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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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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1-22 17:06

이원배 / 캐나다 한국문협 이사장


요즘 나는 마약에 빠졌다. 매사가 시들 해지고 괜히 사춘기처럼 우울해지는가 하면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약을 하고 나면 갑자기 삶에 대한 의욕이 샘솟는다. 기분 좋은 피곤함에 절로 명랑해진다. 회춘을 하듯 팔, 다리에 힘이 뻗친다. 중독성이 강해서 매일매일 하고 싶은데 너무 과도하면 몸을 상할까 봐 일주일에 두세 번이 고작이다.

  내 글을 여기까지만 읽으면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어쩌다가? ? 별로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하며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도둑질하고 도박 빼고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던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데다, 주어진 미래가 무한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한번 해 보기로.

 

내가 인생 70을 바라보며 마약처럼 빠진 것은 바로 헤엄치기, 즉 ‘수영’이다. 어릴 때 물가에서 자랐다면 최소한 개구리헤엄이라도 배웠을 텐데, 나는 유소년시절을 거의 대구 도심에서 자랐다. 기억하기로는 중학교 친구들과 대구 북쪽의 동천강에서 수영을 배우려 했던 것이 내 첫 헤엄치기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소용돌이에 들어가 실컷 물만 먹고 나온 후, 겁먹은 나는 청년이 될 때까지 수영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20대 중반에서야 다시 수영에 도전하게 된 것은 친구들과 강과 바다로 놀러 가면서였다. 어린아이들조차 물방개처럼 신나게 물길 누비는데 나는 그저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서울 종로 YMCA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30여명의 수강생 중에 남자는 단 세 명. 그것도 맨 뒷줄에 남자들을 세우는데 근시인 나로서는 강사의 시범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면서 물에 뜨는 것 까지는 1m 정도의 얕은 수영장에서 용케 배웠는데 2m정도의 깊이에서 그만 호흡조절 실패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수영과는 담을 쌓았다.

 

캐나다에 와 보니 호수와 강과 바다가 사방에 있고, 지역마다 커뮤니티 센터 내에 수영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배우려 하지 않았고, 나이 들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또한 감당되지 않았다.  이제는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벌려놓은 일들을 정리할 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장에 쌓인 책들을 하나 둘 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30대 초반에 구입한 카네기 인생지침서를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은 76세때 소피아 로렌과 마론브란도 같은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감독을 했으며, 역사학자 사무엘 엘리엇 모리슨은 70대 후반에 <미국민의 옥스퍼드 역사>를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파블로 카잘스는 88세의 고령으로 TV에 출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화가 피카소는 90, 샤갈은 80대의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번역가이며 탁월한 통역가인 올리비오 로제티는 80세인데도 하루에 16시간을 일하고 6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않았다. 미국의 시인이 칼 샌드버그는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을 모두 70대에 썼다.

우리가 보통 늙었다고 간주하는 나이에 위대하고도 중요한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 먹는 것이 늙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밴쿠버에서 만난 원로 분 중에서 74세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80이 넘도록 왕성하게 진료활동을 하는 분이 있고, 80세에 문학공부를 하여 교민신문에 작품발표를 하는 분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갓 70에 치매가 와서 요양시설에 들어가 있는 분이 있고, 몸과 마음이 허약해져 걸음걸이조차 힘들어 하는 분도 있다. 살펴보니 후자들은 타인과의 교류를 꺼리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며 그저 하루 종일 집에서 소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 그가 인용한 런던 국제노인병학회 보고서에 의하면 ‘장수하는 것은 유전이나 체질과는 무관하다. 그것보다는 성격보다 감정 같은 후천적 요인에 좌우된다. 만약 당신이 건강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용기가 많은데다, 친절하면서 애정 깊고 자기의 일에 만족을 가진다면 당신도 100세가 넘도록 인생을 즐길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100세가 넘은 미국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니 신뢰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수영을 시작했다. 하와이나 칸쿤 여행, 또는 크루즈 여행 때 마다 호텔이나 선상의 멋진 실내수영장 앞에 서면 항상 작아진다.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을 번갈아 가며 인어공주처럼 물속을 누비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빠지면 즉시 가라앉는 맥주병 신세. 고작 수영장 턱에 앉아 물속에 발 담그고 퐁당퐁당 물장구나 치던 내가 지금은 배영으로 50m까지 헤엄쳐 간다. 자유형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적어도 빠지면 잠시 떠 있는 수준에는 도달했다. 버나비 커뮤니티 센터 수영 기초반에서 아들 딸 또는 손자 뻘들과 함께 열심히 헤엄치기를 배우고 있다. 강습이 없는 날은 아내의 개인지도 아래 연습을 하니 수영강사가 무척 빨리 배운다며 ‘엄지 척’을 해준다. 어린아이처럼 으쓱해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나이 들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만 젖어 있을 일이 아니다. 남은 날 중 어느 하루만 죽음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죽도록’ 열심히 살 일이다. 그래서 수영을 해 보니 식욕도 생기고 기운도 나며 삶의 활력이 더해진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 이루지 못한 것들을 찾아 다시 도전할 것이다.

 

최근 80대 중반의 문학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머지않아 70이 되어간다고 하니 그 선배 왈. ‘좋은 시절입니다. 아직도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내가 그 나이라면 못 할 일이 없을 턴데’ 하며 부러워한다.

 

그렇다. 인생은 70부터다. 모든 사회적 경제적 의무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시간만을 가질 수 있을 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비로서 젊은이처럼 내 앞에 놓인 새롭고 경이로운 도전에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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