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싶다는 열정만 가득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기회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나의 반경은 좁고 무명하나, 내 안에 기준도 뚜렷 했다.
긴 기다림 끝에 최 이스라엘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24년째 ‘거리의 친구들’과 예배하며 식사를 나누는 사역을 하고 있다. 요즘은 중국인 노숙자와 저소득층이 예배하러 모인다는 Surrey에 위치한 ‘회복의 집’을 찾았다. 함께 예배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목사님의 메세지를 받았다. 봄이라 부르고 싶지만 바람이 제법 차가웠던 날 ‘회복의 집’ 앞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십여년전 일이 떠올랐다.
소외 계층 곁에 있고자 했던 나는 홈리스 사역을 하는 단체에 들어갔다. 활동 전 교육이 있었는데, 위생 문제로 홈리스와 신체 접촉은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마약에 찌들어 눈이 풀린 사람들과 땀과 오물이 범벅되어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념이 실제와 균형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내공이 필요한걸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는데도 코를 찌르는 악취에 멈칫 했다.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악수를 청했고, 배운대로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날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그들의 손을 잡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왜 그곳에 간걸까. 거리의 친구들 손을 쉽게 잡지 못했던 나는 패배감과 부채감으로 끙끙 앓았다. 어린날의 호기를 돌아보며 마음이 울렁 거릴 때 최목사님의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최목사님은 한국에서 유망한 건축가로 사모님은 디자이너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Surrey의 거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목사님은 24년전 찬양목사로 청빙받아 밴쿠버로 이민했다가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했다. “‘Restoration House’ 로 간판을 걸고 시작했는데 이곳을 ‘수리’하는 곳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중고 장비를 팔러 들어왔어요.” 그들은 딸기잼 바른 식빵과 인스턴트 커피를 내미는 최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우리가 준비한 초라한 음식을 보고 오히려 거리의 친구들이 음식을 가져와 우리 부부를 챙겨주며 사역이 이어졌어요.”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이 토요일마다 음식을 준비해 오고 사모님은 전체 음식 관리와 봉사자들의 식사를 맡는다. 홈리스 예배와 식사는 통상 외부에서 이뤄진다. 위생문제나 따뜻한 실내에서는 잠이 들고마는 홈리스의 특성 때문이다. 목사님은 거리의 친구들을 위해 나은 환경을 꿈꾼다.
오랜시간 지역을 섬긴 최목사님과 ‘회복의 집’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사역을 알릴 인력도 없었지만 광고하지 않아도 사역이 계속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용히 사역하고 있습니다.”는 목사님의 고백은 묵직했다. 십여년 전 내가 참여했던 홈리스 사역을 하는 단체와 이 지역의 다른 단체도 모두 ’회복의 집‘을 거쳐 분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늘의 공급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믿음이지만 우리는 매번 불안하고 조급하다. 내 힘으로 하겠다는 욕심을 꺾고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목사님의 단단한 실력일 것이다. 최목사님은 지난 2021년에는 토론토에 있는 ‘한인상 위원회’가 개최한 캐나다 한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밴쿠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목사님을 토론토 한인들이 발견했다.
우리는 고난 속에 나를 구해낼 능력을 가진 신을 부르고 원하지만 침묵하는 신을 더 자주 마주한다. 말없이 우리와 함께 고통 받으며 곁에 머물기만 하는 무능해 보이는 신, 아무 힘 없는 듯 쓰러져 우리와 함께 울고 있는 신. 하지만 그의 고요한 동행이 결국 우리를 살리고 인도한다. 능력을 뽐내며 기적을 부리는 것은 어쩌면 하늘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곁에서 존재로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그의 성품이고 사랑법일테다. 거리의 친구들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는 최목사님 부부의 삶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조차 높고 낮음으로 평가되고, 구제하는 일 또한 규모와 비용이 자랑이 될 때, 낮은 자리를 고요히 자처하는 삶의 의미가 더욱 반짝인다.
회복의집 후원:
House of Restoration: newcreationyou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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