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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찰흙 같은 청소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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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7-22 09:33

아청 박혜정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렸을 때는 예쁜 색으로 부모님이 정성껏 고무찰흙을 빚듯 키워주면 사회에서 받는 영향 등으로 다른 색도 섞이면서 만들어지기도 하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님께 반기도 들고 하면서 자아가 형성된다. 만약 청소년의 특징인 사춘기가 없다면 오히려 인성의 형성이 힘들거나 개성이 없는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다.
내가 만나는 대상은 대부분이 청소년들이다. 그 중에는 무서운 중2병도 가지고 있는 등 다양한 아이들을 보게 된다. 이 시기는 인생에 있어서 변화무쌍한 시기이다. 이 시기를 잘, 무사히, 좋은 친구들과 지내게 되면 별 탈 없이 어른이 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시기인 만큼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아이들이 좋게, 바람직하게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너, 요즘 사람이 된다.”라고 말하면 “쌤, 그럼 지금까지 제가 동물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한 지 어언 40여 년의 세월이 되다 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많다. 다행히도 내가 상대하는 아이들은 음악을 하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악하거나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루는 남학생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오셨다. “선생님, 우리 애가 이상해졌어요. 문제아가 된 것 같아요. 세수도 안 하고 학교에 가는 아이가 거울 앞에서 30분이나 있으면서 머리에 무스도 바르고 큰일이에요.” 그 동안 그 학생은 너무 착해서 사회생활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더니 음치, 박치에 가까운 아이가 박자도 지키고 음정도 맞아지면서 기적적인 사춘기를 지나고 예고에 입학을 하게 된 일도 있었다.
또 어떤 남학생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닌다. “무슨 음악이니?” 들어보니 힙합이고 걷는 모습도 힙합을 하는 아이들처럼 건들건들 걸으며 다닌다. “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 거니?” “Garbage Man !” 그때는 부모님 속을 꽤나 썩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어떤 엄마는 “선생님, 저는 장기이식을 해 주고 싶어도 안 되요.” “나는 큰 병에 걸리셨나 해서 깜짝 놀라서, 왜요?” “아이 때문에 모든 장기가 까맣게 탔어요.” 그 답에 한참을 웃었지만 가만히 보면 우스우면서도 슬픈 사연이었다.
여자아이들은 괜히 나도 웃게 만드는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일도 있다. 한 번은 플루트 파트 여자 단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다 지우개가 필요해서 샤프펜슬의 지우개를 사용하고 분명히 뚜껑을 잘 닫았는데 어이없이 날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지금도 어떻게 뚜껑이 날아갔는지는 미스터리이지만 그 아이들이 얼마나 배를 잡고 웃는지 나도 그 모습을 보고 같이 깔깔 웃었다.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크게 바뀌기보다는 살짝살짝 삐지고 엄마에게 화내고 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고 남학생들은 크게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남녀 구별 없이 무슨 계기가 있어 번개를 맞은 듯 확 변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남학생은 10학년 내내 게임만 하다 무슨 번개를 맞았는지 11학년부터는 성적을 104점, 107점을 맞았단다. 난 처음에 그런 점수가 있다는 것에 놀라서 물어보니 100점을 맞고 보너스 점수를 맞으면 그런 점수가 된단다. 하여튼 그 후로는 사람(?)으로 변해서 대학교 3학년에서 바로 의대로 입학을 하는 기적적인 일도 있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연주를 못 하던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어떤 학생이 하모니카를 들고 오디션을 보겠다고 찾아왔다. 일단은 같이 해 보자고 했다. “내심 엄청 잘 하면 협연이라도 시켜줄까?” 하는 생각과 뭐든 도전하기까지 용기를 내야 하는 그 마음을 높이 사서 한 번 시도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하모니카! 소리를 내는지 아닌지 들리지도 않고 마치 입에 주먹을 대고 있는 모습 같았다. 본인도 어색했던지 그 후에 플루트로 바꾸어서 훌륭하게 4년간 함께 한 후 대학에 가기 전 12학년의 마지막 연주를 잘 해냈다. 작년부터 정기연주회 끝에 졸업을 앞 둔 12학년 학생들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그 동안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어린 시절의 자신과 작별 인사를 하고 더 큰 사회로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축하가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 주는 것 같다.” 는 어른의 시작이 되는 청소년기를 마감하는 소감을 말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을 만들어가는구나!” 하는 감동의 순간이 느껴졌다.
또 어떤 학생이 보내온 오디션 비디오를 보니 어느 정도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려니 힘든 것 같았다. 1년 동안 가만히 앉아서 감상만 했다. 그때도 연주가 힘들었던 코로나 기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간을 나름대로 두리번거리며 악보를 보며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보낸 것 같았다. 그 이후에 지금은 잘 해내고 있다.
또 팀파니를 치는 남학생의 경우, 팀파니는 모든 곡에서 다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곡이 연주되는 중에도 몇 십 마디 몇 백 마디를 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심심했는지 옆에서 정신 산란하게 춤을 열심히 춘다. 웃음도 나고 아이들을 집중 못하게도 했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오케스트라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내고 또 모든 뒷정리도 묵묵히 하는 멋진 학생으로 자라고 있다.
고무찰흙이 이상한 모양이나 생각지도 못한 색으로 빚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노력을 하다 보면 지금은 너무 예뻐서 알아볼 수도 없게 커 버리고 눈이 부시게 멋진 모습으로 자라나는 그들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고무찰흙처럼 잘 빚어서 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가는 시기인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를 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나는, 동물(?)이 사람이 되는 중요한 시기를 함께 하는, 힘든 만큼 보람도 큰 나는, 이런저런 순간이 기억 속에 보관되어 아이들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볼 수 있는 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마음의 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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