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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3-13 08:43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중앙일보 이영희 도쿄 특파원이 쓴 "75세인가요, 죽는 게 어때요?" 초고령사회 日 뼈 때린 영화 [도쿄B화]란 기사는 그냥 한 번 읽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충격적이다. ‘75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PLAN 75)이 국회를 통과해’ 노인이 죽기를 원한다고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죽도록 해주는 제도를 설정하고 영화는 전개된다고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국가는 10만 엔의 위로금을 주고, 담당 공무원이 직접 권유하고, 방송 광고까지 하면서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죽음을 택하도록 장려한다.
 
과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문명사회에서 이렇게 노년층에게 법으로 죽음을 권장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가 되고, 2021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9.1%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지….일본은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라고 따로 구분한다고 한다. 이 연령이 되면, 건강이 나빠져 의료, 병간호와 사회 보장 비용이 급증하고(“ 65~74세 고령자 중 병간호가 필요한 비율 3%, 75세 이상 중엔 23%”), 소비와 사회 및 여가 활동도 크게 줄어 사회에 주는 부담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에서는 부양비 (생산가능인구(15~64세) 1백 명당 부양할 인구(유소년, 고령인구))가 지나치게 높아져 생산 인구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 참고로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부양률은 2022년 24.6명에서 2070년 100.6명으로 늘어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니 한국도 곧 일본과 같은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 '네 인생은 곧 끝난다'는 식의 '후기'란 말이 기분이 나쁘고, 나라가 나이로 인간을 구분하는 데 위화감을 느껴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결국 '사회에 도움이 안 되면,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가?' 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제까지 모든 사회와 이를 뒷받침하는 윤리나 종교는 자살을 죄악으로 가르쳐왔다. 이는 사회를 이루는 성원 없이는 사회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에 필요 없거나 가치가 없는 사람을 힘이 있는 자가 밀어내려는 시도는 실제로 역사상 꾸준히 일어났다고 본다. 식량 등 자원의 제약이 인구수를 결정하던 산업 혁명 이전까지 인류는 다른 생명체처럼 이 제약 아래 살면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유아 살해를 했다고 한다. 또, 어느 방법이든 산아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현대 사회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는 피임, 나아가 낙태도 기본은 당사자의 삶, 또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태어날 생명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뿐만이 아니라, 현대화로 맬서스의 함정에서 벗어나고도 계속되는 인종 청소와 종족의 우수성을 보전한다고 우생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제 불임 시술과 감금 등 참으로 소름 끼치는 잔혹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플랜 75는 75세가 넘는 노령자를 대상으로 하니 다른 사람은 안전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사고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 사는 사람조차 그 유용성(사회에 가치가 있는가?)에 따라 제거하고픈 목적을 드러낸다. 장애가 있던, 병이 들었던, 사회 적응 능력이 부족하던, 지능이 낮던, 심지어 가난하던 모든 사회적 약자는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 제한된 자원을 강한 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 독식하기 위해 약자를 제거하겠다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사람은 성년이 되기까지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타인에 의지해 살면서 독립할 능력을 키운다. 그리고,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현대는 은퇴- 일하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한다. 그 후에는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다 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생명체보다 타인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고, 사회에 하는 기여보다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누가 타인의 가치를, 삶을 무슨 잣대로 재는가!
 
먹거리 부족이 더는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제약하지 않는 산업 혁명 이후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약자를 없애려는 양육강식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인류의 진화를 꿈꾸던 우생학의 광기를 잊지 말자. 같은 공동체에 산다는 것은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공동선을 위해 서로 돕고 함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약해지며 결국에는 아이처럼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은 경쟁력 있고, 유능한 당신일지라도 “사람은 모두 잠재적 장애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편을 가르고 차별하는 사고와 행위가 바로 당신을 겨눌 수 있다.
 
성장의 과실을 따 값비싼 부동산을 소유하고, 고갈될 연금을 젊은 세대의 땀으로 채워 가며 수령하는 세대는 자신들이 즐기는 삶의 비용을 후세에게 넘기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부모 세대보다 못 산다는 전망이 그들이 결혼도 못 하고 자녀도 못 낳는 현재 상황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은퇴란 오래되지 않은 관행을 버리고, 누구나 힘이 닿는 한 사회 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도 은퇴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물론, 아이를 너무 적게 낳고 수명의 연장으로 생긴 초고령 사회와 역피라미드의 인구 구조가 주는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 자동화, 인공 지능 등을 활용해 줄어드는 노동력으로도 사회를 지탱할 길도 찾아야 한다. 세대 간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면서 공존과 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플랜 75’가 영화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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