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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어요“

박준형 기자 ju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5-07 15:24

친절한 미소가 아름다운 바틀디포 김병수씨
버나비 메트로타운 인근 바틀디포(Bottle Depot) 가게. 가게 안을 들어서자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더러운 빈병들 사이에서 시종일관 웃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가 눈에 띤다. 올해로 8년째 바틀디포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수씨(52)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에게 바틀디포라는 일이 쉽진 않았다. 몸도 힘든 와중에 좀도둑까지 맞으면서 마음을 잡지 못했던 그에게 힘이 돼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웃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다. 주민들과 더불어 살려는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는 “고객한테만큼은 정성을 다했다”며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조언도 해주고 도움을 주는 고객들이 생겼고 그들이 대우를 해준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8년이 흐르면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편한 사이로 지내는 단골 고객들이 늘었다. 무거운 것을 나를 때 도와주는 고객들도 있다. 재워주고 먹여주며 심지어 돈까지 빌려준 노숙자들도 가끔씩 그의 일을 돕는다.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그는 지역사회를 위한 기부활동도 잊지 않는다. 그는 “고객들한테 친절하게 대하니까 그들이 도와준다”며 “주민들과 잘 융화돼 지내는 것이 좋다. 주민들이 내 이름을 한 번 불러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며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에게서 캐나다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환한 미소로 바틀디포 운영하는 김병수씨>


밴쿠버에는 언제 왔나?
“처음 프린스에드워즈아일랜드(PEI)로 왔다. 영주권을 받고 가족들이 먼저 와있었고 한국에 혼자 있다가 2년 후인 2007년 12월에 왔다. 샬럿타운에서 10개월 정도 있었다. 원래는 애들 영어교육 때문에 왔는데 결국 이민까지 왔다. PEI엔 한국 사람이 별로 없어 주민들이 신기해했다. 그래서 영어도 금방 늘었다. 강원도 산간벽지 같은 곳이라 사람들이 순박하고 좋은 곳인데 문제는 찾아봐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전공을 살릴 생각에 퓨처샵(Future Shop)에 이력서를 보냈는데 안 됐다. PEI는 주민들도 다른 도시에서 일하다가 나이 들면 되돌아가는 곳이다. 만만한 동네가 아니구나 싶어서 2008년 10월에 나 혼자 밴쿠버로 왔다.”

한국에서 하던 일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가?
“그렇다. 삼성전자에도 있었고 벤처기업에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틀디포를 하게 됐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캐나다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소위 잘 나갔던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는 전공을 살리고 싶어도 언어의 제약이 있어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쓰고, 읽는 것은 되는데 말하는 것이 안 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자기 전공을 살리기 힘들다. 그래서 당시 아는 분이 이 일을 추천해줘서 하게 됐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바틀디포를 시작했나?
“밴쿠버로 오기로 결론을 낸 후 밴쿠버에 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이 업종에 대해 듣게 됐다. 그래서 2008년 10월에 바로 (다른 분이 하던 바틀디포를) 인수하고 나 혼자 먼저 와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나?
“좀도둑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 몰랐다. 한번은 빈병을 정리하다가 일을 다 마치지 못해서 차를 밖에 세워두고 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와보니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빈병을 가져갔다. PEI 같은 순박한 곳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 이런 부분이 힘들었다. 더구나 가족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나 혼자 지내니까 더 힘들었다. 그리고 이쪽 일이 굉장히 바쁘다.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몸을 쓰는 것이라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 부분이 처음 힘들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제 7~8년 정도 됐다. 그 동안 고객한테만큼은 내 정성을 다했다. 사실 처음에는 마음을 못 잡고 있었다. 힘들어하다가 밴쿠버에 대한 마음이 풀리게 된 것은 조언해주는 고객들 덕분이었다. 6개월 정도 지나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고 도와주는 고객들이 생겼다. 그때 내가 열심히 하면서 정을 붙이니까 대우를 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못 보던 고객이 병을 한가득 가져왔다. 어떤 단체의 선생님인데 자선 모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 감사하다는 말만 전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한 번 더 왔다. 그래서 나도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님이 좋아하더라. 그 이후 그런 물건들이 오면 기부했다. 아마 다른 바틀디포도 비슷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 일과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어서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여러가지가 섞여서 오기 때문에 그것들을 종류별로 가려야 한다. 깨끗하게 가져오는 손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음료수가 담겨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청소해야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문을 연다. 1년에 3번 정도만 쉬고 일한다. 직원 4명과 함께 돌아가면서 쉰다. 이 일이 계절을 탄다. 여름엔 아주 바쁘고 겨울엔 한가하다. 요일별로도 주말엔 바쁘고 화요일이나 수요일, 목요일은 좀 한가하다.”

바틀디포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이 빈병을 훔쳐가는 것도 힘들지만 침대나 매트리스, 가구 등 잡동사니를 그냥 가게 앞에 버리고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치우면 버리고, 치우면 버리고가 반복된다.”

바틀디포의 장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는 스트레스가 없다. 또 한국에서는 (일의) 시작 시간만 있고 끝나는 시간이 없다. 한국에서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후 6시에 문 닫고 가면 된다.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심심해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좋아져서 만족한다.”

반대로 단점은?
“이 일은 좋은 것을 개발하고 만드는 일이 아니다. 바틀디포는 다 똑같다. 예를 들어 멀리 있는 손님들을 끌어올 소지가 없다. 단지 깨끗하게 일을 하는 것뿐이다.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한다는 것 외에는 차별화 될 것이 없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들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60% 이상은 알고 있다. 고객들한테 친절하게 대하니까 그들이 도와준다. 예를 들어 전화를 받다가 못 알아들으면 고객들이 대신 전화도 받아준다. 무거운 것을 들 때 같이 도와주는 분들도 있다. 주민들과 잘 융화돼 지내는 것이 좋다. 인간적으로 아주 가까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내 이름을 한 번 불러줄 때 보람을 느낀다. 특히 노숙자들한테 밥도 많이 사주고 많이 도와줬다. 춥고 배고플 때 가게에 들어오라고 해서 먹을 것도 줬다. 심지어 나한테 돈을 빌려간 노숙자도 있다. 그래서 내 일을 도와주는 노숙자들도 꽤 있다. 그들이 그렇게 거칠지 않다. 오히려 순박한 면이 있다.”

바틀디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친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종을 떠나서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절하면 캐나다 사람들이나 다른 이민자들이 모두 도와주고 잘해준다. 친절하게 하면서 더불어 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다.”

정리/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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