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교씨가 골프를 가는 날이다. 이런 날은 어린이가 소풍 가는 날 같아서 그 재미가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그도 일찍 일어나 팔 학년은 팔십 번 씹으라는 안사람의 잔소리를들으며 서둘러 출발했지만 그 표정은 어둡다.
언제부터인가 잘못 생성된 바위처럼 늘 불만스럽게 굳어져 있는 것은 이제 그의 본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가로수 길을 달리며 유성처럼 흐르는 햇빛을 보며 눈가에 주름을 잡고 강아지가 달려드는 시원한 살랑 바람에 눈 녹 듯 마음이 풀린다.
그가 가는 곳은 “ Y ” 골프장이다.
한국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업 다운이 적당히 있고 오밀조밀 한국 골프장과 정서가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게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호회도 만들고 친구처럼 이웃처럼 웃고 떠들며 다정한 한 때를 보냈다. 그때 진교씨도 함께 했다.
수년간 어울려 고향의 향수를 달랠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요란한 빈 수레 소리가 나고 큰소리가 오가는가 했더니 한순간에 동호회가 해체되고 말았다. 아쉬움을 남긴 체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그는 Y 골프장 캐네디언 모임인 시니어 클럽에 입회했다. 그들은 친절했고 경기규칙은 엄격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첫 모임에 나섰던 날. 그들의 티 샷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다. 육중한 체구에서 나오는 괴력의 비거리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구! 임자 만났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회원 80여명중에 자신이 제일 왜소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한국에선 군대도 갔고 M1 소총이 땅에 끌리지 않았으며 166의 키면 키순으로 섰을 때 중간은넘지 않았던가? 해서 그는 골프만 갔다 오면 잘 안 된다고 짜증을 부렸다. 안사람이 동네가 틀리고 사람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여 “고집을 부렸다.
허기사 그의 핸디는 80에서 그 중간을 맴도는 제법 솜씨 좋은 골퍼였다. ‘작은 고추의 매운맛’ 은 두어 해나 지나서 찾아왔다. 그 해 시니어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우연이 아니라는 듯 그 다음해 에도 연속 챔피언을 했다. 또 여섯 번을 이겨야 승자가 된다는 메치플레이 챔피언도 했다. 장대 숲에서 일궈낸 작은 고추의 통쾌한 승리다. 그 후 그는 무릎을 다쳐 수술을 했고 회복은 되었으나 지팡이를 놓지 못한다.
진교씨는 오늘도 혼자다. 늘 시니어들과 함께 했는데 코로나 질병이 길어지자 올해 모임을 폐하게 되면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다리에 힘이나 키우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혼자는 적적하다. 문자적으로 따지면 황제 골프요 말로 하자면 빚 좋은 개살구다.
그는 티박스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본다. 여기가 올라가라 내려가라 홀인데 이 홀에 오면 옛친구들의 와르르 무너지는 웃음 소리를 듣는다. 앞에는 높지막한 언덕이 가파르게 벽을 이루고 그 너머로 그린이 있다. 이 언덕을 넘겨야 하는데 친구들은 대충 언덕 중간이나 칠 부 능선쯤에 간다. 공이 튀어서 넘어가면 좋고 완전히 내려와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올라가다 멈추거나 내려오다 걸리는 놈은 괘씸한 놈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쳐야 하니 난감하다. 그러니까 공을 쳐 놓고 힘차게 올라가면 “올라가라 ~~ 올라가라 ~~ “합창하듯 외치고 비실비실 내려오면 걸리지 말라고 “내려와라 ~~ 내려와라 ~~ “악을 쓴다. 아마 아이들이 보았다면 “어른이나 애들이나 노는 것은 똑 같네” 할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누구라도 맘껏 휘두르고 싶은 욕망의 홀이 있다. 언덕중간쯤에서 내려치는 아름다운 홀이지만 오른쪽은 시커먼 호수요 왼쪽은 농장이다. 벌 타가 있는 위험한 홀이지만 공이 높이 떠서 빨래 줄처럼 쭉쭉 뻗어 나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감을 준다. 친구들은 이 홀에 오면 못된 장난을 친다. 갑자기 가수 설운도의 노래“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인데 바로 이런 뜻이다 “호수로 갈까요? 농장으로 갈까요? 차라리 눈을 감고 칠까요?”
그러니까 조심에 신중을 더하는데도 어떤 이는 물에 빠뜨리고 벌레씹은 표정이 되는가
하면 누구는 잘 쳐 놓고 주먹을 불끈 지면 굿 샷이 난무한다. 아마 애들이 보았다면 “어른이나 애들이나 노는 것은 똑같네 했을 것이다”
길다란 나무그림자가 골프장을 덮쳐왔다 그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농부같이 그린을 떠나 클럽하우스로 가는 언덕길을 넘을 때였다. 질펀한 황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는 어둠이 서성거리고 있는 황혼 앞에 선다.
” 그려….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지…”
그런데 어린아이같이 웃고 떠들던 어른들은 지금은 없다. 어떤 이는 하늘나라고 갔고 더러는 지병으로 못 나오고 다른 친구는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잠시 깊은 시름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저 황혼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겠지요?” 돌아보니 낯 모를 여인이다.
“거기서도 애들 키우면서 늙어가고 있겠지요”
그가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자 빤히 바라보던 여인이 “아저씨 전에 골프 잘 치셨죠?” 묻는다.
“그걸 어찌 아셨 슈?”
“시니어 클럽 피터가 제 남편이에요. 다시 시작해 보세요”
“지팡이를 짚고 얼마나 잘 치겠시유?”
“아뇨…아직 멀었어요…” 부인이 간 후
“아이고… 저 여인이 일거리를 주고 가네 핫 핫 핫 “
한바탕 웃고 나니 눈물이 나온다. 얼마만에 웃어보는 것 인가?
한때는 일 보다 재미있는 놀이는 없다고 했다. 일에는 늘 흔적을 남기니 즐겁다. 그는 일손을 놓고 조롱 속의 새처럼 한가함에 지쳐 노래를 잊어 벼렸다. 머리에 하얀 배꽃이 반발할 땐 그 참담함에 신음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우울증에 시달려 말문을 닫고 살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려 지금도 늦지는 않은 겨 남겨진 것에 감사하며 모든 것에 일하는 것 같이만 하고 살자”
그는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남은 비밀한 열쇠를 집어 들고 쫓기듯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그네여! 뒤 돌아보지 마라. 생각에 치우치면 갈 길이 고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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