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부활 병아리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8-15 15:43

김춘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이민 6년 차(1980), 몬트리올에서 쌩로랑 강을 건너 비둘기장처럼 작은 집을 마련하고 살 때였다.
   부활절이 되면 쇼핑몰마다 병아리를 전시하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알에서 갓 부화되어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를 볼 때마다 아이들은 사 달라고 졸랐다. 나는 강경하게 반대했지만, 남편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병아리가 크면 어떻게 할 거냐, 그리고 약 병아리가 되면 닭을 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민 초기라 닭을 집에서 못 잡으면 도살장에 갖고 가면 된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남편의 약속을 받아내고 노란 병아리 다섯 마리를 샀다.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처음 한동안은 병아리가 상자 안에서 잘 자라더니 한 마리 두 마리 죽어 갔다. 결국 팔자가 센 수놈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상자 안에서 자라던 녀석이 몸집이 커지면서 가끔 상자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이들은 병아리일 때는 모이도 주고 예뻐하더니, 병아리가 점점 자라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날도 따뜻해졌기에 녀석을 아예 마당에 놓아길렀다. 수놈은 점점 늠름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머리꼭지엔 발그레 한 벼슬을 달고 목덜미에는 갈색의 머플러를 둘렀다. 꼬리깃도 제법 길어지며 혼자 살아남은 팔자에 상관없이 수놈의 풍채를 자랑하듯 점잖게 마당을 거닐었다.
  어느 날, 새벽 정적을 깨고 닭이 회를 쳤다. 꼬끼오 오! 아니 수탉이 회를 치다니. 그리고 다음 날도 새벽에 또 꼬끼오. 드디어 내가 걱정하던 문제가 찾아왔다. 이웃들의 항의다. 새벽 수면을 방해하니 무슨 조치를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제 약 병아리를 만들 때가 되었으니,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남편은 그날은 피곤하니까 다음 날 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 날 다시 채근했다. 동네 사람들 불평에 체면이 구기니 제발 빨리 닭을 잡아 달라. 잡기만 하면 뒤처리는 내가 다 한다며 졸라 댔다. 남편은 그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이유로 계속 약속을 미루었다.
  나의 인내심이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랐을 때, 남편은 결국 남자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기는 동물을 죽이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 군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군인생활 20년을 어떻게 했을까, 닭 한 마리도 못 잡는 군인이 어떻게 6.25. 전쟁터에서 총을 쏘았을까? 대한민국은 이런 군인에게 보국 훈장까지 주다니. 종알대는 내 소리가 시끄럽다는 듯, 퉁명스레 한마디 내뱉었다. 전쟁터에서 총을 쏘았지만 사람 맞으라고 쏜 것이 아니고 그저 무서우니까 공중에 대고 막 쏘았단다. 하기야 벌레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나는 혼자 말로 내가 어쩌다 이렇게 겁쟁이 군인 아저씨와 결혼했는가. 신세 한탄을 하다가 약병아리 먹긴 다 틀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닭 못 잡겠다는 남편과 아무리 입씨름한들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제안했다. 내다 버리자. 그냥 내다 버리고 오자. 우리는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시골길로 저녁 드라이브를 나갔다. 바람이 불고 구름도 잔뜩 낀 으스스한 저녁이었다. 우리는 드넓게 펼쳐진 들과 드문드문 박힌 시골 농가 주택을 사이에 둔 하이웨이를 달렸다. 남편은 정말 버릴 거냐고 물었지만 차마 내가 기른 녀석을 바람 부는 들판에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을 속 가게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늦게까지 열려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수탉 한 마리를 버려야 하는데 누가 닭 필요한 사람 있을까 하고 나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조그만 동양 여자의 닭 가져가라는 제안에 가게 주인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가슴은 콩콩 뛰었다. 이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 그때 가게에 있던 건장한 중년 사나이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갖고 가겠다며, 내일은 맛있는 치킨 수프를 먹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얼른 차에 가서 닭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와 사나이에게 건네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키다리 포플러 나무들이  몰아치는 바람과 팔 씨름을 했다. 아이들은 서로 포개어 잠들었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다. 나는 휙휙 지나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녀석이 들판에 버려진 것보다는 누군가의 식탁 위에 올라가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한동안 궁핍하게 살았다. 어머니는 뒷마당에 야채도 심고 닭도 길렀다. 어머니는 가끔 손수 닭을 잡았다. 목을 따고 털을 뽑고 그렇게 백숙을 해 주셨다.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어머니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나는 흉내 내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부엌에서 장작불을 지피고, 나는 수탉을 찾아 들판을 헤매는 꿈을 꾸었다. 기른 정이 그리워서였겠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절망 찾기 2025.10.10 (금)
깊숙한 절망을 가벼운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몸속 어딘가에 있을 절망을 한번 찾아보자 울컥하며 자주 발생하는 것이 기관지에 숨었을 거 같기도 하고 오래됀 위장병 모양 음흉하니 소장에 자리 잡은 거 같기도 하고 미열처럼 뜨뜻미지근 하면서 오래가는 것이 이마빡에 박혀 있는듯하고 혹시 그렇다면 수술을 해 봐야지 누가 아나 우뇌와 좌뇌 사이에 엿같이 철썩 붙어있는 그놈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오래 살아서 큰...
박락준
물아리 2025.10.10 (금)
"물아리에 우렁이 잡으러 가자!" 지금은 안 쓰지만, '물아리'는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있는 단어였다. 빗물에 의지해 벼농사를 짓던 시절, 비가 오면 논두렁 안쪽을 진흙으로 꼼꼼히 발라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었다. 그렇게 갇힌 빗물이 찰랑이는 논을 '물아리'라고 불렀다. '아리'란 순 한국말로 '물' 또는 '그릇'이란 의미가 있었다. '항아리'에서 '아리'가 그릇을 의미하듯, 논이 그릇이 되어 물을 담았으니 '물아리'인 거였다. 그런 물아리...
박정은
가을 금관 2025.10.10 (금)
1.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라 금관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나는 한 그루 황금빛 나무를 연상했었다.박물관 유리 진열대 안에 들어 있는 천년 신라 유물들은 대개 시간의 침식에 못 이겨 퀴퀴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망각 속에 덩그렇게 놓여 있었지만 금관만은 어둠 속에서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빛깔로 너무나 선연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 천년 신라를 말해 주는 촛불처럼 느껴지기만 했다.나는 우두커니 이 천 년 신라의 황금빛...
정목일
불갑사의 상사화 2025.10.10 (금)
영광 불갑사에 꽃무릇이 핀다산문을 들어서자 고요한 숲길마다 붉은 물결이 밀려와 발끝에 불빛을 흩뿌린다마치 하늘까지 닿은 불길처럼온 산이 사랑의 기도로 타오른다 비 내리는 오후 법당의 기와집은 촉촉히 젖어 묵언의 수행처럼 무거운 고요를 품고 그 앞마당에선 꽃무릇이 빗방울 이마에 이고 서 있다방울방울 떨어지는 빛은 천년을 참아온 눈물 같아 오직 한 사람을 향한 기다림을 적신다 만날 수 없는 그...
조순배
코스모스에게 2025.10.03 (금)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가녀린 몸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손짓하며저편에서 향기로운 바람을 내게 보내면서 그 바람에 몸을 싣고모든 짐을 내려놓고 나를 오라 부르고 있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질긴 인연은 나를 꼭 붙들고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 기억 뒤편을 돌아보라 하고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마음은 나를 놓아주었다 붙들었다 하면서 바람을 이기고서 견디며 조금만 참으라 하고...
송요상
돈의 단상 2025.10.03 (금)
세계의 돈 60%이상을 움직이는 뉴욕의 중심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는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 곳의 큰 펀드 하나가 대한민국 모든 상장사 전체를 7번씩 사고도 남는 대규모의 자금을 굴리는가 하면 전 세계 주식시장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금융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가장 무섭고 강력한 권력은 전쟁무기가 아닌 돈의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1626년까지 이곳의 주인은 인디언들이었다. 당시 세계 무역의...
자명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외딴 섬의 꿈 2025.10.03 (금)
     여기     근심이 녹아 내리는 곳에 누어     푸른 하늘 속     물든 마음 건져내면     숲 속 나무 내음     물 가 물 비린내     만수우환 꼭 짜서     바위 위에 널어 말리면     쨍쨍한 햇살 내음      그러나     마음은      썰물에 밀려나간     갯가에 묶여 있고     모래바람 날리는...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