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동화] 특별한 효자 상

이정순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11-29 16:25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동화작가 이정순
해피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자식도 없고 무척 가난했습니다. 할머니는 눈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해피를 자식같이 여기며 사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산에서 약초도 캐왔습니다. 봄이면 산나물이며, 가을이면 산열매도 따왔습니다.

“할멈, 오늘은 산나리 꽃을 꺾어 왔구려. 지천에 야생화가 피었더이다. 할멈이 볼 수 있으면 참 좋아할 텐데.”

할머니 얼굴이 환해지며 행복해 보였습니다.

“영감, 양지바른 언덕에 산꽃이 지천으로 피었었지유?”

그것이 할머니가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옛 생각을 하는지 산나리 꽂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얼굴에 비벼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얼굴이 주황색으로 물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낼은 내가 할멈을 언덕으로 데려가리다.”

할아버지의 그 말에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할머니는 전에부터 앞이 안 보인 건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눈이 아프다고 하더니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해피야, 니가 잘 안 보인다. 어디 있노?”

해피는 할머니 품 안으로 들어가 낑낑거렸습니다.

“히히, 여기 있었네. 내가 찾았다.”

할머니는 가끔 일곱 살 아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할멈. 빨간색이 뭐지?”

“딸기가 익으면 빨간색이지.”

“아이고 잘했소. 할멈!”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칭찬했습니다.

“그럼 딸기 꽃은 무슨 색인가?”

“분홍색! 나 스웨터도 분홍색!”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럼, 오늘 내가 꺾어 온 산 나리꽃은 무슨 색이지?"

“몰러!”

두 사람의 대화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피도 덩달아 행복했습니다. 해피는 살포시 할머니 무릎에 올라앉았습니다. 할머니가 해피 등을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해피는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할머니 머리를 감겨 곱게 빗겨 비녀를 꽂아 주며 말했습니다.

“할멈, 할멈이 내게 시집올 때처럼 곱구려.”

할머니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롱에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분홍색 스웨터를 꺼내 입혔습니다.

“할멈, 이건 할멈이 좋아하는 분홍색 스웨터라오.”

그 스웨터는 할머니 눈이 아직 보일 때 할아버지랑 시장에 가서 마지막으로 산 옷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스웨터를 입어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할멈, 할멈이 내게 시집올 때처럼 곱구려.’

할머니는 그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예쁘게 단장시켜 손을 잡고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언덕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할멈이 좋아하는 언덕에 왔구려.”

할머니는 나비처럼 팔을 벌렸습니다.

“깔깔깔!”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조심 발을 떼었습니다.

“영감, 내가 꽃을 밟으면 꽃이 아파할 거유. 밟지 않게 내 손 잘 잡아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조심스럽게 잔디 위에 앉히며 말했습니다.

“할멈, 여기 앉구려.”

할아버지는 네잎클로버 꽃으로 왕관을 만들어 할머니 머리에 씌어 주고, 꽃반지도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해맑게 웃었습니다. 해피도 덩달아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멍멍멍!”

“해피야, 이리 온!”

해피는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앉았습니다.

노을이 주황색으로 아름답게 물들 무렵,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할멈! 다리 아프지 않으우? 내 등에 업히구려.”

“히히, 좋다!”

할머니는 어느새 아기가 되어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림자도 주황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자장자장!”

할머니는 할아버지 등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와서 반찬도 만들고 밥도 지어 상에 가득 차려두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했던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해피야. 이리 온. 자자.”

할아버지는 해피에게도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간밤에 할아버지가 기침을 심하게 했습니다. 전에 앓던 천식이 도진 모양입니다.

“쿨럭쿨럭!”

미닫이 창호지문으로 해가 환하게 비췄습니다.

“해피야!”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할배가 왜 아직 안 일어나지? 니가 좀 깨워봐라.”

해피는 할아버지 얼굴을 핥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허허 해피야. 간지럽구나.’ 하시며 내 배를 쓰다듬었을 텐데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피 심장에서 꿍!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낑낑,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상해요.’

마음으로 말하고 할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할머니와 눈이 턱 하니 마주쳤습니다. 보이지도 않은 할머니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쭈르륵 흘렸습니다. 해피도 저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삼일장이 치러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언덕에 할아버지를 묻었습니다.

 

해피도 할머니도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러다 할머니까지 굶어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해피는 궁리 끝에 밥그릇을 물고 이웃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해피는 이웃집 마당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두 발을 뻗고 엎드려 기다렸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아주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왔습니다.

“쯧쯧! 배가 고팠구나. 불쌍한 것!”

아주머니는 주인 잃은 개가 밥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픈가 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밥을 해피 밥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해피는 아주머니께 꾸뻑 절을 하고, 밥그릇을 물고 마당을 나왔습니다.

“아니? 배가 고플 텐데 안 먹고 어딜 물고 가냐? 새끼가 있나?”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해피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집으로 달려와 할머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 소맷자락을 물고 밥그릇 앞으로 끌어당겼습니다. 할머니는 손으로 밥그릇을 더듬었습니다.

“해피야. 이밥이 어디서 났노?”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해피는 할머니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해피야, 니도 배고플 텐데 먹어라.”

할머니는 밥그릇을 해피 앞으로 밀어주었습니다. 해피는 할머니가 남겨 준 밥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영감은 밥 드셨어유?”

해피는 그 말에 입에 물고 있던 밥을 그릇에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 눈에도 해피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다음 날도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아주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아이고, 니가 사람보다 낫네.”

아주머니는 또 밥을 주었습니다.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마당을 나왔습니다.

“허 참, 밥그릇을 어디로 물고가지?”

아주머니는 해피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아주머니는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날 아주머니는 깨끗한 그릇에 밥과 고기반찬을 좀 더 넉넉히 담아주며 말했습니다.

“세상에나. 못난 열 자식보다 낫네.”

그 소문이 읍내까지 자자하게 났습니다. 동사무소에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보내 해피와 할머니를 돌보아주었습니다.

어느 날 몇몇 사람이 와서 할머니와 해피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특별한 효자 상을 시상합니다.”

할머니와 해피 목에 꽃다발이 걸렸습니다. 목에는 ‘효자상’이라고 쓰인 메달도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두런거렸습니다.

“허허 참! 개가 사람보다 낫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침 이슬이여, 너는 어둠의 울타리에 걸어 놓은  내밀(內密)의 창(窓) 지순한 그리움의 초상이구나    춥고 습한 긴밤들을 눈물로 견디며 모든 고통의 순간들은 결국 숭고한 환희로 통하는 길이라는 지혜를 터득한 너의 맑은 이마여!                                           ...
안봉자
작은 아씨 2025.06.27 (금)
  어머니는 젖이 풍부하신 분이셨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면서도 일부러 젖을 떼려고 애쓰지 않고 아이가 먹겠다면 언제까지고 먹이려고 하셨다. 나도 거의 세 네 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들었다. 내 밑에 막내 동생은 여섯 살이 넘도록 젖을 먹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들어와서는 어머니 품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주위 사람들이 젖을 떼지 다 큰 애를 무슨 젖을 먹이냐고 하면 어머니는 이제 더 먹일 아이도 없는데 나오는 젖을, 먹겠다는...
심현섭
그리움 2025.06.27 (금)
사그라져 가는 물안개 아침 햇살에 부서지고   파도가 뿜어낸 당신 닮은 은빛 숨결 물 비늘이 허공 위로 흩어지네   그대 향한 서성임이 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요란한 살여울 지쳐 밀려온 그 자리 차디찬 빙산 이어라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당신 목소리에 오늘도 목이 메이네
김정임
바람이 전해준 말 2025.06.27 (금)
  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지연옥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Vancouver                                                   Poem by Lotus Chung Mother, brother, we’ve crossed the seaUnder Vancouver’s sky,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fullOn sunny days, let bursts of laughter bloomLet’s dress in hanbok and dance with grace In the immigrant’s suitcase, dreams and hopesAnd tucked inside, a single word in our mother tongueChildren, friends, be proud Embracing two cultures in our...
로터스 정병연
양상군자 시리즈 2025.06.20 (금)
30년 전 빅토리아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였다. 한 번은 내 가게에서 일하는 모하메드 (아프가니스탄인)가 어떤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고 혼내 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인상착의를 들으니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담배나 우유를 사러 오는 테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잔돈 남은 것으로 사탕을 사 먹는 순해 보이는 4-5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였다. 며칠 뒤 저녁때쯤 그 아이와 친구가 사탕을 사러 들어왔다. 검은 큰 잠바를 입고 사탕과 초콜릿이 진열된...
이종구
   거센 물살을 이기며 본향으로 역류하는 연어의 몸짓을 본 적이 있는가? 영어의 바다에서 한글로 문학작품을 쓰는 이들이 연어의 몸짓을 닮고 있다. 금년 한카문학상 응모작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부터 영어도 잘 늘지 않고, 한글은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을 살리고, 우리 글을 익히려는 한국문학 지망생들의 도전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이제 수상자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원배(심사위원장)
은사시나무 2025.06.13 (금)
유월의 숲나풀거리던 녹두 빛은  어느새 농록한 푸름으로 가득하다해질녘 노을 꽃피면붉은 비로도 옷 두른 나무들 사이늙은 은사시나무흰 버짐 가득 핀 맨살 드러낸 체 고단한 시간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다영겁의 세월 지나는 동안이웃한 바람, 꽃, 새들에게힘껏 다정하였다고 정성다해 사랑하였다고구름으로 하늘편지를 띄운다고요한 유월의 숲겹겹이 까만 커튼이 드리우면슴벅거리는 황혼의 노을 데리고은사시나무 레테의 강가*에...
김계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