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64_이민 1.5세가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11-11 11:38

정성 변호사 “공부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자녀에게 모든 걸 잘해 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앉고, 걷고, 뛰게 되는 그 순간순간이 부모에겐 가슴 벅찬 감동이자 동시에 사는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평균적인 몇몇 부모는 아이가 입을지도 아닐지도 모를 크고 작은 상처들을 미리 경계하기도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로 그 조바심 그대로 아이를 아끼고 또 아낀다.  이 진심에 시비 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부모의 지붕이 견고하면 할수록 스스로 피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 이유의 숨은 일면을 이번 주 <차 한 잔 합시다>에서 들여다본다. 한인 1.5세 변호사 정성씨(사진)를 통해서다.


“최선만 다하면 다 좋은 걸까, 과연 그런 걸까?”

정성씨에게 변호사는 천직처럼 느껴진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남을 돕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정성씨가 직접 언급한 변호사가, 혹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조건, 혹은 적성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정성 변호사의 생각을 빌리자면, 10대의 경우, 좀 더 범위를 좁혀 한인사회 1.5세의 경우 자신의 성적표에 새겨진 평점에 따라 도전 과제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공부 잘하는 한인 학생들은 적어도 한번 정도는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때론 자발적으로, 때론 부모를 포함한 누군가에 의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의대 선호,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처음부터 나의 길은 의사다, 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자신의 성적에 따라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는 경우가 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최선만 다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들어가기 가장 힘든 대학이나 회사, 혹은 의사 같은 직업이 인생의 목표가 되기 십상인데, 제게는 이것이 옳은 태도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나오자 마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학점 획득해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일종의 성공 코스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아닙니다. 캐나다는 달라요. 성적도 어느 정도 중요하겠지만, 각 개인의 경험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없으면, 취직을 하는 것도, 의사가 되는 것도, 법대에 들어가는 것도 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중요하지만, 공부만 잘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적성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사회 경험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해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몇몇 부모님들은 아이가 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기본급 벌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라는 게 일부 부모의 마음처럼 보여요. 학업에 100% 집중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올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성 변호사의 학창 시절은 어땠습니까?
저는 10학년 때부터 일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셨거든요. 사회에서 줄 수 있는 것, 그걸 엄마 아빠는 해줄 수 없으니 네가 직업 일을 하며 터득하라는 게 저희 부모님의 뜻이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친구들끼리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란 게 있고, 사회에서는 사회인끼리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 있는데, 이민 1세대인 부모님 입장에서는 후자의 언어 수준을 제가 느끼길 바랐던 거에요. 그래서 용돈도 주지 않으셨어요. 돈이 필요하면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곱 살 때 캐나다로 이민 온 전형적인 이민 1.5세요. 저희 같은 이민 1.5세에겐 부족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 세계를 부모나 부모의 친구 혹은 주변 친척 등을 통해 체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거에요. 이민 1세대인 부모와 캐나다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그닥 견고할 리 없잖아요. 아는 직업이라곤 의사 같은 전문직이 전부니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쪽으로만 관심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능동적으로 사회 경험을 해보는 게,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자신의 꿈을 늦게 찾더라도 조급해 하진 말 것”


정 변호사는 어떤 일을 해봤습니까?
10학년 때 처음 일한 곳이 페인트 가게였어요.  당시만 해도 기본급이 시간당 8달러 정도였는데, 그곳만 9달러를 제시해서 냉큼 지원했죠.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또 법대 진학 후에도 여름방학이면 그곳에서만 일했습니다.

법대 진학 후에는 전공과 좀 연관된 일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을텐데, 왜 굳이 계속해서 페인트 가게였던 거죠?
저는 어떠한 관계도 헛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다 연관되어 있어요. 페인트 가게 손님들 중엔 변호사도 있었고, 그곳 2층에는 변호사 사무실이 있기도 했어요. 이렇게 쌓여진 관계를 통해 나중에는 인터뷰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공부만 잘해서 생긴 기회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페인트 가게에서의 생활이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상 생활에서는 누구나 조건 없이 예뻐 보일 수 있겠지만, 직장에서는 다르지요. 일을 잘해야 예뻐 보이는 거잖아요. 페인트 가게에서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랬더니 임금도 계속해서 올랐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직장에서 좋은 레퍼런스를 받기 위해서는 사소한 일도 꼼꼼히 처리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교나 자원봉사단체에서는 조금만 잘해도 좋은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직장에선 절대 그런 걸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잘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잘해야, 대개는 제대로 된 추천서가 주어지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하는 이유, 그러니까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있는 거군요.
그럼요. 하나 더 얘기하자면, 일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면접 기술을 체득할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엔 손님에게 페인트라는 상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 그러니까 면접 기술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예상 질문에 따른 답만 달달 외워서는 면접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순 없겠지요.
그럼요. 어디서 본 듯한 답변이 면접관의 마음에 들 가능성은 높지 않을 거에요. 이와는 달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기 장단점이나 살아온 배경이 얘기되면 정말 그럴 듯해 보일 겁니다. 면접관이 이걸 모를 리가 없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일을 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이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자기가 뭔가 하기 싫으면 그 이유도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적성보다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따르던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고, 그래서 UBC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처음에는 사이언스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말이죠. 그런데 그 공부가 너무 싫은 거에요. 그제서야 내가 좋아하는 공부, 내가 싫어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늦게 찾았다는 얘기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저는 너무 늦은 것은 결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르는 친구들에게도 고민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걸 빨리 찾았다고 모든 게 유리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때 되어 결혼한 모든 사람이 행복한가요? 아니잖아요. 직업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 당장은 뒤쳐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 쌓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또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질 거라 봐요.


정성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에 “부모님들이 용돈을 끊어서라도 자녀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민 1세대인 부모가 자녀에게 주기 어려운 이 사회의 인맥을, 자녀 스스로 일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현재 법률회사 심슨앤토마스에서 ICBC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70_정운경 회계사
이민자의 삶은 종종 인생 2막에 비유되곤 한다. 무대의 배경이 한국 어딘가에서 이곳 밴쿠버로 꾸며진다는 점에서, ‘2막’이라는 표현은 꽤 적절해 보인다.2막은 또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한인 공공 양로원 건립, 오랜 꿈을 기록하다”
한인 공공 양로원 건립에 대한 얘기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일부의 반응은 욕조에 받아 둔 지 한참 된 온수처럼 미지근했다. 양로원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공돼도,...
“한국 과학도, 캐나다 변호사 되기”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파내려 가도 물 한 방울 만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손바닥에 잡힌 물집 따위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좋을 듯 싶다....
“어학연수생에서 BC아동병원에 취직하기까지”
핵의학(nuclear medicine)의 역사는, ‘다음백과’의 정의대로라면 지난 1935년에 이미 시작됐다. 어느새 팔순의 세월을 견딘 셈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 학문은 생소하게, 그래서인지 뭔가...
“이번 연말을 위한 가슴 따스한 이벤트”
어김 없이 연말이다. 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캐롤송에, 종교의 벽과는 상관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처럼 마음을 여는 시기다. 음악이라는 것이, 이래서 놀랍다. 형편...
“그로서리는 결국 살아 남는다”
낯선 땅에 선 초기의 이민자들에게 그로서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통로 중 하나였다. 한인사회 1세대 이민자들 중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그로서리를 열었고, 그 가게와...
정성 변호사 “공부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자녀에게 모든 걸 잘해 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앉고, 걷고, 뛰게 되는 그 순간순간이 부모에겐 가슴 벅찬 감동이자 동시에 사는 힘이...
“캐나다에서 경찰 되기, 그 성공의 여정을 공유합니다”
‘성공 스토리’에는 세간의 이목이 늘 쉽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반듯한 집과 자동차, 혹은 넉넉한 통장 잔고를 보유하게 된 배경이, 보통사람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캐나다에 온전히 정착한다는 것은…”
밴쿠버는 첫눈에 마음을 내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목석이 아니라면, 밴쿠버가 품은 숲과 호수에, 도심의 세련된 빌딩가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산뜻한 바람에, 혹은 이방인에게도...
허전한 이민자의 삶, 아빠는 늘 슈퍼맨이었다
극단 하누리 2016년 정기 공연작 <오 마이 슈퍼맨>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하누리 또 한번의 행복한 가을을 연출한다”오래 전의 풍경이 문득 재생될 때, 우리들 대부분은 '슈퍼맨'과...
본국 영어교사부터 미래의 사회복지사까지
“내가 했던 값진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길”이곳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유독 반짝거리는 단체가 하나 있다. 한인 1.5세와 2세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봉사단체 'C3소사이어티'가 바로 그...
열 네 살에 UBC 조기 입학 “딴짓하는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보다”
딴짓하는 아이는 걱정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런 아이의 세계 속에서는 사회에서 정한 '중요도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에를 들어 학교 숙제는...
“성공 취업, 코업이 정답이다”
대학교를 제때, 그러니까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이력서상의 기술은 어느 면에서는 자랑 거리가 되기 어렵다. 아무런 생존 기술 없이 정글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만하다고 평가되던 아이, 영재로 인정받기까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앳된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이번에 UBC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게 된 제임스 천(한국명 천현석·사진)”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말이 반농담처럼...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7_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 지휘자 정성자
기름진 땅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빚진 자'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녀는 올해에도 무대에 선다. 자신이 지휘자로 몸담고 있는...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6_ 안동차전놀이 보존회 이재춘 회장
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 스테디움에서“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이 오는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스테디움에서 열린다. 밴쿠버한인문화협회(회장 석필원)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_55 <밤차>의 작곡가 유승엽
그는 KBS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곡가였다. 하지만 이곳 밴쿠버에 정착한 1991년 후부터는 대중 가요를 만드는 일에 인색했다. 대신 오카리나 연주에...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4_권천학 시인, 이청초 화백
한인문화협회 후원 오는 8월 14일까지, “여백 채워줄 당신의 생각은…”“포트무디 아트센터”는 트라이시티 세인트존슨가(St. Johns St.)에 서 있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의 화랑이다....
사진작가 줄리아 리씨의 밀알 사진 프로젝트
“아름답다"고 했을 때, 화자가 느낀 아름다움 그대로를 지면에 옮길 수는 없다. 객관적 정의가 불가능하기에 신문 기사에서 “아름답다”는 함부로 올릴 말이 아니다. 그러나 ...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3_법률공증사 최병하
특정한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행위, 즉 공증은 적어도 새 이민자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익숙한 단어다. 공증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국에서의 경력 혹은 학력 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광고문의 [상세]
연락처: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