라는 말에도 차이가 있다. 동양에서는 피서라고하면 글자 그대로 더위를 피해간다는 의미의 피서이지만, 이곳 서양 ( 영어권 ) 에서의 피서는 <BEAT THE HEAT> 라며 직역하면 더위를 때려눕히다(?) 이며 의역하면 “더위를 이긴다” 로 쓰이고 있다. 재미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키플링은 이런 것 보다 더 깊은 동 서양의 차이를 말했지만 하여튼 모국이 아닌 외국 그것도 서양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이미 23년을 살아온 필자의 느낌이다. 역시 “동은 동이요 서는 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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