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이어진다. 여기에선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숲으로부터 오는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켠다.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이 멋진
도심 속의 가로수 길을 이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몇 년간 이용하던 프레이저 하이웨이가
공사로 전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대안으로 1번
하이웨이를 타게 되면서, 이어지는 이 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도로공사로 늘 다니던 길이 폐쇄된다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실망과 짜증이 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그토록 변화를 싫어하고, 늘
하던 관성에 따라 움직이려는 걸까? 길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드라이브 중 나의 마음은 초록으로 촉촉히 물들어 갔다. 물론
공사가 완료되어 이전 길을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예전의 길로는 안 갈 것이다. 지금 이 길이 내 맘에 꼭 들기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까지 오게 된 것도 변화에 저항하며 끝까지 버티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바꾼 때문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일터에서 원치
않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기때문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했던가,
그 동안 마음 속 한 켠에 곱게 접어 놓았던 버킷 리스트를 꺼내 보았다. 젊은
시절 늘 꿈꾸던 ‘외국에서 살아보기 ’였다. 그런데 내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에 다가서고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찌 어찌해서 도움을 받아 밴쿠버에 발 디뎠을 때는 5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이후 알게 된 지인들로부터 ‘이 나이에
여기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 대답은
항상 ‘젊은 시절 나의 로망이었고 버킷 리스트 1호였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루었다.’였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무도 뿌리째 옮겨 심으면 잘 자라기 힘든데, 오래된 나무를 뿌리째
옮긴 것과 같으니 고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겪지 않을 일을, 뒤늦은 나이에 수도 없이 겪었다. 오죽하면 내가 사는 동네에 공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공원이고 이름이 키즈비 파크(Kisbey
Park) 란 걸 인식한 것은, 이 동네 살면서 6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고생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경험한 적 없는 배려하는 마음을 느껴 보기도 했다. 어느 날 늘 다니던 메트로타운의 캐네디언 수퍼스토아에 들렀다. 내가
고른 물품은 땅콩 캔 하나와 미용용품 하나 두 가지 합해서 20불이 채 안되었다. 그런데 내가 계산대에 섰을 때 앞 사람의 카트에는 물건이 잔뜩 실려 있었다.
계산이 좀 늦어 졌지만,
무심하게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계산하려는 데,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거다. 놀라서 다시 물으니, 앞 사람이 계산했다는 거였다. 앞 사람은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나는 ‘아니에요’ 라면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계산한 사람은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을 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기가 너무 많은 물건을 사서 내가 많이 기다렸고, 내 물건은 달랑 두 가지 뿐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같이 계산했으니
좋게 생각해 달라고 한 것 같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감사의 말도 제대로 못한 채,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내가
캐나다에 와서 이런 경험도 해보는구나. 마음이 훈훈해 져서, 나도
이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올랐다. 아쉽지만 아직 실천은 못하고
있다.
여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부터는, 이전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원치 않게 그만 둔 일을 계속하게 해 준다 해도, 그 선택은 안 한다이다.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왔기에 많은
인생 경험을 해 볼 수 있었고, 오늘 내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도 있다고 믿는다. ‘되어도 좋고, 안되면 더 좋다.’란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살면서 한 치 앞을 예측 못 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실패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주저 안게 만들고, 탄식하게 만든다. 궤도를 이탈했다고 느껴 방황하기도 하지만, 돌고 돌아서 다시 서면, 더 큰 원의 궤도를 따라 조화를 이루며 더 큰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 가까운 나이에 외국 살이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예로부터 드물다는 고희(古稀)에 이르렀다. 이 나이는 종심(從心) 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기는 커녕, 귀도
아직 거칠기만 한 상태이지만, 내가 살던 방향과는 다르게 살아 보기로 했다. 의미 있는 일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시(詩) 배우기이다.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눈 딱 감고 클래스에 등록했다. 그런데 클래스 메이트 중 한 분이 80세 라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은
70대 중반에 이민 와서 영어 클래스에 다니다가, 지금은 우리 글과 시를 배우려고 온 것이다. 외모도 연세에 비해 젊어 보였으나, 내면의 열정이 은연 중에 밖으로
비치어 마치 소녀와 같은 느낌을 내게 주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늙어가고 소멸한다. 살아가는 과정, 늙어가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은 다름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을 극대화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낭만적으로
자유롭게 살려면 공부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깨어 있고 굳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내 남은 삶 중에서 제일
젊은 때이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오늘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도 캐나다
웨이를 나와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을 한다. 연 초록 나뭇잎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기쁘게 춤추듯이 내게 손짓한다. 어서 와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라는
듯이.
“괜찮아/걱정 마/다 잘 될 거야/이 세상에서 너란 존재는 단 하나뿐이야/네가 없으면 온 우주도 사라져/어차피 삶은 찰나에 지나가기에,
오늘 이 순간 기뻐하면서 그냥 살면 돼” 잎새를 스쳐 온 바람으로부터
내 거친 귀를 누그러뜨리는 부드러운 속삭임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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