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커피샵 '조스 테이블'이 있기까지, 정성자씨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4-19 16:21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셉이에요. 당신 이름은 뭔가요?”
만약  지금도 살아 있다면, 우리와 같이 지구의 공기를 나누고 그 위를 쿵쾅거리며 걷고 있다면, 낯선 누군가에게 다가가 거리낌없이 손을 내밀 때 마다, 그는 사소한 행복을 챙기며 여전히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셉이에요. 당신 이름은 뭔가요?”

조셉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사회에서 ‘자폐장애인’으로 분류됐던 그는 상대방이 집 없이 거리를 떠돌던 노숙자이든, 아니면 대학교수나 의사 같은 꽤 그럴싸한 직업의 소유자이든 상관없이 무턱대고 다가가 악수를 청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 이름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선명히 답할 수 없다. 설령 뚜렷한 발음으로 자기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한다 해도 그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지난해 9월 조셉씨는 32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영장에서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잘가’라는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맞닥뜨린 상실감에 지인들의 가슴은 먹먹했고, 어머니는 더욱 아팠다.






아들이 떠난 빈 자리를 어머니가 채우고 있다.
정성자씨는 "조스 테이블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 다른 장애인들에게 열어
슬펐다. 아들이 쉽게 잊혀지는 것은 더욱 슬펐다. 어머니는 떠난 아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그래서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 아이의 이름을 딴 커피샵 ‘조스 테이블’(JOE’s TABLE)이다. 어머니 정성자씨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 사람 만나는 걸 참 좋아했더랬어요. 물론 비장애인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중증 장애인들의 부모 중 상당수는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고 싶다’라는 말에 저절로 동의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자녀의 생활이, 자립이 어렵다는 걸 부모들은 마음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자씨 역시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우뚝 서 있는 아들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조스 테이블’의 시작이었다.

“커피샵을 차려주면 사람만 보면 좋아라했던 아이가 손님들과 더욱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만남을 통해 친구도 사귀게 될테니,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겐 기쁜 일이 될 수 있었겠죠.” 

사고는 ‘조스 테이블’이 들어서기도 전에 그 꿈을 허망하게 무너뜨렸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당분간은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샵을 반드시 열어야겠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게 들기 시작했어요. 조셉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을 다른 장애인들에게 열기로 한 거죠.”
 
마음앓이 끝에 조스테이블은 오는 5월 6일 세상을 향해 공식적으로 첫 인사를 한다. 메트로타운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평범한 커피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은 살짝 다른 세계다. 비영리기업으로 등록됐다는 사실도 새삼 신기하지만, 한켠에 자그마한 화랑과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커피샵 일부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질 겁니다.”   

장애인들이 커피샵 운영도 함께 한다. 이를 위해 맞춤형 고용 프로그램과 교육 메뉴얼도 만들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몸이, 그리고 마음이 좀 불편하다고 해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요. 조스 테이블을 통해 누구나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11 밴쿠버에서 사제 서품 받은 구장한 신부
한때 그는 세상의 기준에 맞는 성공을 원했다. 빠른 속도로 저축 잔고를 늘리고 싶었고, 은퇴 후에는 세계 곳곳을 한적하게 여행하는 삶을 꿈꿨다. 그는 이 목표대로 충실히 살아왔다....
"지금도 몸이 떨려..." 연평도 포격의 영웅, 해병대 정상헌씨
2010년 11월 23일. 조용하고 한적하던 대한민국 서해의 작은 섬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 갑작스런 북한의 포격으로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한 처참한 사건이었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10, 6·25참전유공자회, 박영길옹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건 그의 몸이었다. 6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는 그 때의 혈투를 떠올리면 여전히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세월도 그의 상처를 온전히 보듬지 못한 것이다. 전쟁...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9 김지한·수 김 부부
이민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대개 “다름”과 “싶음”으로 간단하게 정리되곤 한다. “각박함을 벗어나 뭔가 다른 삶을 살고...
"돈은 잃어도 친구는 못 잃어" 고교 동창과 17년째 동업, 고승범씨
랭리의 유명 아이스크림 전문업체 배스킨라빈스(Baskin Robbins). 프레이저 하이웨이(Fraser Hwy.)를 지나가면 특유의 화사한 분홍색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가게가 관심을 끄는 더...
모두미술인협회 고요한·김희정 화가 부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8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 마음 속 세계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화폭에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민을 결심했다. 낯선 땅에서라면 작품 활동에 더욱...
모텔운영 9년차 베테랑의 여유가 묻어나는 이중헌씨
1999년 밴쿠버로 이민 온 이중헌(58)씨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업가다. 20년 가까이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씨는 바쁜 일상에 가족과 사이가 멀어지자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7
몇몇 이민자들에게 있어 캐나다는 때론 외사랑의 대상이다.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어서다. 이처럼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민자가 캐나다와 연애할 가능성은...
"서커스할 때 살아있음 느껴요"
짙은 어둠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체격의 청년이 저글링 연습에 한창이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간간이 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유독 눈에 띈다. 태양의 서커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6 늘산 박병준
2015년은 그에게 밴쿠버에 정착한 지 정확히 만 40년이 되는 해다. 그 세월과 함께 어느새 팔순을 앞두게 된 그는 예전과 지금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무덤덤하게 고백한다. 우선...
에버그린컵 18세 이하 男단식 우승
미래의 테니스 황제를 꿈꾸는 한인 유망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버나비 알파고등학교(Alpha Secondary School) 9학년에 재학 중인 앤드류 오(한국명 오승환·15)군. 오군은 지난 15일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내 것이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5
몇몇 처세술 책들의 주장처럼 성공을 위한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친구 딸이...
웨스트젯 인턴 사원 이동근씨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하는 고객들을 도와주는 말끔한 차림의 한국인 남성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웨스트젯(WestJet) 인턴 사원 이동근(26)씨. 이씨의 부드러운 말투와 친절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4 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고된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행군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극 무대만을 동경하는 무명의 배우, 팔리지 않을 시집에 애착을 보이는 시인, 쾨쾨한 냄새가 배어있는 작업실과 연애...
친절한 미소가 아름다운 바틀디포 김병수씨
버나비 메트로타운 인근 바틀디포(Bottle Depot) 가게. 가게 안을 들어서자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더러운 빈병들 사이에서 시종일관 웃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가 눈에 띤다....
외국인도 인정한 빵맛, 빠리아저씨 임종주씨
버나비 노스로드(North Rd.) 한인 상가에 빠리아저씨가 산다. 올해로 5년째 이곳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임종주씨(62)가 바로 빠리아저씨다.빠리아저씨 빵집에서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빵...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3 “운동이 보약, 피클볼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운동은 이름난 보약이다. 이미 그 약효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만 봐도 그렇다.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묵은 때를 벗겨낸 듯한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고, 트랙 위의 사람들은 막힘...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2 바이올린 연주자 겸 동요 작곡가 박혜정씨
순탄대로만 걸어왔다는 고백은 흔치 않다.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도 크고 작은 걸림돌을 찾아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공했다는 혹은 그런대로 잘...
20대 청년사업가 김진기 정진트레이드 대표
학창시절 겁 없이 뛰어든 인형 판매. 호기심에 처음 시작한 일이 10여년이 지나면서 어엿한 직업이 됐다. 정진트레이드(JungJin Trade) 김진기(29) 대표. 김 대표는 올해로 벌써 13년째...
요들송의 대가, 김홍철
써리에 위치한 성 김대건 천주교회 부설 대건문화센터는 “문화센터”라고 불리기에 전혀 민망하지 않은 장소다. 그 이유는 이 곳이 진행 중인 혹은 진행할 예정인 프로그램만 슬쩍 봐도...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