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 박혜정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젊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 세 분 중 한 분이 낚시 도구를 챙기고 계셨다. 그를 본 다른 할아버지가 “낚시 가나?” “아니, 낚시가.” 그 대화를 듣던 다른 한 분이 “나는 낚시 가는 줄 알았지.” 그때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어떤 학부모에게 할아버지들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선생님, 너무 슬퍼요.” ‘그런데, 이 뜻밖에 반응은 뭐지?’
얼마 전에도 한인 슈퍼 앞 벤치에서 할아버지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계셨다. 어떤 분이 이 광경을 보고 “대화가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실 때가 있다. 그럼 나도 무안하지 않으시게 슬그머니 넘어간다.
얼마 전에는 옷을 수선하러 갔는데 연세드신 분들이 옆에 있는 지퍼를 앞으로 옮겨달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왜 멋지게 만든 지퍼 위치를 바꾸어 달라고 하실까?’ 그런데 얼마 전 내 팔이 아팠을 때 이해가 되었다. 또한,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도구가 왜 효자손인지도 단순히 이름이 아닌 의미로도 알게 되었다.
동문회 회장을 할 때 동문들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께 공로패를 수여하기로 했다. 그 중 나이 드신 선배가 상패 대신 슈퍼마켓의 기프트카드로 달라고 하셨다. ‘상패가 길이길이 남아서 좋은데 왜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것으로 달라고 하실까?’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받으신 상패들은 종이가 아니라 태울 수도 없고 처치가 곤란했다. 후손들이 보관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버려야 하는데, 결국은 무거운 쓰레기로 변해버려 쓰레기 통에 넣기도 버겁게 된다. 그래서 짐스러운 상패보다는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더 좋으셨던 것 같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물건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 자식들에게는 의미가 없어서 결국은 버려지고 소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음은 좋지 않다.
아직은 하루가 바쁘고 여전히 일이 많지만, 젊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변신술을 써서 ‘내가 여러 명이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또한, 희망적인 미래가 있는 청소년들이 잘 되어서 캐나다 사회를 이끌고 가는 한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지랖도 많이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바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오지랖도 조금만 부리려고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결국에는 늙어지고 외로워지겠지만, 그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나이들어서는 젊어서 만들어 놓은 넓적다리 근육으로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운동을 해야한다. 요즘에는 휴대폰이나 휴대폰과 연결된 시계에서 목표한 걸음 수가 넘으면 폭죽이 터지고 난리이다. 그래서 시계나 휴대폰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목표한 걸음 수를 넘기려고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이루어야 하는 큰 꿈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 한다. 요즘 줄임말로 많이 사용하는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친구와 나누는 진심 어린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 큰 행복을 안겨준다. 더 이상 거창한 꿈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이가 듦에 따른 지혜와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고 사람도 대한다면 유행가 가사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노후를 준비하고, 대비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간다면, 매력적인 노후, 평안한 노후, 익어가도록 노력하는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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