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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0-24 13:01

박광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위 대장 내시경이 끝났다. 두려움도 끝났다.

얼마나 기다렸던 내시경 검사였던가? 매년 휴가엔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방문하지만,
이처럼 절박하게 휴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속은 더부룩하고, 가스는 차고, 입에선
냄새가 나고, 배변은 검은색이고, 명치 아래 배는 칼로 찌르는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던 날이 얼마였던가? 가정의에게 내시경을 부탁했지만, 위에서 출혈이
있어야 전문의를 통해 내시경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제산제 처방만 내려준다. 나는 그때
까지만 해도 검은색 배변이 위에서 출혈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고, 가정의 처방대로
매일 식전 제산제만 복용했다. 그러나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워크인 클리닉
병원에서는 위궤양이나 위암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내 증상과
비슷하다. 한국처럼 내가 전문의를 찾아다닐 수도 없고, 병원에 직접 내시경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통증과 여러 불편한 증상은 계속되니 불안감은 커져 갔다. BC 주
NDP 총재인 Jack Layton은 2010년 암 진단을 받고 1년 후인 2011년 61세에 세상을
떠났고, 토론토 시장 Rob Ford는 2015년 10월 암 진단받고 그 다음 해 3월 46세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또 캐나다에서는 수술이나 치료를 기다리다가 사망에 이른 사람들의
수가 매년 증가한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그 수가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내가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겪었던 힘듦을 아이들에게 전해줄까 봐 걱정되었고, 남편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어머니가 떠안을 슬픔과 또 아내가 헤쳐 나갈 험난한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차치하고 일단 통증 때문에 뭐라도 해야 했다. 김치와
커피 그리고 술 같은 자극성이 있는 음식을 멀리 하고, 라면 국수 같은 음식도 가능하면
섭취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아침 점심은 오트밀이나 죽으로 먹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1년을 참았고, 드디어 한국 병원에서 내시경을 받게 되었다. 얼마나 고대해왔던
순간인가?
위내시경은 밤 10시부터 금식만 하면 되었지만, 대장내시경은 저녁 7시경부터 약간
짭짤하면서도 달콤하지만 마시긴 괴로운 가루약을 물에 섞어서 1.5리터가량을 두 번
그리고 그만큼의 물을 두 번 마시고, 장에 모든 것을 씻어내고 아무 것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그 약은 약간의 구역질과 현기증을 초래하기도 했다. 내시경 전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내시경을 받으면서 실수는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위내시경을 위해서는 아침부터는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하니, 입은 마르고 말도 꼬인다.
내장 안에 한 방울의 물까지도 다 쥐어짰다. 내시경에 들어가기 전에 출혈, 천공,
호흡곤란, 구역질 그리고 어지럼증 등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시경 시행
동의서에 사인했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과 사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도 엄습하지만, 또
이대로 죽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죽는다면 그 후 여러 가지 일들은 산
사람들의 몫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이 짧은 시간에 스쳐 간다.
차갑고 서늘한 내시경실의 공기는 긴장된 몸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 본인을 확인하고,
내시경이 들어갈 튜브를 입에 물고, 목에 마취제를 뿌리고, 링거에 수면제를 넣는다.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주변 소리가

들려오고 눈이 떠진다. 의식은 있지만, 몽롱하다. 회복실에서 나와서 진료실로
이동하고, 의사에게 내시경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용종의 떼어내서 검사해야 한다고 한 것 같은 데 그것도 꿈인 것 같았다.
진료실에서 나오니 간호사가 용종에 대한 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온다고 재방문하라고
한다.
아직도 배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하다. 가스는 계속 나온다. ‘용종을 떼어냈다고
하지만, 별거 아니겠지. 또 별거면 어떠리. 내 몸에 관심을 기울이면 되지’하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배가 고프다. 이젠 죽이라도 먹을 수 있다. 한 숟가락으로 허기만 달래도
행복인 것을 많이 먹으려 몸을 해치지 않았는가 돌이켜 본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몸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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