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언제나 걱정과 실망이 먼저 온다. 그 많은 시외버스가 수없이 들며 나는 그곳에는 어찌 된 셈인지 아직까지 택시 승차장이 없다. 또 이상한 것은 빈 택시일 망정 짐이 있는 승객은 태워 주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손가방 하나 달랑 달랑 든 신사 숙녀 분은 잘도 타고 가는데 자식들에게 주려고 뼈 빠지게 일해서 머리에 이고 들고 늘어선 촌로들이나 아주머니들은 부지하 세월이다. 어디 이런 일이 마장동 터미널 뿐인가. 서울 천지 택시 타는 곳 어디고 보따리를 든 시골 사람은 귀찮은 존재다. 대부분 기사 양반들은 못 본 척 그냥 지나치기가 예사고 어쩌다 태워주기라도 하면 짐을 들고 앉아라, 요금을 더 내라, 재수가 없다는 등 구박이 말이 아니다.
바람이 차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요즘에도 농촌에서는 한가하지 못하다. 볏짚을 작두로 잘라서 논에 까는 일, 객토를 하는 일, 봄에 심을 고추 온상을 미리미리 손 보는 일, 과수 전정에 비닐하우스 돌보기 등 어느 한 가지 소홀할 수가 없다.
곤두박질 치는 축산물 시세에도, 연거푸 치솟은 사료 값에도, 적정 가를 밑도는 농산물 가격에도 이제는 놀랄 여력조차 없어 그저 막막할 뿐이다. 동네 고삿터나 경로당에 두세 사람만 모여 앉아도 무얼 해다 먹고 자식들 공부 시키느냐는 걱정이 태산이다.
자립, 자조 의식 개혁은 철저히 되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 보아야 현상 유지도 어려우니 채무밖에 늘어날 것이 더 있는가. 전기 세 기 천 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추 열 근을 이고 장에 간다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농촌의 현실 그대로다.
어느 한 철 편하게 앉아 볼 수 있는가. 논일 밭일 앞장서야 하고 영농 바라지에 집안 살림 도맡아야 하는 1인 다역의 농촌 주부들. 자녀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처럼 얻은 농한기에도 파출부 자리라도 찾아 나서야 겠다는 농촌 어머니들의 모성애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에게 만은 흙 두더지 같은 이 삶을 물려주지 않겠노라는 그들의 열망을 누가 탓할 것인가. 이렇듯 현실이 아무리 냉엄 해도 우리 다수의 농민들에게는 땅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진실이 있다. 세태가 그렇지 조상 대대 뼈 묻고 살아온 고향 산천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천대 하지도 않는다는 죽음 같은 신앙이 있다.
장기적인 영농 정책은 요원한 것인가. 과잉 생산의 조절은 그리도 힘이 드는 것일까. 농한기라도 일할 수 있게 부업을 맡겨줄 기업체는 없는가. 정말이지 이제는 이 헐벗음에서, 이 불안에서 헤어나 안심하고 농사짓는 농부가 되고 싶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 받는 농민, 따뜻한 대접 받는 농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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