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급증한 성조숙증 치료··· 엄마들 사이에선 ‘키 성장 치료’?

배준용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6-10 19:57

[아무튼, 주말] “키 작으면 도태된다” 남발되는 성조숙증 치료

“돈은 많이 들지만, 아이 키를 몇 cm라도 더 키우는 게 후회가 덜할 듯해서요.”

엄마 A(42)씨는 7개월 전부터 초등 5학년 아들을 서울 한 유명 성장 클리닉에 데려가 ‘성장 치료’를 시작했다. “더 어릴 때 대학 병원에 갔을 때는 치료가 필요하진 않다고 했는데, 요즘 들어 아이가 여드름이 나고 또래보다 키는 작은 걸 보니 조바심이 났다”며 “효과가 있는지 요즘 키가 좀 큰다”고 했다. A씨가 아들의 성장 치료에 쓰는 돈은 매달 약 100만원. 치료비는 전액 ‘비급여’다. “병원에서 2차 성징을 늦추는 성조숙증 치료 주사와 성장호르몬 주사를 같이 맞으면 성장판이 닫히는 시기를 늦추면서 그 사이 키를 키울 수 있다고 해서 두 주사를 같이 맞고 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이처럼 성장 클리닉에서 성조숙증 주사와 성장호르몬 주사를 동시에 맞히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키 성장 치료’가 번성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과거에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혔지만, 최근에는 성조숙증 주사도 병행하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강남 엄마들을 중심으로 두 주사를 같이 맞는 게 최신 성장 요법처럼 알려지면서, 무작정 ‘성조숙증 주사도 맞혀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늘었다. 거절하면 마치 최신 기법에 뒤처진 의사로 취급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성조숙증아닌데… ‘키 크는 주사’로 둔갑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병원급 이상 의료 기관이 심평원에 성조숙증 치료를 청구한 건수는 64만8528건으로 2019년보다 46.4%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소아내분비내과 교수 B씨는 “비만 아동이 늘고 성조숙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성조숙증 검사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키에 대한 걱정과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조숙증이 나타나면 키가 덜 자랄 가능성이 커지는 건 맞는다. 보통 여아는 만 10세에 가슴이 커지는 방식으로, 남아는 만 12세에 고환이 커지는 방식으로 2차 성징이 시작된다. 성조숙증은 여아의 경우 만 8세, 남아는 만 9세 전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경우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는 “성조숙증의 경우 사춘기가 빨리 시작되면 처음엔 또래보다 일찍 키가 커서 성장이 빠른 것 같지만, 골 연령이 높아져 사춘기가 정상으로 시작되는 아이보다 성인 키는 오히려 작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기에 성조숙증을 발견해 치료 주사를 맞으면 2차 성징을 늦춰 성인 키가 작아지는 걸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부 병원에서 성조숙증이 아닌 어린이에게도 성조숙증 주사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성조숙증이 아닌 어린이에게 성조숙증 주사를 투여했을 때 키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는데, 엄마들 사이에서는 성조숙증 치료 사례가 알려지면서 마치 성조숙증 주사가 무조건 키를 키우는 것처럼 오해가 퍼졌다”고 말했다. B 교수는 “일부 의사가 의학적 근거 없이 성조숙증 주사를 남발하는 것”이라며 “소아과 내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비급여라도 할 테니 놓아달라”고 요구하면 거절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성조숙증 주사는 보통 주 3~4회에 1회씩 만 11~12세까지 맞는다. 진단을 받아 투여하면 보험이 적용돼 회당 6만~9만원이지만, 비급여로 투여하면 12만~18만원까지 늘어난다. 성조숙증 환자뿐만 아니라 키 성장 목적으로 비급여로 투여하는 어린이까지 급증하면서, 국내 성조숙증 치료 시장은 5년 새 1100억원대에서 1800억원대로 성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성조숙증 주사 건강보험 적용 연령 기준을 기존 9~10세에서 8~9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소식을 접한 부모들의 강한 항의를 받고 철회했다. 문제가 되는 건 비급여 시장이 급증하기 때문인데, 정부가 급작스레 급여 부분을 건드리는 실책을 범한 것이다.

◇“‘작은 키’에 대한 차별·혐오 더 커져”

부작용은 없을까. 대한소아내분비내과학회는 “성조숙증 주사는 사용된 지 30년이 넘었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안전한 약”이라는 입장이다. 드물게 주사 맞은 부위가 아프거나 무균성 농양, 과민 반응 등이 있다. 하지만 소아과 전문의들은 “이는 성조숙증 환자에게 투약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부 성장 클리닉에서는 성조숙증 주사와 성장호르몬 주사를 동시에 투약할 경우 탈모, 관절통, 피로감 등의 부작용을 안내하고 있다. 성조숙증이 아닌 어린이에게 투약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한 정설이 없는 상황이다.

B 교수는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데 주사를 남발하는 의사도, 키가 큰다고 하면 무작정 치료를 받으려는 부모도 모두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로선 자녀들이 혹시나 키가 작아 부당한 차별을 당할까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며 “작은 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이 사태를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

연애·결혼 시장은 물론 고용·취업 시장 등에서도 키와 외모로 인한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키와 체중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있지만, 한국은 유독 이런 편견이 극으로 치닫는 ‘쏠림 현상’이 심하다”며 “과거와 달리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력도 향상됐고, 서비스 직종이 늘면서 젊은 남성들도 키에 대해 과거보다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라고 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임신 소식을 알린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 김규진씨./인스타그램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김규진씨가 임신 소식을 밝혔다. 국내 레즈비언 부부가 임신 사실을 밝힌...
[1000만 실버 시대] 美·日처럼 고령 자산가 급증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72세 김종은(여·가명)씨는 약대를 졸업하고 40년째 현직 약사로 일하고 있다. 4년 전까지 직접 약국을 운영하다, 남편과 사별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법제처가 알려주는 만 나이 계산법.(출처=법제처)28일(한국시간)부터 전 국민 나이가 한두 살 어려진다. 법적·사회적 나이를 ‘만(滿) 나이’로 통일하는 내용의 개정 행정기본법과...
6·25전쟁 73주년 행사 개최
‘6·25전쟁 제73주년 행사’가 25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참전 용사 등 각계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열렸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참전 용사 250여 명이...
23일 원내대표단 등 회식, 다음주부터 상임위별로 방문
오염수 방류 대응 관련 당내 태스크포스(TF)인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는 2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성일종 위원장 페이스북국민의힘이 일본...
中국적 가입자 4년새 20만명 늘어… 장모까지 피부양자 가입 받아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건강보험과 관련해 “중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했다.이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이 현지...
대동맥 수술 명의 죽음에 추모 물결
서울아산병원 흉부심장혈관외과 주석중 교수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18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주 교수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박상훈...
안전 위해 경찰 700명 배치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 페스타가 열린 가운데, 한낮 더위에도 전세계에서 찾아온 팬클럽 ‘아미’들로 한강공원이 북적였다. 주최측은 이날...
[아무튼, 주말] “키 작으면 도태된다” 남발되는 성조숙증 치료
“돈은 많이 들지만, 아이 키를 몇 cm라도 더 키우는 게 후회가 덜할 듯해서요.”엄마 A(42)씨는 7개월 전부터 초등 5학년 아들을 서울 한 유명 성장 클리닉에 데려가 ‘성장 치료’를 시작했다. “더 어릴 때 대학 병원에 갔을 때는 치료가 필요하진 않다고 했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소셜미디어 사칭 계정에 “딸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가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한 어머니의 사연이 전해졌다.뮤코리피드증을 앓고 있는 딸을 뒀다는 A씨는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이재서 총신대 前총장, 임기 4년 마치고 물러나
최근 4년 임기를 마친 이재서 전 총신대 총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교정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년 국내 첫 시각장애인 대학 총장이 된 그는 “절망을 견디다 보면 상상하지...
4일 오후 7시46분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장동의 한 도로를 주행하던 테슬라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전주에서 도로를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에서 불이 났다....
이종배 서울시의원, 선관위원 전원 검찰 고발 감사원 감사 못받겠다고 버틴 선관위 ‘검수완박’에도 시행령 바뀌어 검찰 수사 대상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에도 감사원 감사는 못받겠다고 버티고 있는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선거관리위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됐다.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란 이야기가 여권에선 나왔다.최근 선관위에서는 여러 구성원들이 자녀는 물론...
[아무튼, 주말] SBS ‘동물농장’ 출연 논란 1000만 반려 인구 겨냥?
“동물농장이 아니라 정치농장? 이럴 거면 차라리 폐지하라!”일요일인 지난달 28일 SBS 예능 ‘TV 동물농장’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런 비난 글이 쇄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또래살해’ 피의자 정유정./부산경찰청범죄 수사물을 다룬 방송과 서적에 몰입한 20대 여성이 살인 충동을 느껴 실제 또래 여성을 살해했던 것으로 1일 드러났다.부산...
유튜브서 ‘여전히 일하는 60년대생’ 다룬 영상 주목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 '이중 부양'의 짐을 어깨에 맨 채 은퇴하지 못하는 60년대생의 삶을 다룬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여러 세대의...
[아무튼, 주말]
[김아진 기자의 밀당] ‘모두까기’ 논객 진중권, 환 갑에 돌아보는 25년
서울 마포구 자택 테라스에 앉아 있는 진중권. 4년 전 이 넓은 테라스가 마음에 들어 17평짜리 빌라를 매입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이 남자는 독설가다. 좌든 우든 인정사정없다. 한때...
추신수 선수와 김동현 선수. /김동현 인스타그램야구선수 추신수(40·SSG 랜더스)는 자신이 격투기 선수 김동현(35·활동명 마동현)의 하반신 마비 재활 치료비 전액을 후원하기로 한 사실이...
새벽 산정상서 음악 맞춰 ‘체조’ “사람 나이로 일흔···건강하길”
우면산 체조견 모찌가 26일 서울 서초구 우면산 전망대 위에서 체조 음악에 맞춰 두 발로 서서 시민들과 함께 체조를 하듯 움직이고 있다. /신지인 기자26일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아무튼, 주말] 카톡 ‘조용히 나가기’ 도입, 단톡방에서 해방돼 보니
한국인 셋이 모이면 단톡방이 생긴다. 술잔 부딪치다 또 만나자며 만들고, 여행지에서 인연이 돼 만들고, 산후조리원 동기끼리 또 만들고.... 모두가 웃으며 들어가지만 나오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감옥,...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