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는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안전하다 느끼는 공간이 필요하다. 혹은 소수의 결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을 그린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안아주는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모나이 폴라이’를 처음 방문한건 지난 겨울이었다. ‘대림절 예술 묵상 피정’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공간.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라는 예수의 말 따라 지친 이들에게 쉼과 휴식을 주는 공간이 되고자 시작한 곳. ‘모나이 폴라이’는 헬라어로 ‘많은 방’이란 뜻이다. 의미를 생각하며 ‘모나이 플라이’라고 가만히 불러보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곳에는 나를 위한 방이 있을 거라는 안도가 든다. 단어가 가진 고유한 힘에 기대어본다.
공간은 소유한 사람의 궤적을 볼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 개인의 세계를 넘어서 타인으로 향할 때 그 의미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타인을 위해 공간을 나누며 넘치도록 풍성한 환대를 꿈꾸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모나이 폴라이’를 꾸려나가는 백지윤 작가는 번역가이다. 한국에서 미술이론과 캐나다에서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한 그는 교회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길을 모색한다.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종말론적 긴장, 창조와 새창조,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이 모든 주제에 대한 문화와 예술이 갖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의 틀을 벗어나 예술의 자유로운 창조 활동과 정신이 신앙과 연결되고, 세상과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길 꿈꾼다.
‘환대’라는 말을 늘 품고 있어서 어디든 자리를 잡으면 이웃을 불러 먹고 나누며 살려 하지만 내 예민한 기질이 종종 방해가 되곤 한다. 이미 ‘친구들의 방’까지 정갈하게 꾸며 놓은 ‘모나이 폴라이’에서 백작가님의 따뜻한 기운을 받았다. ‘모나이 폴라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친구들의 방’이 손님을 맞이한다. 번역가, 작가, 출판 편집인들이 머물며 일도 하고 쉼도 얻을 수 있도록 마련된 게스트룸이다. 번역가로서 고된 작업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알기에 동료들의 쉼과 재충전을 위한 번역가 레지던시를 꿈꾸며 시작된 곳이다. 작업실과 침실이 구별되어 있어 집중해서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다.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 조용히 쉼과 묵상을 누릴 수 있는 도심속 수도원이다.
커다란 거실에 들어서자 전시회가 펼쳐졌다. 대림절 그림 연작을 보고 묵상을 읽을 수 있는 열두개의 스테이션이 마련되어 있다. 내가 믿고 기다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천천히 일러주는 시간, 내 예민함, 고집과 싸우기보다는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보인 예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딱딱해진 마음에 평화가 노글노글 스며들었다.
정현종 시인은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 꿈이라 했다.
그래 이 세상의 떠돌이와 건달들을 먹이고 재우고,/이쁜 일탈자들과 이쁜 죄수들,/거꾸로 걸어다니는 사람과 서서 자는 사람,/눈감고 보는 사람과 온몸으로 듣는 사람,/끌어안을 때는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사람,/발에 지평선을 감고 다니는 사람,/자동차 운전 못 하는 사람,/원시주의자들,/말더듬이,/굼벵이,/우두커니,/하여간 그런 그악스럽지 못한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게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야./아냐, 호텔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며
/병원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야./ (정현종, ‘한그루 나무와도 같은 꿈이’ 중에서)
지난 여름 방문한 청파교회 김기석 원로목사는 정현종 시인의 꿈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무정부주의적 감각들의 절묘한 균형으로 집 전체가 그냥 한 송이의 꽃인 그러한 곳’인 ‘모나이 폴라이’의 따뜻한 환대는 누군가의 우울과 낙심을 이겨낼 묘약이 될것이다.
통창 밖 녹음과 집안 곳곳에서 새어 나온 빛이 높은 천장까지 닿았다 우리 주위를 돌며 반짝인다.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이방인의 외로운 삶에서 ‘모나이 폴라이’가 주는 다정한 의미를 세어본다. 서로를 환대하고 환대받은 경험은 우리를 소망으로 이끈다. 그 소망은 깊고 온전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아는 것이다.
Monai Pollai Instagram @monaipol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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