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오늘이 그날이다

우제용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7-11 15:58

우제용
   오늘은 아내가 이 땅에 태어난 지 꼭 68년이 되는 날이다.
예전 같았으면 달력에 큰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리고, 별표와 하트도 그려 넣었을 테지만, 오늘 서재 왼쪽 벽에 걸린 달력에는 그런 표시 하나 없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 아내의 생일이 오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놓고 출근하곤 했다.
아내는 아침 잠이 많아 내가 출근한 뒤 에야 일어나기 때문에,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건 아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았다. 
그래서 그날도 내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아내가 혼자 늦게 일어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집에서는 부인의 생일날 누가 미역국을 끓이는지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부인이 직접 끓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하면, 친구들은 "그럼 내가 끓여야 하니, 하면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고 손사래를 쳤다.
어떤 집은 장모님이 끓여 오시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남편이 직접 끓인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아내의 생일에는 직접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고 생각하고 끓였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내가 깰까 봐 까치발로 부엌에 나가 미역을 불리고 조심스레 국을 끓였지만, 제대로 된 맛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유튜브 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 만을 따라 했기 때문에 기대한 맛이 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요리를 거의 해본 적이 없어 서툴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아내가 만든 맛을 닮고 싶었다.
 
어느 해에는, 아내의 생일날 아침에 자고 있던 아내에게 미역국 끓이는 것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다가 “아침부터 귀찮게 한다며"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끓여 먹을 테니 이제 끓이지 말라 ”는 아내의 말에, 미역국 끓이는 걸 그만두었다.
그 뒤로는 미역국 대신 저녁에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를 사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촛불을 끄며 생일을 축하했다.
이 땅에 아내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배우자이자 아이들의 좋은 엄마로 자리를 지켜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선물로는 약간의 돈을 봉투에 담아 건넸다.
아내는 내가 선물을 사는 것보다 봉투에 돈을 담아서 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여성들의 취향에 둔감해서 신혼 초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선물을 준비했지만 아내는 그런 물건보다 실용적인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봉투를 건네는 것으로 정했다.
 
우리가 서울 강동구 둔촌아파트에 살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해 아내 생일날 아침에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고 싶어 베란다에 있는 국기봉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출근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당황한 얼굴로 “오늘이 제헌절도 아닌데 무슨 태극기냐”며 나를 나무랐다.
아파트 주민들이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서 “제헌절이 아닌데 왜 국기를 달았느냐”며, 남편이 날짜를 착각한 것 같다고 말하더란다.
 
우리 아파트는 한 동에 100세대가 살고 있었다. 우리 집에만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으니 눈에 띄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이 당신 생일이고, 우리 가족에게는 국경일만큼 기쁜 날이니 국기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창피하다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아파트에 사는 동안 아내 생일이면 나는 어김없이 국기를 달았다.
이듬해에도 주민들이 묻자 아내는 “남편의 이벤트”라고 답했고, 사람들은 “멋지다”, “우리 남편은 그런 용기 없다”고 하면서 부러워했단다.
“마누라 생일날 태극기를 게양하는 건 미친 짓이다.”라고 했지만, 나에게 우리 가족의 생일은 그만큼 특별했다.
 
오늘도 그때 일이 문득 떠올라 웃음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닭살 돋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겐 생일이 중요했다. 특히 아내의 생일은 더 특별했다.
반면에 내 생일은 늘 무덤덤 했다.
식구들의 관심조차 부담스러워, 미역국이 준비돼 있어도 피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때는 사춘기였던 것 같다. 의미 없는 반항에 매력을 느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엄마와 동생들이 내 생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혼자 멀어졌고 생일날 그 자리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사춘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그런 반항을 시작했었다.
그 시절엔 가족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가족들에게 미안한 행동을 했다. 
그래서일까, 이후부터는 생일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말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부모의 축복 속에 이 땅에 태어난다.
설령 예상치 못한 탄생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는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생일’이라 부르며 소중히 여긴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귀하고 특별한 날이다.
지금 아내는 내 곁에 없지만, 이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생일은 살아 있을 때만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르다.
살아 있을 때나 하늘나라에 가서 지금 내 곁에 없을지라도 아내의 생일은 언제나 소중한 날이고 기억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죽은 사람의 생일은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함께한 날들의 추억은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7월 13일이 되면 아내를 생각하고,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감사한다.
비록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오늘은 더욱 그립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들아 2026.03.27 (금)
탯줄이 우리를 연결해 주고그 고리마저 흔적만 남기고 떨쳐냈지만오묘한 사랑의 영향은 계속 흘러 가고 다리 마디마디 여물어지고가느다란 팔 두터워지는 너를 보며내 가슴속 사랑이 차곡차곡 쌓아 가는구나 영글지 못해 귀여움이 오동통한손등에 달콤한 과일 향 맡으니사랑이 배불러 차오르며 새근새근 잠든 너의 코끝을 마주대면숨소리는 희망을 알리는 알람 되어사랑의 기적을 전달해 주는구나
김윤희
까치까치 설날은 2026.03.27 (금)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할머니 방에 들어간다. 오동나무 반닫이 3층장을 조심스레 연다. ‘이거, 내 색동저고리!’ 손가락을 꼽아본다. 설날까지 몇 날이나 남았나.  동지 지나 섣달이 들면 할머니는 가마솥에 장작을 때 하루 종일 조청을 고셨다. 안방 아랫목이 설설 끓어 콩댐으로 길들인 노르스름한 장판이 탈까 봐 놋대야에 찬물을 담아 이리저리 옮기셨다. “아가”하고 부르시면 나는 냉큼 달려가 장독대 뚜껑을 뒤집어 들고 섰다....
김아녜스
선택은 중요하다 2026.03.27 (금)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선택을 시작한다.일어날 것인가, 조금 더 누워 있을 것인가. 창문을 열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커피를마실지, 물로 하루를 시작할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산다. 그래서 가끔은 삶이 내가 정한 방향이 아니라, 어디선가 밀려와 떠내려가는...
우제용
청개구리 2026.03.27 (금)
예쁘기도 하여라봄 풀 돋아난 마당여가 저기 고운 초록색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청개구리어른 엄지손톱만한 쬐그만 것이윤기나는 작은 나뭇잎처럼파라솔 위에도 제라늄 화분에도 붙어있다열린 현관으로폴짝 아기 신발코에 앉아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꼬리치는 강아지 기척에 놀라포올짝 현관 문 위로 뛰어오르는높이뛰기 선수볼롱 볼롱 턱 부풀리며 숨 할딱인다고놈, 참, 어디서 왔을까?신기하가도 하여라
임완숙
들꽃 2026.03.19 (목)
이름은 알아 무엇하랴 그저 좋은걸 나이는 물어 무엇하랴 그냥 예쁜걸 고향은 또 물어 무엇하랴 아마도 남촌일걸오직 하나 그 예쁜 얼굴로 그 여린 몸으로 왜 나왔는지 이 거친 들판에
늘샘 임윤빈
살면, 살아진다 2026.03.19 (목)
2025년 정기연주회 때의 일이다. 그 해는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을 다녀오자마자 “유엔젤 보이스”라는 한국팀의 초청 공연이 있어 슬퍼할 틈도 없이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공연 팀을 초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프라가 높은 수준이어서 웬만해서는 초청 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이탈리아로 연주하러 갔을 때 초청된 입장에서 보면 이탈리아가 선진국이라는 기대치가...
아청 박혜정
봄에 기대어 2026.03.19 (목)
살면서 줄일 것이 늘어만 간다.많이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추려낼 것 투성이다. 책과 LP를 사 모으는 건 때마다의 즐거움이고행복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더미를 보면 뿌듯했는데 그것도 지금은짐스럽게 느껴져서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전공어로 된 소설책을 이민오면서왕창 처분했다.남긴 책들도 한번씩 더 읽게 된 것 이외는중고서점에 팔고 나눔도 했다. 그렇게 남은 책은 나름 내게 인생...
고희경
봄을 기다리다 2026.03.19 (목)
얼레에 감긴 실처럼길고 긴 겨울더러 추운 몇 날은시린 손 비비며온기를 만들고그래도 몸이 녹지 않으면따뜻한 기억을 불러가만히 껴안고 잤다올 듯 오는 듯하면서도더디기만 한 봄남녘 여기저기에 매화꽃 피워 놓았다는데그 바람 얼른 올라와섬강 뒤덮은 얼음 녹이고언 내 몸에도 온기 나눠 줬으면
정금자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