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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가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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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6-28 08:50

안오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장독대에 따스한 햇살이 봄눈 녹 듯 녹아내린다. 봉선이 할매가 장독대에 매달려 묵은 때를 벗긴다. 유독 작은 키에 볼품없이 불룩 나온 배가 흠이지만 성격이 쾌활하고 깔끔해서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렸는데 요즈음 무슨 일인가. 볼에 심술주머니를 늘여 뜨리고 집에서만 산다. 어제만 해도 봄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며 군불을 지펴라 파스를 붙여라 영감을 들볶았다. 허기사 농군의 아내로 긴 육십 여년을 살았으니 그 몸이 온전할 리 없다. 그래도 부부 금실 좋기로 소문났고 농사일이나 가정대, 소사에는 칼 같은 할매였는데 거년부터 밤에 헛소리를 하고 깜박 증세를 보이더니 보건소에서 치매증세인 것 같다며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아 보라고 했지만 무섭다며 미루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산다. 


오늘은 날씨탓인가? 한결 밝은 표정이다. 할매가 물을 뿌려 씻기를 마치고 툇마루에 앉는다. 방금 뿌려놓은 항아리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자 만족한 미소를 담고 개나리가 핀 담장 저쪽에서 밭일을 하고있는 영감을 부른다.  “ 이봐유 금동이 신랑 ! “대답이 없자 이번엔 악을 쓴다. “금동이 신랑 거기 없는겨? “그제서야 부시시 일어나는데 할매가 짧막한 봄 보릿단이라면 영감은 잘 자란 장다리 꽃 같은 큰 키였다. 영감이 끌려오는 소처럼 꾸부정하게 걸어 온다.“ 신랑을 내동댕이 치듯 부르는 사람이 어딧슈? 우리 엄니가 들었다간 혼날 뻔 했구먼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이레유…. 짜장면 먹으러 가유 “갑자기 왠 짜장이랴? ““장롱속에 돈 숨겨놓으면 뭘 해유 택시 불러유 올때는 버스 타구유 “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음식값보다 비싼 택시를 타고 나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찝찝하다. 그렇다고 말에 토를 달았다가는 무슨 한풀이가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 알았시유…. “노부부가 가는 곳은 장터근처 점박이네 중국집이다. 이식당은 할매가 시집올 떄 이곳에서 점심을 했고 꽃가마를 타고 마을로 출행했던 곳이다. 코 옆에 시커먼 점이 박혀있는 주인이 여러가지 요리를 장만했으나 할매가 맛있게 먹던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점박이네를 찾는다. 이제는 머리가 허연 주인이 장사는 자식에게 넘겨주고 쉰다며 반색을 한다. 할매는 말갛게 짜장면 두 그릇만 시켰는데 주인은 고맙다며 부추 잡채와 꽃 빵을 내 놓았다. “ 아이고 !! 이걸다 어찌 먹는데유? ….”호들갑을 떨었으나 결국 쉬엄쉬엄 접시를 다 비우고서야 일어났다. 할매가 사는 양지골은 산속 깊숙히 숨겨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석양의 붉은 햇살이 계곡에 넘실 거렸다. 버스에서 내린 노 부부는 배부름에 지친 느린 걸음으로 마을로 들어선다. 가쁜 숨을 몰아 쉬던 할매가 심술을 부린다. “ 아따 그점백이 아자씨도 이상한 분이네. 왜 남의 배를 불려놓고 힘들게 한데유 ?” 영감이 슬그머니 팔짱을 끼워 주자. 할매가 한술 더 뜬다. “이왕이면 나를 업고 갔으면 좋겠는디?“ “ 그 큰 배를 어찌 짊어 진데유….? ““ 그럼 만약 내가 오늘 시집온 당신 각시라면 어찌 하겠시유? “ “ 그걸 왜 거기에다 갔다 붙여유 ? “ “ 나는 말이지유 옛날이나 지금이나 당신 각시인디 죽어서도 당신 각시유 나 힘들어 못가유 “할매가 가던 길을 멈추고 배를 내민다. 도데체가 말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영감이 혀를 차며 등을 내 주자 냉큼 올라 타며 “ 이랴 ~ “ 발장구를 친다. 영감이 비지땀을 흘리며 대문을 들어서자 마당을 가로 질러 마루에 내려 놓는다. “ 헷 헤 헤 무거웠씨유….? “ “ 아니유 ?..... 업을만 했씨유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도 등에서 땀이 흐른다. 할매가 잠시 먼산을 바라보며긴 한숨을 쉰다. “ 오늘은 참 좋은 날이유 먹고 싶은 것 먹고 당신 등에 올라 호강을 했는디 …. “ “ 앞으로 이런 날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네유….”“ 뭔 소리여 ? 가을엔 큰애가 합치자고 했으니께 매일이라도 할수 있는디….” “ 아이고 착한 영감…. “두 손으로 영감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입술이 실룩인다.  나는 내 병이 못된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씨유 그 병이 얼마가면 마을 사람도 못알아 보고 또 얼마가면 당신도 자식들도 몰라 본담시유….흐 흑 ““ 약만 착실히 먹으면 나슬수도 있다고 했씨유 “ “ 아니유 …. 지는 해는 아무도 못 버텨유….” 이 무슨 날 버락인가 보건소에서 치매라고 했을 때 보다도 더 무서운 고통속에 잠겨 버린다. “ 나는 밤마다 기도를 하지유 좋은 날 저녁 잘 먹고 자는 잠에 보내 달라고…. “ 안돼유…. 난 못 보내유 …” 할매의 작은 손을 잡고 흔든다.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는 석양을 바라보던 할매가 탄식처럼 말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니께….나는 세상에 나와서 당신을 만나 밝은 세상을 보았고 착한 육 남매 무탈하게 출가 시켰으니 그만하면 잘 살다 가는 거유….애 쓸거 없씨유….” 그 날밤 노 부부는 오랫동안 울었다. 영감이 다급한 마음에 큰애에게 알렸고 종합병원 전문의사를 만났으나 진찰은 싱겁게 끝났다. 의사는 연세가 높아지면 노인성 질환과 함께 할머니와 같은 증세는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검사 결과 특별한 사유도 없는데 치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사시라고 했다. 다만 치매라는 놈은 외로움을 좋아한다며 예전처럼 농사일도 빵빵하게 식사도 하시고 건강의 북소리도 빵빵하게 울리면서 노인정에 가셔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빵빵하게 추시면서 신나게 즐겁게 사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봄은 더욱 무르익어 갔다늘어지게 피던 개나리도 파란 옷을 입고  벚꽃나무는 짙은 향기를 토한다 부부는 오늘도 택시를 타고 짜장면집으로 간다할매가 종달새처럼 종아린다 “  오늘도 빵빵하게 먹을 판인디유? “ “ 그런디 건강의 북소리는 작작 울려유 “ 할매가 소녀처럼깔깔댄다. “ 그럼오늘도 업고 가는 거지유 ?”“ 거기서도 빵빵은 안되유….” 할매가 굴러가듯 자지러 진다점박이네 중국집으로 가는 길은 즐겁다그렇게 봄날은 슬며시 왔다가 나그네처럼 꽃향기에 묻혀 가물가물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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