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목욕탕! 그 황홀한 기억

자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2-05 14:34

자명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는 집을 떠나 가장 편안한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코 목욕탕이 아닐까. 타국에서 오래 머물다 고국에 들어가면 어색한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이질감을 금시 씻어 주는 곳이 목욕탕이 으뜸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한국문화에 금방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가한 시간, 적당히 뜨거워진 탕에 목만 내 놓은 채, 한 사람씩 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해 보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신체 부분도 제 각각이고 거시기도 천차만별이다.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 세상살이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표정은 그늘져 있고, 찬바람이 휑하니 스쳐 가고 있음을 탕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어쩜 저들은 육체의 때를 벗기기 보단 마음에 상처를 씻으러 이 곳을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로 그 곳에 오래 머무는 시간들이 잦다.
내가 처음 목욕탕을 갔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사촌형님 집에서 기거하며 유학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날 아침 사촌 형은 목욕탕엘 데리고 갔다. 꾀죄죄한 내 몰골을 본 형님은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기 전 때 자국이라고 씻겨 집에 데려가려는 형의 배려임을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처음 목욕탕에 들어가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 내게 형은 어서 옷을 벗으라고 재촉했다. 그 때의 난감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어렸을 적 한 번 밖에 뵌 적 없는 사십 중반의 형님이 옷을 훌훌 벗은 채 내게도 빨리 벗으라고 재촉하던 모습은 문화적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도 형은 탕 속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상념에 젖어 있었다. 그 날 형님이 참 외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흘끔흘끔 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눈치 것 훔쳐보면서. 적당히 몸이 데워지자 형님은 손발부터 등까지 때를 밀어 주더니 낡은 수건을 건네며 당신의 등도 밀어 달라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형님과 목욕을 하고 나자 어려움이 없어졌고 적잖이 마음이 안정되었다. 큰 사업체를 운영하셨던 형님을 만날 수 있는 휴일이면 어쩌다 목욕탕엘 갔는데, 형님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욕탕은 내게 어느 장소보다 내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독립을 하겠다고 형님 집을 나와 신문배달을 하며 지낼 때였다. 내 구역은 약수동과 금호동을 있는 고갯길 주변이었다. 남는 신문을 목욕탕에 가끔씩 넣어 주곤 했는데,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도 하고, 휴일 날 공짜로 목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은 날은 주인아주머니가 뜨거운 옥수수차를 한 잔씩 주어 혹한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탕 속에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경제 주간지에서 읽었던, 한 비뇨기과 의사가 쓴 칼럼이 생각났다. "남자의 그것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목욕탕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탕 속을 활보 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모든 남성들은 한 결 같이 어깨가 축 처져 있다. 그렇다고 다들 그것이 빈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중년 남성의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졌음을 은연중 엿볼 수 있을 뿐.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낭설에 대해 이 지면을 통해 그 진실을 밝혀 두고자 한다. "코가 크면 거시기가 크다"라는 그 루머는 전혀 사실 무근임을 밝혀 두고자 한다. 큰 코만 보고 부러워했다가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코가 얼굴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크고 우람하였으나 그건 아주 형편없었고, 영 볼품이 없었다. 저걸로 무슨 작업을 한단 말인가? 쯧쯧. 그것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던가, 남성들이여 낭설에 기죽지 말고 당당해 질지어다. 또 여성들이여! 헛된 소리에 절대 속지 말지어다.
 
중략-
우리는 배꼽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생일날의 흉터,
고아들의 패찰,
인광을 칠한 백골의 주황색 입술이
아삭아삭 제일 먼저 뜯어먹는 온순한 육체의 이삭,
우리는 배꼽 위에서 너무나 평등하다.
김승희의 시, 배꼽을 위한 연가 중에서
 
목욕탕에 올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르는 것은 내 상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온갖 형식으로 치장한 면면들을 벗어 버리고 인간본질의 참 모습들을 만나는 곳, 거기엔 분명 신분의 차별이 없는 지상낙원이 틀림없다. 하여 틈만 나면 나는 그 파라다이스를 찾는다. 풀리지 않은 일상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돌아 볼 수 있고, 명상을 통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 목욕탕! 명상 속 미학이여! 난 행복하다. 이런 좋은 문화 속에 살고 있음이. 나는 또 시간이 나는 대로 탕 속에 목만 내놓은 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내 관찰의 대상이 되어 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래층 여자 목욕탕에서는 지금 어떤 모습들일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그 거룩한 성 2025.12.05 (금)
청소년 시절인 77년도에 살던 동네 교회 목사님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어 사용하시던 전축을 우리 집에 레코드 판도 같이 갖고 오게 되어 음악을 들었는데 가장 많이 듣던 LP는 테너 고이동범 교수님의 노래 거룩한 성이란 찬송가였다. 이 노래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가 지은 음악에 법률을 공부한 변호사가 작사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 노래의 톤이 감미롭기도 하지만 가사가 그 거룩한 성은~ 호산나~ 부분은 매우 감동이 온다....
이형만
황금률 2025.12.05 (금)
겨드랑이에 품은 그 소리는별똥별의 사랑을밤새 들려주던 풀벌레의 협주곡이다청년 시절그를 향한 마음은봄날 아침이었다주어진 환경은젖은 휴지처럼 스며드는 것이라고타이르는 나의 반석푸른 더듬이가방향키를 찾을 때사막에 풍향을 읽게 하고힘없이 부서지는 낙엽을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생애 기쁨이라고황금률을 내주는 사랑의 품이다수많은 별만큼 신비한 그의 소리가삶의 대지에 너울처럼 펼쳐지니창조물의 숨결이 그의 사랑에서...
반현향
  외국에 살면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복잡한 감정을 동반해 찾아온다. 현지 사람들이 특정 TV 프로그램에 대해 말할 때 함께 웃지 못하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감정 표현의 방식이 서툴러 무감각할 때, 은행이나 병원, 행정 기관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복잡한 절차나 서류에 압도당할 때, 직장 동료와 철학, 정치 또는 깊은 감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고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를...
권은경
길목 2025.12.05 (금)
날렵한 초겨울 바람송두리째 가을을 삼켜 버리고온 몸부림으로 서둘러 왔네 어느새하얗게 채색된 눈부신 이 아침 앙상한 사과나무 위모여 앉은 새들 눈꽃 잔치가바로 천국 이어라 향기 실은 꽃 바람 기다림은풍성한 내일로 불어 오려나 삶의 뒤안길옷깃 속으로 드는 찬바람이바로 봄인 것을 뺨 위로 넘나드는 춤추는찬 물결 꽃봉투는너울 되어 먼 여행길을 나서네
김정임
맨 아래 칸 서랍 2025.12.01 (월)
맨 아래 칸 서랍이즈음 옷장의 맨 아래 칸 서랍을 정리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놓지 못해 떠나지 못한 내 어제의 그림자들이 매미 허물같이 모여 사는 곳돌쩌귀도 녹스는 늙은 세월에 대부분은 떠나고몇은 아직 남아서 민속촌처럼 함께 저무는 그곳엔늦가을 저녁의 체온 닮은 바람이 분다내가 거쳐온 삶의 간이역들이 펼쳐진다순진한 젊은 별바라기의 풋꿈도자갈길에 땀 흘리던 이민(移民)의 한여름날도오래전에 잃어버린 시(詩)를...
안봉자
내가 살던 낙동강 상류에는 유달리 풀꽃이 많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그 풀꽃을 따서 강물에 띄워 보내며 들찔레 새순을 꺾어 먹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이웃에 초등학교 선생 한 분이 계셨다. 어린 내 눈엔 그분이 늘 우러러 보였다. 강마을, 농촌에서 태어나 비범한 재주도 없을 것 같아 소년 적 꿈이래야 고향 초등학교 훈장이 되어 풀꽃처럼 사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어려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 했다. 그 때는 읽을 책도 많지...
권순욱
시간(時間) 2025.12.01 (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 말한다.마치 인생의 모래시계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기울어져 모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하지만 젊은 시절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아직 모래시계의 윗부분이 가득 찬 채 천천히, 그리고 지루할 만큼 느릿하게 모래알이 떨어지던 시절 —나에게 그 시절은 바로 10대였다. 국민(초등)학교 시절의 하루는 끝없는 여정이었다.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는 그 작은 꿈조차...
우제용
세월이란 길 위로시간은 물결처럼 흘러가고천천히 스며드는 듯 하다가도돌아보면 한순간의 빛처럼 멀어져 간다 머물 줄 모르는 그 흐름 속에서소중했던 날들조용히 견뎌낸 순간들은가슴 깊은 곳에고운 흔적으로 남아추억이 되어 숨 쉰다 아쉬움이 스치는 기억함께 웃음꽃 피우던 날들의 온기아직도 마음속에서 잔잔히 물결치고참 따스했고 참 고왔던그 멋진 순간들조용한 기쁨이 되어지금도 내 손을 잡아 준다 세월의 길 위에서날 웃게...
나영표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