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말의 기운(언어 심리)

이명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5-13 09:17

이명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사람의 본성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이 정설인지, 악담인지 모르겠으나,
머리가 허연 부부로 살기까지 반은 개과천선한 것 같다.
 
 신혼 초 남편은 지-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은연중에 ‘제기랄’, ‘염병할’ 등 감탄사를 내 뱉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왜 그런 말투를 쓰냐고 했더니 현장에서 듣던 욕이 입에 배었다고
미안하다며 바로 고쳤다. 언어의 수난은 수산물 좌판 아줌마의 찰진 욕으로 이어졌다. 서울
새댁의 똑 떨어진 표준말이 시장통 아줌마에게 정이 없어 보였는지 가격을 물었더니 냅다
욕으로 받아 쳐 객지 생활이 녹록하지 않음을 실감했다. 어느 날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입에서도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욕과 우울감은 전염력이 강하다. 나와 성향이 다른 둘째
언니가 ‘너도 어쩔 수 없구나!’라며 비웃었다. 투명한 유리에 파편이 튀듯 나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객지에서 연년생을 홀로 키우다 보니 과부하가 난 것 같다. 남편이 나 한테
깡패가 됐다고 한다. 배우들의 욕 연기가 친근한 것은 감칠맛 나는 욕에서 인간미를 느끼고
대리만족하기 때문이다. 처녀 때는 별명이 ‘매너 리’였는데 12년 객지 생활은 내게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다.
 
 객지 생활과 해외 생활의 역마가 풀리지 않은 채 언니. 오빠들처럼 늙었다. 큰언니가 허리
골절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독자인 아들이 해외에 살아 퇴원 후 돌볼 사람이 없어
전화통을 하루 종일 붙잡고 형제들과 의논하여 병원비와 퇴원 후의 조치까지 해결했다.
언니. 오빠들의 연령대가 칠십 후반에서 팔십 초반이다 보니 육십 중반인 내가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입만 살고, 행동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합심을 얻어내지 못했을
텐데, 소통에 진심이며 이해를 받기까지 최선을 다했던 터라, 신뢰를 받은 것 같다. 형제끼리
오해가 있을 땐 중간에서 해결사 노릇을 했다. 이번 일로 형제들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졌다.
큰언니가 ‘막내야, 수고했다! 네가 중간에서 말을 잘해 해결되었구나.’라며 고마워했다.
 
 젊은 시절엔 조용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말이 많아졌다. 무성 영화의 변사처럼 자리만
펴주면 쉬지 않고 떠드니 형제들도 놀란다. ‘얌전한 애가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따지고
보면 어릴 땐 발언권이 없었고, 처녀 땐 자존심으로 침묵했고, 결혼해서는 맞벌이로 바빴다.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캐릭터가 변한 것 같다. 가르치는 직업 특성상 말이 늘었고, 경우
없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부연 설명을 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맺힌 게 많으면 터트려야
할 물꼬도 많은가 보다.
 
 우둔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한다. 새의 뇌가 작아 본능에 따라 살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곰처럼 느린 사람보다 새처럼 빠른 사람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속으로 곪아 병이 되는
곰탱이보다 ‘나 전달법’의 수다쟁이가 관계를 쉽게 풀 수 있다. 어미 새도 우는 새끼한테
먼저 밥을 주듯이 짹짹거리는 건 자기표현이며 의사 전달이다. 문헌에는 새와 곰의 지능이
설화와 다르다고 하지만 말을 안 하고 속에 담아 두는 건 두뇌 쪽보다 성격에 가깝다. 예쁜
꽃을 보고 탄성을 지르거나, 새와 대화를 나누는 건 감성이 살아 있는 거다. 비경을 보고도
묵언 수행한다면 감성이 막힌 거다. 마음의 병이 들면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과 담을 쌓거나,
반대로 말이 많아지며 감정이 들쑥날쑥하다. 또한 ‘건드리기만 해 봐, 공격에 들어갈
거야.’라는 위험한 태세를 갖춘다.
 
 심리학에서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진 구간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시간은 기억해야 한다. 대화에는 듣기 싫고

거북한 대화도 있는데, 노인이 되면 대화의 핵심은 놓치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며, 자기
말만 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꼬장꼬장한 성미는 융통성이 없고,
속이 단단해서 생긴 기질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내게 귀감을 주는 자서전이었다. 죽음을 앞둔 노령의 작가가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인터뷰할 때마다 말의 권위를 보여주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살아생전, 이어령의 회갑연에서 두 장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TV 상자 안의 말(馬) 그림과
TV 상자 안의 입술(말 言이 터지는 통로) 그림이었다. 말(言)이라는 무기를 들고, 말(馬
)달리는 자가 이어령이었다.’ 작가는 죽음 앞에서도 한점의 흐트러짐이 없이 과거, 현재의
삶을 조망하며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지표를 전해 주었다. 놀라운 건 작가가 어릴 때
느꼈던 죽음과 노인이 되어 겪는 죽음에 간극이 없다는 점이다. 작가는 인터뷰 내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실천하듯 인문, 철학, 신학의 진리를 펼치며 겸손하게 죽음 가까이 다가갔다.
 
 어느 날 지인의 남편이 관공서 직원에게 심하게 욕하는 걸 보고, 남편에게 감사한 적이
있다. ‘깨달음은 억겁을 윤회하며 닦을 수도 있고, 전광석화처럼 일시에 개오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말버릇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는데, 내 귀를 깨끗이 해주는 남편이
새삼 고마웠다. 남편과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생각이 일치했는데 남은
삶을 잘 살려면 말을 아껴야 한다는 거였다. 말이 많을수록 주고받는 게 상처다. 말로 상처를
받으면 싱싱했던 꽃이 시들어 쓰레기통에 넣을 때처럼 찝찝하고 허무하다.
 
 말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다. 말에 고운 옷을 입히거나 돌려 말하거나 침묵하면 심간이
편해지는 효과다. 로키의 설산도 여름이 돼야 녹듯이, 말의 온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높거나 낮은 톤, 감정이 섞인 말은 시간을 두고 고쳐야 한다. 서양의 ‘Shut Up'은 의역하자면
침묵하라는 건데, 침묵도 연습이 필요하다. 악보에 음표와 쉼표가 있듯이 말을 줄이거나,
쉬어가야 삶의 갈무리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건너간 것 2026.07.31 (금)
점심 무렵아들에게서문자 하나 도착했다엄마 김밥오늘도 내 몫은 없었어점심시간이면김밥은 이미 동난다나는오이와 비트머위대와 참비름깻잎, 적상추, 당근을흙의 시간을 접듯김 위에 올렸다계란 하나 말아 넣을 때마다바람 한 줄햇살 한 줄이슬 한 줄말려 들어갔다아들은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먹고다른 사람들은내 텃밭의 계절을 먹는다말은 통하지 않아도한입 베어 문 사람들의 표정이먼저 번역된다나는 오늘도흙을 만지며내일을 만다
김회자
로히드몰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생을 마친 내 주변의 이웃들이 하나둘 삶의 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 밖으로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내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오래전 어느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후배는 삭발하고 절에서 수행하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이종구
이봉희/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스마트 폰을 매개체로 하여 SNS 활동, 동영상 특히 짧은 동영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오죽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유튜브를 안고 태어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인쇄된 책을 오프라인에서 읽는 모습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일처럼 참으로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 라고 전자 미디어를 통한 하나의 지구를 정확하게 설계한 이...
이봉희
7월 27일. 6·25 한국전쟁이 정전(停戰) 또는 휴전(休戰)한 지 벌써 73주년이 된다. 1960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에선 주인공인 북한 인민군 반공포로(反共捕虜) 이명준이 남한이나 북한을 택하지 않고 제3국, 중립국을 택해 인도(印度)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닷속에 빠져 사라진다.   인도로 해항(海航) 중에 세상을 떠나는 이명준과는 달리 휴전협정 다음 해인...
김정남
세월은 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지난 76년의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문명이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와 세상을 바꾸어 놓은 시대였다. 때로는 그 변화가 너무 빨라 숨을 고를 틈조차 없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지난 반세기 남짓한 시간의 변화는 수천 년의 역사보다 더 놀랍고 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동네 한가운데 놓인 라디오 한대는 마을 사람들의 귀였다. 한 집에서 뻗어 나온 전선이 집집마다 연결되어...
김유훈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날버스 정류장 새들이 말을 건다 나는 왜 새들은 노래하거나 슬피 울거나 두 가지만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고목의 껍질을 헤집어 찾아낸 벌레들을 새끼들 입 안에 넣어줄 때는노래 아닌 어떤 말을 할 것 같은데 아기새들 둥지에서 떠나보낸 후엔이 숲에서 저 숲으로 떠돌며슬픔 비슷한 어떤 말을 할 것 같은데 멍에를 다 벗고 난 후제 먹이를 찾아 날아오를 힘마저  없을 때그때서야...
윤미숙
눈 감은 동공에 밝음이 느껴지고 더워진 방 안 온도에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삐질 난다 땀이 장판에 붙어있는 뺨에 흥건하여 몸을 일으키니 쩍 하고 떨어진다   창 모양의 햇살이 네모지게 방바닥을 지나 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는 벽을 향하여 직각으로 꺾어져 올라간다 뺨에 묻은 땀을 훔치고 눈 부신 햇살 밖으로 나오니 뜻밖의 어느 여자가 눈앞에 보인다   잠에서 막 깨어 기분 좋게 만드는 건 개운함이 아니고 가끔 누나에게서 났던...
방기호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나는 종종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강들을 떠올린다. 넓은 대양을 떠돌던 장성한 연어들이 제 몸을 붉게 물들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이곳 북미 서부와 캐나다 서부 해안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태평양에는 저마다의 빛깔과 특징을 지닌 다섯 가지 종류의 연어가 있다.   가장 웅장한 몸집으로 연어의 왕이라 불리는 킹(King) 연어, 은빛 날렵한 몸매로 물 위를 힘차게 도약하는...
김호정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