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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길 건네주는 사람

송무석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11-07 10:14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꿩이나, 산토끼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농한기인 겨울 어른들은 눈이 덮인 들판에 독을 넣은 콩을 뿌려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잡았다. 나도 덕분에 꿩고기와 토끼 고기를 적어도 한 번은 먹어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난하고 먹을 게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 야생동물들을 잡아먹었다. 이렇게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농약을 많이 써서 먹이 사슬을 끊은 까닭에 우리나라는 이제 시골에서도 야생동물을 발견하기 힘들다. 만약 꿩 같은 야생동물의 고기를 판다면 그것은 분명 농장에서 닭처럼 키운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동물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은 사람만 만나면 도망가기 바쁘다. 목숨을 보전하려면 온 힘을 다해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리라.

캐나다에 와서 야생동물을 자주 조우해 놀랍기도 하지만 정작 신기한 일은 너구리건 작은 다람쥐건 기러기건 많은 야생동물이 사람을 봐도 도망가기는커녕 가만있거나 멀뚱멀뚱 쳐다본다는 점이다.캐나다 사람들은 우리보다 오래전 이런 동물들은 사냥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살게 되었고 일찍 동물 보호에 대해 인식을 했기 때문에 이 나라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리라. 엄연히 캐나다는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개체 수를 늘려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린다고 이를 금지하고 벌금을 물린다. 하지만, 타인헤드 같은 공원에서도 심지어 상가 주차장에서도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니, 매닝파크나 록키산맥의 다람쥐처럼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다가와 먹이를 달라고 하는 모습을 하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눈이 덮인 알프스산맥에 먹이를 구하지 못한 동물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위험한 길을 몇십분씩 달려 먹이를 뿌려주는 스위스 공원지기를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겨울에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캐나다 야생동물 보호원의 기사를 읽은 적도 있고. 요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철에 야생동물 먹이를 준다지만 야생동물 보호라는 생각이 여전히 낯선 내게는 이런 일이 별나 보인다.

우리 집에는 옆집 큰 개 덕택인지 다녀간 흔적으로 분비물을 남기고 가던 너구리 가족이 한동안 안 보여서 좋아했다. 그런데, 요즈음 다시 등장해서 뒤뜰에 실례하고 가는 것은 물론 식구들이 뜰에서 신는 신발을 뜯어 못 신게 만들기도 한다. 덕분에 밤마다 신발을 치어 놓아야 한다. 창문을 두들겨도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가만히 있는 너구리 녀석들은 꼴 보기 싫다. 청설모도 자주 와 견과 껍질 등을 남기고 때로는 땅에 견과를 묻어 놓고 가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줄 만하다. 청설모와 너구리는 때로는 화분에 심어 놓은 오이를 따 먹다가 버리고 가고 시퍼런 토마토까지 따 놓는다. 나는 블루 제이와 벌새의 방문을 반기며 가만히 그들의 움직임을 쳐다본다. 개똥지빠귀는 가을에 작고 빨간 열매를 다 먹을 때까지 쉼 없이 날아오지만, 유리창에 부딪혀 죽지 않게 블라인드를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까마귀는 자주 오지만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빼면 별로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수요일 지리가 익숙지 않은 밴쿠버 다운타운 식당을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운전해 찾다가 그만 길을 놓쳐서 스탠리파크를 본의 아니게 일주하게 되었다. 그때 프로스펙트 포인트 부근에서 한 여자분이 두 살 정도의 아이와 길을 막고 선 것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살펴보니 너구리 세 마리가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분은 너구리들이 무사히 길을 건너서 반대편으로 가게 해 주고는 아이를 데리고 길을 벗어났다. 나는 집에 출몰해 말썽을 부리는 너구리가 얄미운데 저분은 너구리의 안전을 위해 유아까지 길에 내려놓았다니! 그분 덕분에 야생동물의 생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야생동물들은 갈수록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주거지를 넓혀 갈수록 그들이 살 곳은 없어질 수밖에 없으니. 주거 공간에까지 등장해 우리 생활을 귀찮게 하는 너구리 같은 녀석들은 싫지만,점점 더 새로운 공간을 개발해서 숲과 산, 바다를 없애는 등 우리 사람의 영역을 스스로 너무 확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주로 대하는 동물은 사람이 사는 공간에 잘 적응한 동물이다. 가축은 아니지만, 집에서 나가 야생화된 고양이, 사람이 기르다 버린 토끼, 너구리, 쥐처럼. 이와 달리 사람 근처에 살 수 없는 동물을 위해서 사람이 개발하거나 들락거리지 않고 그네들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보전되어야 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포유류 질량의90% 이상이 사람과 가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사람은 다른 동물이 더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강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개발과 모험을 자제하지 않으면 지구 곳곳이 우리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다른 동물의 생존을 위한 공간을 남겨 놓는 것이 단지 겨울철에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이를 나눠주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야생동물 종이 보전되고 살길을 열어주는 길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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