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운동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고 근력을 키우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기력이 떨어져 예전에는 거뜬히 해내던 일들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지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뛰고,
근력 운동도 한다. 아직 능숙하게 잘한다고는 못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첫날보다 덜 힘들고, 그
다음 날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근력 운동이 중요하다고 하며 아령을 들거나 천천히 근육을 쓰는 운동을
추천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땀을 빠르게 흘리는 운동을 선호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스텝퍼를
오르거나 20분 정도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달리기는 점점 재미를 붙이면서 숨이 덜
차고, 처음보다 더 안정적으로 20분을 채울 수 있게 된 운동이다. 그래서 헬스장에 가면 가장 먼저
러닝머신으로 향한다. "오늘도 20분을 달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침마다 주 3~4일씩 달리다 보니, 달리기를 거르다 보면 한 주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하루를 달리기로 시작하는 것이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달리는
것이 조금은 지루했고, 가끔은 꾀가 나서 속도를 낮추거나 걸었다 뛰었다를 반복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내 옆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늘 혼자 달리던 터라 조금 어색했지만, 동시에 나도 모르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 쉬엄쉬엄 달리던 습관을 버리고 그날은 더 성실히 달리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경쟁심이 발동했다. ‘내가 먼저 뛰기 시작했는데, 옆 사람한테 뒤처지고
싶지 않은데…’ 이런 마음이 드니, 자연스럽게 더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평소 목표였던 20분을 꽉
채우고도 5분을 더 달려 총 25분을 달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은
기분이었다.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던 어느 아저씨 덕분에 새로운 성취감을 느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러닝머신으로 향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아저씨가 내 옆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분 덕분에 25분을 힘든 줄도 모르고 뛰었고, 평소보다 속도를 높여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매일 헬스장에 갈 때마다 어제 본 사람, 그제 본 사람, 또 새로운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내 옆에서 달렸다. 어느새 헬스장에 가는 날은 '땀을 흠뻑 흘리며 가슴이
터질 듯 달리는 날'이 되었다. 힘들면서도 묘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헬스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보통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기 때문에 익숙한 얼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날은 평소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나는 변함없이 러닝머신으로 향해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옆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없으니 왠지 신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이 정도는 쉽게 뛰었는데…’
혼자서 하려니 이상할 정도로 힘들었다. 평소 어렵지 않게 뛰던 거리도 끝이 없어 보였고, 시간도
더디게 흘렀다. 속도를 낮췄는데도 1분이 1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이 아니라,
뭔가 동력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결국 그날은 뛰는 둥 마는 둥 러닝머신을 마치고, 다른 운동도
대충 하다가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깨 달았다. 역시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과 혼자 달리는 것은 완전히 다르구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함께 뛰던 사람들과 발맞춰
달릴 때는 자연스럽게 자극도 받고, 서로에게 동기부여도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혼자 해내려니
그때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교류도 없는 것 같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말 한마디 없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나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그 존재가 주는 보이지 않는 응원과 자극 이야말로 우리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일도 누군가가 옆에서 함께 달려 주기를 바라게 된다. 직접적이지
않아도, 같이 달려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강하고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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