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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지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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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11-04 11:19

이정순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좋은 아침!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다들 건강하게 잘 보냈지?”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친구들 얼굴이 모두 까맣게 타 있었다. 선생님 얼굴도 해수욕장을 다녀오셨는지 아프리카 사람처럼 까맸다. 
“아니요. 우리 집은 에어컨이 고장 나서 짜증이 나는 방학을 보냈어요.”
“최 열이 고생 많았겠구나.”
아침 시간인데도 운동장은 더운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는 듯했다.
“와우-! 엄청 더웠겠다. 우리 집은 에어컨을 강으로 틀었는데도 덥던데. 쌤통이다.”
우리 반 ‘밥맛’의 말에 아이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밥맛은 괜히 사학년 일 학기 때부터 내게 시비를 거는 아이다. 이름이 이천재다. 이름답지 못하게 아는 건 없으면서 아는 척, 있는 척만 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별명이 ‘밥맛’이다.
 "자, 조용!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열이 집뿐만 아니라 이번 여름은 대한민국 전체가 열 도가니였다는 사실이야. 다들 더운 이유는 알고 있겠지?”
“네, 지구 온난화 때문이에요.”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구나. 그럼 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는지 집에 가서 찾아보길 바란다.”
“에이, 또 숙제에요?”
밥맛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건 숙제가 아니고 자유의사야. 자, 방학숙제 한 것 내렴.”
떠들썩하던 교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척척박사! 오늘 단단히 더위 먹은 모양이다. 네겐 그 정도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니냐?”
방과 후 교실을 나서는데 단짝 민욱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정말 더위를 먹은 건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내일 보자! 반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기로 해서 난 먼저 간다.”
민욱이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민욱이와 헤어지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 생각하며 걸었다. 오늘 창피당한 걸 생각하면 자꾸만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에 들렀다. 
“열이 왔구나? 오늘은 어떤 책을 읽고 싶어 왔니?” 
“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그건 환경 도서 목록에서 찾아보렴. 저쪽이야.”
“네, 감사합니다.”
오늘 도서관 자원봉사 아주머니는 민욱이 엄마였다. 민욱이 엄마가 가리키는 곳에서 환경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 이야기』
‘어, 내 이름하고 똑같잖아?’
나는 얼른 그 책을 뽑아서 민욱이 엄마 앞에 내밀었다.
“우리 욱이도 열이처럼 책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욱이는 대신 운동을 잘 하잖아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마트에 다녀온다는 메모가 냉장고에 붙어있었다. 할머니 방문을 빼꼼히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성경책을 읽다 안락의자에서 잠이 들었는지 안경이 콧등에 걸쳐있었다. 나는 할머니 안경을 빼서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방문을 살며시 닫고 나왔다. 가방에서 빌려 온 책을 꺼내 읽었다.
엄마가 마켓에 다녀오셨다. 장바구니에는 빨간 사과가 담겨있었다.
“열이 왔구나? 덥지?
“네!”
“마트에서 욱이 어머니를 만났는데 도서관 들렀다면서? 그래, 오늘은 무슨 책을 빌려왔니?”
“환경에 관한 동화에요. 근데 이 책 누가 썼는지 아세요?”
“글쎄다.”
“제 이름하고 똑같은 아저씨가 쓴 책이에요.”
“그러니? 무척 반가웠겠다. 그 아저씨 환경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구나? 그 책에서 우리 열이는 뭐가 궁금할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한테 다 말했다.
“저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번처럼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났으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 새 걸 주문했는데 주문량이 워낙 많은지 여름이 다 갔는데도 아직 배달이 안 오네.”
엄마가 마트에서 사 온 사과를 쟁반에 담아왔다 .
“과일 먹고 읽으렴.”
엄마는 사과 한쪽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사과가 참 달고 맛있었다.
“엄마, 이 사과를 지구라고 한다면요.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대기는 이 빨간 사과 껍질이라고 볼 수 있대요. 지금 지구 대기가 이 사과 껍질처럼 빨갛대요. 사과껍질이 사과 속을 보호하듯이 대기가 지구를 보호해야 하는데 오염돼서 그렇지 못한대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대기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는 거래요.”
“우리 열이 대단하구나.”
“엄마, 온실 가스는 지구 온도를 알맞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도 한대요. 근데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배출되어서 지구가 숨쉬기가 힘들대요. 그래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생겨 이번 여름처럼 더운 거고요.”
“열이 덕분에 엄마가 제대로 환경 공부를 하는구나.”
엄마는 또 사과를 내 입에 넣어 주셨다 .
“그렇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니?”
“보지 않는 텔레비전은 꺼야 해요. 전기를 아껴야 한대요. 전기는 석유를 때서 만들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주범이래요.”
나는 무심코 켜놓은 텔레비전을 껐다. 선풍기를 강에서 약으로 돌렸다.
“엄마, 에어컨 대신 손부채를 사용하면 에어컨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대요.”
“산이나 도시에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네, 엄마. 지구 온난화를 막는데 숲이 큰 역할을 한 대요. 여기 보세요. 최열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숲은 ‘산소공장’이래요. 잘 가꾸어진 숲은 탄산가스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만든다고 했어요. 숲은 또 공기 정화기 역할도 한대요. 대도시의 오염 된 공기에 비해 숲속은 오염된 먼지가 거의 없대요.
“최 열 아저씨 대단하신 분이구나. 우리 열이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쉽게 쓴 동화책인 모양이구나.”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는 책이에요 .”
“이 할미도 하나 거들어도 되겠니?”
“아, 할머니! 시끄러워 깨셨어요?”
“어미와 열이가 환경 공부하는 데 방해 될까 봐 자는 척했지.” 
“호호! 그러셨어요? 어머니.”
“참, 할머니 무슨 이야기 해주실 건데요?”
“이 할미가 딱 열이 만 할 때는 학교에서 나무심기 하러 단체로 산에 갔었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다 베어가서 산이벌거숭이가 되었단다. 큰 나무는 목재로, 작은 나무는 땔감으로 싹쓸이로 베어가서 산마다 벌건 흙이 드러나 보기가 흉했지. 주로 일본 리기다소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또 송충이가 얼마나 끓던지 대나무로 집게를 만들어 깡통을 들고 산에 송충이 잡으러 다녔지. 그때 심은 나무가 자라 그나마 지금은 푸른 숲을 볼 수 있단다. 그때 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쉴 뻔했지 뭐냐. 그런데 그 아까운 나무들을 다 베어내고 이렇게 높은 아파트를 지었으니 오존층인가 하는 것이 무너진 게지. 그리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가고, 송충이 잡으러 가는 게 더 신났지.”
“할머니도 공부하기 싫었어요?”
“아무렴, 아마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없을걸. 어미는 안 그랬냐?”
“저라고 다를 게 뭐 있었겠어요?”
“햐! 엄마도 할머니도 저희와 통하네요.”
“하하하, 호호호!”
할머니와 엄마 나는 한바탕 웃었다. 할머니는 나무 심던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주셨다.
“와, 우리 할머니도 환경 박사시네. 송충이 징그럽지 않았어요?”
“왜, 안 징그러웠겠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나으니 열심히 잡았지. 그게 또 할당량이 있어 그 양을 못 채우면 혼나기도 했고.”
“전 국민이 환경 운동가겠네요.”
“그런 셈이었지. 열이는 책마저 읽고 있어. 할미가 엄마 거들어 저녁 준비할 테니까.”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일어섰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해가 서쪽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예요?”
“우리 열이가 좋아하는 불고기 좀 하거라.”
“네, 어머니. 오늘은 열이 덕분에 불고기 파티해요.”
“와, 신난다. 엄마, 다음 이야기는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해드릴게요.”
“그러렴. 엄마 기대되는데.”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최열 아저씨는 어려운 환경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주변에서 실천 할 수있는 것부터 하라고 한다. 나는 뭘 실천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봤다. 
‘아, 맞다. 헤어스프레이!’
나는 4학년 들면서 지혜가 마음에 들었다. 학교 갈 때마다 머리에 헤어스프레이를 엄마 몰래 뿌리고 갔다. 그것도 프레온 가스라 공해의주범이라고 했다. 내일 아침부터 스프레이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최 열 아저씨 짱이다. 나도 앞으로 환경에 관심을 두어야겠다. 최열아저씨처럼 환경 지킴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 맛있는 불고기 냄새가 솔솔 났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열아, 저녁밥 준비 다 됐는데 책 다 읽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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