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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 하이웨이, 늦가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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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1-28 09:56

정효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 토마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뭘 그리 보고 있어? “ 하우스 키퍼 리사가 짜증내며 내게 던지는 말이었다. 아침 회의 중 리사 말을 놓쳤다. 리사에게 미안해하며 살짝 윙크했다. 리사도 그런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곳은 알라스카 하이웨이였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알라스카 하이웨이가  펼쳐져 있다. 난 매일 아침 그곳을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의 운수를 점치곤 한다. 하이웨이에  오가는 차가 많으면  오늘은 오전부터 호텔에 손님들이 많겠구나, 차가 적으면 오후에 손님이 몰리겠구나, 비나 눈이 내리면 도로 사정이 나쁘니 손님이 평일보다 많이 오겠구나, 날씨가 화창하면 여행객이 많으니 당연히 손님이 많겠네, 언제나 호텔이 풀하우스이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운수도 행운일꺼라 믿으며  매일 창밖을 내다본다. 해가 쨍하게 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그 날도 당연히 손님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런데  그 날은 오후가 되도록 평일에 비해 유독 손님이 없었고,  바람도 많이 불어 내가 뭐라 행운을 점 칠 구실이 없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어떻게 손님들이 우리 호텔에…
 
        그때 흰색 트럭 한 대가 하이웨이에서 우리 호텔로 진입하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을 한듯 트럭엔 진흙과 벌레들이 엉켜 붙어서 차량번호판의 숫자조차 알아보기 힘들정도였다. 여행가방을 밀고 들어오는 동양인 아내와 백인 남편의  중년 부부, 그들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체크인을 하면서, 그 부부는 남편의 직업상 매년 알라스카 하이웨이를 두 번씩 지나는데 우리 호텔은 처음이라고 했다.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는 매년 호텔을 지정해 주는데, 올해부터는 원하는 호텔을  고를 수 있다고 하기에  아담한 우리 호텔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운전으로 인해 너무 시장하다며 맛있는 레스토랑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직원이 바로 앞 레스토랑은 걸어서 갈 수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그 부부가 레스토랑으로 간 사이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고 말았다.  오분도 채 지나지 않은 듯한데 그들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레스토랑이 정전으로 인해 잠시 영업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근처의 다른 음식점들도 연락해 보았는데, 모두 정전으로 인해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인스턴트 식품인 김치사발면을 아느냐고 물었다. 중년부인은 웃으며 그녀의 기호식품 중 하나라며 내게 한국인이냐고 되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이민 온지 꽤 오래되었다고  말하니,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고 그 이후엔 한국에 가 본적이 없으며 한국말도 전혀 못한다고 했다. 난 재빨리 캠핑 버너에 물을 끓여서 사무실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김치사발면  두개를 꺼내  그 부부에게  식사대용으로 권했다. 그들은 매우 고마워하며 시장했던지 사발면을 뚝딱 먹어치우고  예약한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프론트데스크 직원이 인터폰으로 아까 그 중년부인이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전해왔다. 내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안내하였더니 , 그녀는 약간 어색해하며 알라스카 하이웨이 여행중에 이렇게 한국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고 반가워하였다. 소파에 앉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처지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세 네살때 쯤 양부모님이 자기를 데리러 왔을때 뿐이라며 그 외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입양된 후 양부모님의 보살핌으로 부족함없이 잘 자랐다고 했다. 한국말을 배울 기회도,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도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현재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십년 전 쯤 어느 날부터 잊고 있었던 친부모님과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고,그 생각이 차츰 깊어져가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남편에게도 몇 번 의논을 했지만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언급을 안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결혼할 때 양부모님이 건네준 낡은 상자와 함께 그안에 한자와 한글로 쓰여진 몇장의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편지들의 내용을 해석해 줄 수 있겠냐고 내게 간곡히 물어보았다.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해 주겠다고 답을 하였고, 그녀는 몇 개월 뒤에 꼭 우리 호텔에 다시 돌아와 묵을테니 그때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기고 내 방을 나서면서 연신 당부를 하였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늦가을 그녀가 내게 문자를 보냈왔다. 그 부부가 내 호텔에 다시 들른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저녁 여덟 시경 호텔로 찾아온 그녀는 그 편지 상자를 소중히 안고 호텔로 들어왔다.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누렇게 변한 편지지에는 그녀의 한국이름, 고향주소 , 그리고 가족관계 내역이 적혀있었다.  ‘1962년 임인년 정월 28일 오시 생’.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그것도 하루 차이로 내가 먼저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이가 같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십이간지’ 와  ‘육십갑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편지에 쓰여진 한국이름을 불러주니 그녀는 “아! 내 이름 알아” 하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런 편지지에 정자로 또박또박 쓰여진 글씨체를 보기만해도 애틋한 부모의 사랑이 느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고 해석해 줄 때마다 그녀는 점점  더 긴장하며  자신의 과거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편지를 끝까지 다 읽어주기도 전에 그녀는 조급하게 내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친부모는 어떤 분들이었을까?   왜 자식의 입양을 결심하셨을까?  이 것 저 것 궁금한 것들을 두서 없이 묻고있는그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나도 코끝이 찡하여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한국의 상황을 설명해주면  궁금중들을 해소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으므로 그 상황에서 어머니의 생활이 힘들어서 더 나은 환경에서 딸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입양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이해시켜주려고 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울먹였다. 달리 할 말이 없었고 한참동안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어색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내 생일이 하루가  빠르니, 내가 오빠라고 하면서  ‘오빠’ 라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멋적은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어눌한 한국 발음으로 한국말을 따라하려고 애쓰는 그녀가 무척 안스러워보였다. 그녀는 한동안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훌훌 털어내고 후련한듯 아쉬운듯 머뭇거리다가 사무실을  나갔다. 다음날 아침 그들 부부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고 했다. 겨울을 지내고 다시 알라스카 하이웨이로 돌아온다며 그 때 다시 우리 호텔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그 부부가 떠나고 난 후 한참을 멍하니 창 밖을 쳐다 보았다. 그들의 흰 트럭의  잔영이 온종일 내 눈에 맴돌았다.
    
      오늘 아침도 알라스카 하이웨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문 밖 차량행렬과  날씨를 보면서 호텔영업을 점쳐 보며, 오늘도 내 운수는 행운일꺼라고 최면을 거는 습관도 변함이 없다. 그 날 이후로 진흙을 뒤덮은 하얀 트럭이 우리 호텔 주차장에 들어올때마다 , 그 중년부인의 한국 이름 석 자가 떠오른다. 알라스카 하이웨이가 내게 남겨 준 늦가을의 특별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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