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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로운 겨울 로키

박병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3-13 16:04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산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가보지 않은 산은 내 산이 아니다. 내가 만난 산들은 힘겹게 올랐을 때 기억에 더 생생하고 내 카메라에 담아 오면 비로소 그 산은 내 산으로 남는다. 눈 감아도 보이고 스크린이나 컴퓨터로 다시 볼 때면 그 감격이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와서 안긴다.

  세계의 절경, 캐나다 로키는 내가 사는 밴쿠버에서 하루길이다. 매년 여름이면 찾아가서 산행을 한다. 요즘처럼 멀리 보이는 산정이 하얀 눈모자를 쓰고 있으면 또 솔깃이 로키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산에는 눈이 길길이 쌓이고 그 눈이 쏟아져 눈사태를 내면 길이 닫히고 그늘진 도로는 미끄러워 차로 운전해 가기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소복을 입은 산야를 달리면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한잔 들고 전망칸으로 올라가 높은 산들을 바라보는 느긋함이 있는 게 겨울기차 여행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떠나는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져 오면 기다리고 준비하는 설래임이 있어서 좋다.

  눈산 사이로 기차는 느릿느릿 달린다. 캐나다 기차는 생각보다 속도가 느리다. 산이 다가 오는가하면 호수를 비켜가고 얼어붙은 폭포도 지나간다.

  지난 1월 15일 밴쿠버 산꾼 12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겨울 로키를 만나러 나섰다.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한인 산행단체가 만들어진 1997년 이후 한때는 산꾼 50여 명이 몰려가기도 했다. 그때는 Via Rail에서 객차 한 칸을 통째로 내준 적도 있다.



 최근에는 VIA Rail도 긴축재정을 하는지 매주 3회 운행하던 대륙횡단 기차를 2회로 줄였다. 겨울이라서 그렇다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한데---.

  대신에 저녁 5시 반에 떠나던 밴쿠버발이 8시 반으로 늦어져 기차에서 눈산을 보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 더 길어졌고 점심시간이 느긋해진 것은 다행이다.

  기차는 그냥 앉아서 가는 코치칸과 침대칸이 있는데 ‘버트’라고 하는 커튼을 치는 상하 침대와 2인1실로 된 방이 있다. 그리고 정갈한 음식을 서브하는 식당차와 2층으로 올라가 360도 열려 있는 경치를 만끽하는 전망칸도 있다.

  오른편으로 로키 산맥, 왼편으로 카리부 산맥 사이를 달리는 때에 눈이 떠지고 아침을 만난다. 최근에는 아침에 잠이 스스로 깨지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식당 칸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커피향이 어우러져 시장기를 돋운다. 네 사람이 한 식탁에 않아 서비스를 받게 된다. 식사가 끝나면 카메라를 들고 전망 칸으로 올라가 지나가는 눈덮인 산들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캐나다에 와서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산벗들과 로키의 겨울 산을 만나러 가는 이 여행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할수록 새삼스러워 진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폭포를 하나 만나고 롭슨 산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혹시 그 구름옷을 벗으려나 기대해 보지만 역시나 짙은 구름을 덮고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옷을 벗었다면 차내 방송을 하고 기차는 속도를 줄여 준다. 롭슨은 그러한 산이다. 그래서 더 신비하다고나 할 가.



  롭슨산은 3,954m로 캐나다 로키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B.C주에 있으며 자스퍼 국립공원과 붙어 있는 랍슨 주립공원의 주봉이 롭슨산이다. 그 뒤편이 궁금하여 두 번 헬기로 들어가 산행을 했다. 롭슨 빙하가 발을 담고 있는 버그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서 내려오는 강줄기가 수없이 많은 폭포를 이룬다. 이름하여 ‘천의 폭포’ 계곡이다. 그 폭포에서 생기는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산정을 덮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주 의젓한 산이다..

  롭슨산을 만나고 긴 무스 레이크를 지나면 머지않아 자스퍼에 도착 한다고 기내 방송을 한다. 19시간을 달려 자스퍼에 이르게 되었다.

  자스퍼는 캐나다 로키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산간 도시다. ‘옥’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인구 4,500명, 주민은 관광과 철도에 종사한다. 자스퍼가 초기에는 야생 모피의 교역소였으나 1907년에 이르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개발을 억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공원이다.



  샤틀 차량으로 Sawridge Hotel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실내 수영장과 자꾸지가 있고 나무와 풀이 욱어진 실내에 식당이 자리한다. 와인을 곁들인 Three Course Dinner를 들고 각자 피곤한 몸을 누인다, 오늘은 단잠을 잘듯하다.

 아침에 잠을 깨니 셋째 날이다. 오늘은 고드름이 성성한 계곡에 들어가는 날. 아침을 먹고 관광회사 차를 타고 방한 장화와 아이젠을 챙긴 후 Maligne 계곡으로 향한다.

  말린 계곡은 수십억 년 전 큰 호수의 물줄기가 땅속을 파 동굴을 형성하며 흐르다가 빙하가 덮치면서 지면을 걷어내고 계곡을 들어나게 한곳이다. 바위 무늬 무늬 마다 세월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바다 속에 살던 생물체의 화석을 본다. 옛날 바다 바닥이 지금 로키 산에 와 있는 거다. 영겁 속에 지층은 변하고 인간은 그 한 지층이 형성되는 세월, 수천 분의 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존재하다가 홀연히 살아지는 하루살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숙연해 진다.

 겨울이 되어 계곡의 수원이 되는 메디신 호수가 마르면 물이 흐름을 멈추고 큰 추위에 바닥이 언다. 그러면 그 계곡 속으로 들어가 오랜 시간 흐르는 물이 만들어 낸 조각을 보게 되고 그 바위 조각에 결려있는 고드름 기둥을 만난다.

  마침 며칠 동안 영상의 기후가 계속되어 한곳의 얼음이 녹아 물이 고여 있었으나 모두 무사히 건너서 계곡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고드름이 아니다. 바위 절벽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빙벽. 그 빙벽을 오르는 사람을 보게 된다.



  이 거대한 얼음 빙벽은 추위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Winter's Wonder이다.

겨울 로키에서 이런 빙벽을 보는 곳이 하나 더 있다. Columbia Icefield를 지나 남하하면 Sunwapta Pass를 내려가게 되는데 그 고개를 다 내려와 만나는 곳이 Weeping Wall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눈물의 벽이다. 큰 절벽이 여름이면 눈물 같은 작은 물줄기들이 벽을 타고 흐르다가 겨울이면 얼어서 장관을 연출한다.

  산이 울고 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워서 사시사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가.

고고히 높이 솟아 하늘을 지붕 삼고 구름과 벗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이던가.

산은 그렇게 살아있다. 살아 있어서 눈물을 흘린다. 죽은 이는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다.

 




 오후에는 산길을 걸었다. 시내를 남쪽으로 돌아 팍 랏지까지 가는 길, 날씨는 영상이고 숲속 눈길은 상쾌하다.

 중간쯤에서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엘크를 만났다. 큰 뿔을 가진 수놈이다.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 비키라고 소리를 질러 본다. 한번 돌아보더니 도망가지 않고 앞발로 눈을 헤치고 먹이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놈 봐라” 사냥꾼 알기를 우습게 아는구나. 그래도 더 가까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뿔을 가졌고 나는 빈손이다. 할 수없이 우리가 길을 피해 돌아갔다. 무시당한 듯, 기분이 좀 찜찜하다.



  사냥 갔을 때 이렇게 지척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그도 잘 안다. 여기는 사냥꾼이 총을 들고 오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을,

비씨주에서 엘크는 멀리 동쪽에 서식하고 밴쿠버 아일랜드에 세계에서 제일 큰 뿔을 가진 루즈벨트 엘크가 산다. 아직까지는 번식을 위해 보호하고 있는 중이나 제비뽑기를 하여 제한적으로 사냥을 허락하기도 한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드디어 팍 랏지가 보인다. 엘크를 피해 길을 잘 못 든 듯, 새 눈을 헤쳐 가다가 랏지 앞에 있는 호수를 만났다. 호수를 돌아가자면 길이 더 멀어지겠기에 가로 질러 걸었다. 내가 앞장서니 모두 일 열로 따라온다. 호수를 다 건너고 나서 보니 팻말이 하나 서 있는데 ‘얕은 얼음이니 위험하다’고 써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70년대 중반, 캐나다에 이민 오면서 비씨주가 어디 붙어 있는지 밴쿠버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건너왔다. 그것도 수중에 달랑 150불을 넣어 가지고, 그 뿐인가 4가족 비행기표는 외상으로---. 이만하면 모르고 용감했던 내 생애 최고의 결정이 아니었겠는가 한다.



  막 랏지에 이르러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맥주로 목을 축이니 하루가 상큼하다.

  마지막 날은 긴 여정이 기다린다.

자스퍼를 출발하여 겨울 로키를 관통하고 레이크 루이스에 들려 얼음조각전을 관람한 후 존슨계곡을 걷고 나서 밴프에서 저녁식사, 칼가리로 가서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이다. 레이크 루이스에는 ‘닥터 지바고’를 촬영할 때에 있었던 기차역 식당(Station Restaurant)이 있어 거기서 점심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녁에만 Open 한다고 하여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왔다.

  겨울 로키 산들은 눈과 구름에 덮여 그 신비를 더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차안에 편안히 앉아 양쪽 산들을 바라본다.









  새들도 찾아오지 않는 겨울 산은 홀로 외롭다. 나무들은 겹겹이 눈을 인 채 긴 겨울을 반추한다. 그리고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드는 중이다. 그러나 산은 나이를 더하지 않는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산, 말없이 묵묵하다. 다만 얼음장 밑을 흐르는 강물만이 금방 봄이 온다고 외치며 달려 갈 뿐,

 연착한 밤 비행기에 몸을 싣고 깊은 잠에 빠진다.

겨울 로키를 가슴에 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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