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진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1-1
그동안의 믿음이 무색할 정도였다. 남편은 집 곳곳에 있는 내 짐들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닥치는 대로 넣었다. 한 번에 처리하겠다는 기세로 내 흔적들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단호한 행동이 탐탁지 않아 팔짱을 끼고 방을 오갔다.
“이제 어쩌려고 이래?”
남편은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창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연애 시절부터 담배를 끊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신사적인 미소로 괜찮다며 나를 달래기만 했었다. 남편은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옆에 세워두고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방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지독하고 무거운 담배 연기. 나는 투명해졌지만 여전히 기침을 했다.
“창문을 열고 오래 둬도 담배 냄새는 안 빠진다고 얘기했잖아. 미래한테 안 좋다고.”
남편은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뿐이었다. 나를 무시하듯 웃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가 뿜어내는 하얀 담배 연기가 투명한 내 몸을 가득 채우고도 나는 색을 갖지 못한다. 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는 죽었다.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투명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자유로워 보였다. 남편의 모습 뒤로 거실 벽에 걸어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남편과 십자가를 번갈아 봤다.
‘나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눈물이 가득 차오르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물에 빠진 것처럼 아득한 기분이 몰려왔다. 아롱대던 눈물이 가득 모여 우르르 떨어져 내릴 때부터 나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물 아래로 고꾸라지면서 몸이 여러 번 모양을 바꿔가며 뒤집혔다. 물기둥 사이, 사이로 남편의 담배 연기가 흘러 들어왔다. 이따금 남편의 목소리도 들렸다.
“우린 잘 살 거야.”
그리고 딸 미래가 저 멀리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나의 미래가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삽니다.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당신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축복- 하늘…….”
숱하게 많았을 기도문 중 하나가 물기둥을 추락하는 동안 내내 울려 퍼졌다.
2
“여기, 해당 사항에는 체크해주시고, 작성하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주세요.”
간호사는 무미건조하게 종이를 건넸다. 그녀는 작은 방문을 닫으려다 말고 뒤를 돌아 한마디를 덧붙였다.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천천히 하세요.”
문이 닫히고, 작은 간이 책상에 앉은 나 홀로 남았다. 주변이 온통 조용했다. 간호사가 건넨 종이를 끌어당겨 읽기 시작했다.
‘우울한 감정이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체크.
‘슬픈 기분이 든다.’ 체크.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체크.
‘지난 일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체크.
‘내가 죽어야 가족들이 편할 것 같다.’ 체크.
의사는 산후우울증을 진단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요즘은 워낙 산후우울증이 많다는 이야기도 보탰다. 의사가 나를 진료한 차트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에게 건넨 후에도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진료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더 할 말 있으신가요?”
의사는 무척이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친절 속에서도 나쁜 의도만 읽어내려는 삐뚤어진 마음으로 가득했다.
“선생님, 요즘에 워낙 많다고 하셨죠. 산후우울증이요.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좋아지기도 하는 건가요?”
의사는 어깨를 한번 들썩여 보였다.
“약을 먹으면 한결 나아지죠.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하시는 단계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같이 노력을 해봅시다. 나가셔서 약 받고 가시면서 다음 예약 잡으시면 됩니다.”
‘워낙에 많이들 걸리니 그러려니 하고 살라는 건가요?’
이 말을 속으로 뱉으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타인을 향한 배려 따위는 내 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우울감에만 사로잡힌 비논리적인 내 모습에 혐오감이 들었다.
개미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건 개미가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우울하지 않고는 우울증 환자의 기분을 알기란 어렵다. 우울도 지문과 같아서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과 성격의 결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이래.”
남편은 나를 개미처럼 관찰했다. 이성적인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 찾아온 감정이 기쁨이 아니라 우울이라는 점에서 의아함을 품어왔다. 이해할 수 없으니 관찰하는 수밖에.
이쯤에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우리에게 찾아온 딸, 미래. 미래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이런 아이를 받아들고 우울증에 빠지다니. 당신, 엄마 자격이 없는 거 아니야?’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이는 환청이 이따금 들리기도 했다. 아이를 힘겹게 돌보면서 찾아오는 죄책감에 숨이 막혔다.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이 엄마라니. 미래가 다른 집에서 태어났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남편과 아이가 곁에 있을 때 이 기분은 최악까지 치달았다.
‘든든한 남편과 예쁜 딸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죽고 싶은 심정이 든다고? 그럼 죽어야지. 여기가 나의 한계니까.’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나쁜 마음들은 나를 따라다녔다. 그 기분들을 떨쳐내려고 애를 쓰고 약을 먹으며 버티는 동안 미래는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남편은 그사이 나를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가정의 모양이 크게 뒤틀려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그걸로 만족한 것 같았다.
사실 약을 먹으면서도 차도는 없었다. 약을 먹은 그 순간뿐이었다. 우울증 약은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온다. 약을 먹은 후 침대에 누워 온몸이 녹아내리듯이 잠에 빠져드는 찰나의 느낌이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그 순간이 나에겐 가장 큰 휴식이 되었다. 그래서 우울증 약에 만성적으로 기대어 지내는 중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 남은 집에서 설거지하던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하던 설거지를 순간 멈추고 고무장갑을 낀 채 우울증 약봉지를 찾아 다급히 서랍을 열었다.
‘우울증 약이 몇 개나 남았더라?’
바로 얼마 전에 처방을 받아서 약봉지는 넉넉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무장갑을 벗어 설거지를 다 마치지 않은 개수대에 대충 걸었다. 컵 가득 수돗물을 따라서 우울증 약들을 먹었다. 곧 몸이 나른해질 터였다. 이 기분을 놓칠 수 없었다. 나만의 휴식을 위해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죽고 싶으면 그 기분에 충실하면 돼.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배우잖아.’
나에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멈추자마자 미래가 떠올랐다. 잘못된 답이 의아해서 이 계산에 빠진 수가 뭔지 헤아렸더니 미래가 나왔다. 가장 중요한 수를 빼고 계산했으니 가장 큰 실수가 된 셈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나른해진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꿈을 연달아 꾸었다. 여기까지가 남은 마지막 기억이다.
1-2
어리둥절했다. 담배를 피던 남편도, 가득 찬 쓰레기봉투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손을 뒤집어보며 살폈다. 나는 여전히 투명했다. 투명한 손바닥에 오렌지색 빛이 새어 들어왔다. 눈을 들어 보니 베란다 창문으로 노을 지는 해가 빛나고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을 열 수 없었다. 손이 문을 통과할 뿐이었다. 나는 문 열기를 체념하고 문을 통과해 베란다로 나갔다. 아이가 올 때가 지난 것 같았다. 해가 다 넘어가도록 아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베란다에는 아이와 함께 심었던 방울토마토 화분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시든 가지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작은 방울토마토를 따려고 손을 휘저었다. 방울토마토는 시든 가지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매달려 있었다. 방울토마토를 잡으려 손을 휘젓다가 힘에 못 이겨 그만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투명한 내 몸 안으로 방울토마토 화분이 쏙 들어왔다. 미래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베란다에서 미래가 보고 싶어 하염없이 울었다. 엎어진 등 위로 시든 방울토마토 화분이 튀어나왔다.
3
“아이 덕분에 놀이동산도 가고 동물원도 가게 될 거예요. 오랜만에 그런 곳에 다시 가면서 느끼는 게 얼마나 많다고요.”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도우미 선생님은 미래를 트림시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 산모님 근데 왜 울어요.”
“모르겠어요. 너무 슬퍼요. 아이 덕분에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을 몇십 년 만에 다시 가게 될 거라니. 그 기분이 너무 슬퍼요.”
“아이고 이거 어떡해. 우리 산모님 지금 힘들다. 방에 들어가서 쉬어요.”
도우미 선생님은 난처했는지 나에게 수유실 밖으로 나가 쉬라며 등을 토닥였다. 도우미 선생님과 내가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미래가 도우미 선생님 어깨에 여태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나는 미래에게 미안해서, 이런 내가 한심해서 불끈 쥔 주먹으로 스스로 머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누구 여기 좀 와 봐요. 여기 산모님 좀 도와줘. 얼른!”
신생아실 안쪽에서 다급하게 뛰어나온 다른 도우미 선생님이 내 손을 붙잡고 꽉 안았다.
“아이 놀라요. 그만해요, 산모님. 괜찮아요. 괜찮아.”
미래를 안은 도우미 선생님이 아이 등을 감싸 안고 신생아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1-3
다시 눈을 떴을 때 방울토마토 화분은 없었다. 자잘한 짐들이 사라지고 청소를 했는지 집이 아주 깔끔해져 있었다. 손을 펼쳐보니 투명한 몸이 더 투명해진 것 같았다. 시간이 또 며칠 흐른 것 같았다. 베란다에서 울면서 끊겼던 기억으로부터 다시 여기까지 이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비워지고 있었다. 남편이 미래를 데리고 이 집을 떠나려는 것 같다. 이곳에서의 흔적들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때 현관문 도어락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미래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미래야. 장난감은 아빠가 다시 사준다고 했잖아. 이게 꼭 필요했던 거야?”
“응! 이 인형은 내가 아가 때부터 잘 때 안고 자던 거잖아? 아빠는 이걸 빠뜨리면 어떡해. 이게 꼭 있어야 한단 말이야.”
미래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참새 인형 하나를 갖고 나왔다.
“잘 있었어? 두고 가서 미안해.”
미래가 참새 인형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미래야. 두고 가서 미안해.”
미래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지만 미래를 안을 수 없었다. 나는 미래를 안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이제 가자. 얼른.”
남편이 미래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빠. 엄마는 언제 와?”
남편이 미래의 키에 맞게 쪼그려 앉아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잠시 휴가를 냈어. 그동안 가고 싶었던 외국을 돌아보고 온대. 지난번에는 어디에 있다고 했지?”
“캐나다! 캐나다에서 엄마가 엽서 보냈잖아.”
“응. 근데 지금은 인도에 가 있대. 곧 엄마가 인도에서 엽서를 다시 보내 올 거야. 엄마가 푹 쉬고 오면 좋겠지?”
“응!”
“그래. 얼른 가서 점심 먹을까?”
남편의 근사한 거짓말에 미래가 안도하는 걸 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미래가 남편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어떻게든 미래를 안아보고 싶어서 따라가며 미래에게 손을 뻗었다.
“근데 아빠.”
“응?”
“엄마 너무 보고 싶은데, 그냥 빨리 오라고 하면 안 돼?”
대화는 여기에서 끊겼다. 기억이 또 불쑥 끊어졌다.
4
집에서 외주를 받아 작업하던 책 편집 속도가 지지부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네 살 무렵이었던 미래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미래야, 유치원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기다리는데 정말 안 갈 거야?”
“엄마랑 같이 있을래. 오늘은 정말 학교 가기 싫어.”
“엄마 일해야 해. 미래가 오늘 유치원을 가야 엄마가 일을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제발 가 줘라. 응?”
입을 삐죽이며 우는 미래가 내심 귀여웠지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며 유치원 갈 채비를 마쳤다.
그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일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래가 놀이터에서 놀다 넘어졌으니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가보니 미래의 이마가 찢어져 있었다.
병원에서 몇 바늘을 꿰매고 나오는 길에 미래가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엄마, 아침에는 미안했어.”
나는 미래를 안았다.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화를 내면 안 됐는데.”
아이가 내 등을 토닥였다.
“아이스크림 먹을까?”
나는 아이의 순진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마 아픈 건 다 잊어버렸네, 벌써?”
그날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아이스크림 집도 가고, 도서관에 가서 공룡 책도 봤다. 한산한 아파트 단지를 아이와 걸으면서 동요도 불렀다. 미래가 ‘엄마랑 있으니 참 좋다’고 했다.
5
조금 알 것 같다. 투명한 나에 대해서. 나는 투명한 몸. 공간을 통과하는 몸. 그렇다고 하늘을 날거나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다. 사람이 걷고 뛰는 만큼의 속도를 유지한 몸. 무언가를 만질 수 없는 몸.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는 몸. 그래서 슬픈 몸. 슬퍼서 울면 형체가 사라지는 연약한 몸.
노을 지는 반짝임으로 몸이 한가득 빛나다가도 어둠 속에서는 어둠 그 자체가 된다. 다만 기억이 남아서 슬프고, 슬프면 눈물을 흘릴 수가 있다. 이때 생전의 기억으로 낙하한다. 몸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잠시 모든 것이 정지한다. 현재를 볼 수 있는 시야가 모두 닫히는 것이다. 다시 투명하고 연약한 형체를 되찾기 전까지 그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나는 보다 더 투명해진다. 나는 사라지는 중이다.
1-5
나는 끝내 미래를 안을 수 없어서 또 울었나 보다. 다시 눈을 떠보니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안방에 있던 커다란 침대와 장롱을 옮기고 있었다. 짐이 얼마 없어서 금방 끝나겠다는 대화들이 오갔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살폈다. 멀리에서 미래가 뛰어오진 않을까 싶어 현관문을 계속 봤지만 남편과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와 소파, 그리고 식탁이 나가고 나자, 사람들은 곧 집안 곳곳을 쓸고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세 가족이 살았던 흔적이 깨끗하게 치워졌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마무리할 때쯤엔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라고 다들 웃으며 문밖을 나섰다.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야,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실 벽을 통과해서 안방으로 갔다. 그곳에 미래가 두고 간, 장난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장난감은 미래와 내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주웠던 돌멩이였다.
“엄마. 이거 봐. 매끈하고 예쁜 돌이야. 집에 가져가서 놀래.”
미래는 돌멩이를 가져와 오랫동안 소꿉놀이나 역할놀이에 사용했었다. 나와 미래만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장난감이 빈 안방에 쓸쓸히 놓였다.
투명한 몸이 저항도 없이 다시 운다. 눈물이 떨어지면서 투명한 몸도 방울져 떨어졌다. 수십 개의 투명 구슬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퍼져 나갔다. 이윽고 구슬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구슬 하나까지 모두 사라지자, 방 안에는 미래의 작은 장난감 돌멩이만 남았다.
6
지저분한 깃털이 얼기설기 얽힌 비둘기 한 마리가 베란다 난간에 앉았다. 비둘기는 기름때를 뒤집어쓴 더러운 모양새로 빈집을 한참 바라봤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난간에 앉은 비둘기가 휘청거렸다. 바람이 불고 빗줄기가 창문에 붙으면서 바깥 풍경을 완전히 가렸다. 요란한 빗소리가 빈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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