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언저리반

정성화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9-19 17:01

정성화 / 캐내다 한국문협 회원
   그녀는 빵빵한 엉덩이를 갖고 있다. 주말마다 다니는 산행을 위해 주중에는 헬스장에서 반나절을 보낸다. 엉덩이가 빈약한 나는 수시로 그녀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부러워한다. 그래도 운동하기는 귀찮다. 엉덩이 근육만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음식은 어디 없을까.
어느 날, 그녀가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둥산 모임에서 반을 바꾸었다고. ‘아니, 등산 모임에 다른 반도 있나.’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정상반’에서 ‘언저리반’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하산 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릎이 시큰거려서 더는 정상반 회원들과 템포를 맞출 수 없더라고 했다.
  언저리반 회원들은 등산 대신 무얼 하느냐고 물으니 정상반이 등산을 다녀올 동안 그 산의 계곡을 둘러보거나 그 산이 품고 있는 사찰을 탐방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상반이 돌아올 무렵에는 시원한 물을 들고 산 아래에서 그들을 맞이한다고 했다. 등산을 못해서 허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날의 산행 장소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즐겁고, 산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가 등산 모임에 들어갈 무렵, 나는 수필 모임에 들었다. 그때 나에게는 가슴속의 답답함을 털어놓을 ‘대나무숲’이 필요했다.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다 빨래를 널며 느끼는 개운함이 덤으로 딸려왔다. 구겨지고 접혀지고 눌려 있다가 빨랫줄에서 제 모습을 찾는 옷가지들처럼 나의 지난날이 하나 둘 내 결렸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것들, 누가 알까 봐 숨겨두었던 일들, 글로 옮기기에 민망한 얘기들을 나는 망설임 없이 ‘수필’이란 줄에 걸었다. 나의 지난날이 너무나 아득하게 떠오르면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언저리반 얘기를 했을 때, 속으로 뜨끔했다. 나야 말로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나의 문학적 감성에 가뭄이 든 지 한참 되었다. 이전에는 돌 틈에 핀 풀꽃 한 송이만 봐도 감탄하며 들여다보곤 했는데 요즘은 더 애처롭게 핀 꽃도 멀뚱멀뚱 쳐다본다. 소재를 찾는 눈에 노안이 왔는지 온통 부옇게 보인다. 게다가 문장까지 내 허리를 닮아 두루뭉술해 졌다. 가까스로 소재 하나를 잡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한 페이지를 채우기도 힘들다. 소재가 시원찮은가 싶어 다른 소재를 잡아보지만 마찬가지다. 수필이 나올 듯 하다가도 금세 사그라들고 마는 이 변비 증상에는 약도 없다.
  “작가란 자신의 전두엽을 부여잡고 무력감과 한심함, 막막함과 싸우다가 어느 날 문장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걸 보았다. 작가라면 누구나 절망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꺾임이 심상치 않다. 수필의 바짓가랑이를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한 초조함을 여우처럼 감추고 남들 앞에서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것도 마땅치 않다.
나의 수필의 한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무래도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데다 나의 역량을 꾸준히 계발하지 않은 탓인 듯하다. 여러 분야의 책으로 간접 경험을 넓히고, 다양한 체험과 문화적 탐색을 꾸준히 해왔더라면 어땠을까. 주로 지난날에서 수필 소재를 가져오다 보니 동종교배의 글이 많았다. 수필은 소재 싸움이라고 하던데, 다양한 소재와 참신한 소재를 찾아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지금 나는 수필반과 수필 언저리반의 경계에 있다. 한때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처럼 독자의 반응에 꽤 신경을 썼다. 잘 쓴 글처럼 보이려고 글에 억지를 부리다 보니 자주 한계에 부딪쳤다. 이젠 독자를 의식하는 글쓰기는 그만두고 싶다. 책상 위에 놓인 인형 ‘못난이 삼 형제’를 본다. 서로 보기만 해도 못난이들은 즐겁다. 못난이들이 행복한 비결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내가 언저리반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수필에 대한 애정과 애착은 그대로다. 수필 등반에 최선을 다하는 수필가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그들이 좋은 작품을 쓸 때마다 박수를 보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일이다.
언저리반이 되어도 나는 변함없이 행복할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꽃은 물과 빛을 따르며최대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선사한다물의 축복 빛의 축복그것은 곧 사랑이 만드는 축복이다물의 시련 물의 반란우리가 알던 이름은 유행가수처럼어느덧 사라져가고  똑같은 이름의 새얼굴이 나타났다사라진 이름의 섭리가 되듯이 꽃도 지고 또 새로운 꽃이 꽃밭에서 축복을 내린다.사람의 시련 사람의 반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물의 반란처럼 미워하고시련을 내리는 것을...
고재권
공통의 기억 2026.04.17 (금)
2월 1일 새벽.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2시경. "아이고 이 불쌍한 것아…. " 거실에서 올라오는 울음소리. 얕게 잠이 들었나 보다. 두 아이도 거실로 모이고 그 마지막 장면을 본 아내의 말을 들었다....
예종희
그리고 싶은 그림 2026.04.16 (목)
 빗살무늬토기를 바라볼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 하나가 있다. 누가 이 질박한 흙 그릇에 처음으로 무늬 넣을 생각을 했을까. 왜 꽃이나 새, 하늘과 구름을 그리지 않고 어슷한 줄무늬를 아로새겼을까.누군가 날카로운 뼈바늘 같은 걸로 그릇 아가리에 첫 획을 긋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감격하여 가슴이 뛴다. 그는 어쩌면 인류 최초의 추상화가였을지 모른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가 들소 그림 같은 사실화인 데 비해 신석기의 빗살무늬는...
최민자
세상은 마치      인정이 오가는 시골 장터 같지만     팔리는 것들 중      우리가 집어 드는 것은     화려한 색갈이 튀고     깨끗이 닦이고 가지런히 진열된     폼 나는 것들 중에서 고르듯     또렷해 져야 뽑히는     치열한...
조규남
그녀가 돌아왔다 2026.04.10 (금)
바이올렛 가의 그린 썸(Green Thumb), 안젤리카가 돌아왔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초콜릿 상자를 골목 식구들에게 두루 나누어주곤 모습을 감춰버린 그녀가 어디선가 겨울을 나고 봄비처럼 돌아왔다. 눈수술을 한 후 자꾸 뒤뚱거린다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그녀가 내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수잔은 얼마나 부끄러웠던가.그녀의 정원은 꽃달력이었다. 이른 봄 크로커스, 스노우드롭이 나즈막이 왔다 가면 동백과 목련에 향그런 웃음이 대롱이다...
김해영
헤르메스의 그릇 2026.04.10 (금)
다리와 다리 사이에 열 일곱 살 애기 초경 같은 빛깔이 어른댄다. 누가 장난삼아 색종이를 끼워뒀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겹겹의 잎 사이 안쪽 한 장이 그 빛깔을 푹 덮고 있다. 볼펜 끝으로 잎을 들춘 순간 아! 숨 막히는 황홀. 누가 볼세라 얼른 잎을 도로 덮어주는데 가슴이 뛴다. 처음이다.​밖에는 눈보라 치고 영하 십 사 도의 혹한에 거실에 들여놓은 화초들은 철모르고 푸르러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잔을 들고 군자란 앞으로 갔다. 말을...
반숙자
아랫말 논 가운데 수백 년 공덕품은미륵의 부릅뜨던 큰눈이 무서워서철마다 기침소리로 공양미를 바친 꽃들 울마다 지천이던 설중매 꽃 향기와골 단추 설기 떡에 벌 나비 날아와서코 박던 매당 마을이 회자되는 봄이다 강변의 미루나무 연록의 새순에도뻐꾹새 뻐꾹 뻐꾹 속 울음을 묻혔고柳淸臣 유세당 골에 낮 달도 따라왔네 숫거리 기와공장 가마터 그을음이돌담에 피는 봄날 벽오동 너른 잎이당 골의 마당 가에서 벽계수를...
이상묵
엄마는 매사에 철저했다. 그리고 당신 나름대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 여덟 식구가 아버지의 군인연금으로 근근이 끼니만 해결하던 시절, 엄마는 아버지 연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늦은 밤에라도 부식가게의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 내일 아침에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의 철저함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민 통장으로도 증명되었다. 세 개의 통장 중 한 통장 앞면에는 ‘장례식...
정성화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