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친구야, 놀자!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7-05 08:59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와 도어 벨을 누르며, ‘친구야 놀자’라 소리쳐 나를 부르던 것이라 꼽을 수 있다. 막 사교활동을 하면서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던 기억이라 주체적으로 행동했던 나만의 경험이라 깊게 남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불행히도 그날따라 난 우리 집에 놀러 온 다른 친구와 재미있게 노느라 그 친구와 놀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거절을 당한 아이가 화가 나서 작은 돌을 던지며 아이들의 돌던지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나는 놀러 온 아이의 이마에 혹을 남겼고, 아버지에게 눈물이 빠지게 혼쭐난 후에 그 친구의 집에 가서 사과를 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친구와의 관계 맺기를 하며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동시에 겪었던 경험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당시엔 동네 친구들이 아무런 약속 없이 그냥 집으로 찾아와 노래를 부르듯 ‘친구야, 놀자!’라며 소리를 높여 불렀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정감도 있었고, 그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현대 나의 아이들이 자라는 시절에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기에 더 그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없어졌을 줄 알았던 ‘친구야, 놀자’가 최근 우리 아이들을 통해 우리 집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저녁을 준비하려고 식자재를 다듬고 있었는데, 벨이 요란하게 울리더라. 무슨 일인가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몰려와 집 앞 야드에서 함께 놀자고 하더라. 코로나로 자주 어울리지 못해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듯, 아이들이 그렇게 서로가 보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싶어서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날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익도록 앞에서 보드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시원한 슬러피도 사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이날을 기점으로 아이들이 언제 어느 순간 들이닥칠지 모르는 대기 모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학교와 친구들의 집 중간쯤 위치한 우리 집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으레 벨을 누르며 한번씩 의사를 묻곤 한다. 한번 두 번 횟수가 늘면서 점차 우리 집이 참새가 지나치지 않는 방앗간이 되어갔다. 그리고 가끔은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하기도 했다. 처음엔 모두 허락을 하던 것이 적당히 거절을 하게 되기도 한 것 같다. 아이들도 이제는 완전히 놀 수 있을 거란 기대보다는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방문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면서 과거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어린 시절 주로 집에만 있었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대체로 친구들이 놀러와 놀거나 함께 놀이터에 가서 놀거나, 친구 집을 가는 것이 거의 매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바쁘고, 또 아이들은 또 왜 이리 시간이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같지만 같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고, 과거의 그것을 그리워하면서도 같아질 수 없는 현재의 내가 이를 달리 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싶더라. 


그날 나는 아이들의 일과표를 펴보고 쓸데없는 일정들을 하나 둘 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가까스로 하고 있는 피아노, 미술 등의 일과들을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정리하자, 아이들의 일정이 전보다 더 가볍고 편안하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표정도 한층 더 밝아 지기도 했다. 채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냥 해야 한다는 막연함으로 아이들의 자유시간을 빼앗고,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 괴롭혔던 것은 아닌가 반성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더 집중을 하며 열정을 갖고 임하기 시작했다. 숫자가 많은 것보다 한 두 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데, 알면서도 자꾸만 실수를 하는 부족한 엄마였나 보다. 


아이들은 후로도 너무나 당연히 우리 집의 벨을 누르며 묻는다. ‘친구야, 놀자’. 물론 전보다 우리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 놀고, 나도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앞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볼 있게 되었다. 미련 없이 버리니, 이렇게 간단한 것인데 항상 나는 오늘의 아이들의 엄마로서 처음이기에 자꾸만 실수를 반복하고, 자꾸만 배우고 고치며 나가고 있다. 내일은 나은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한 아이들이 멋진 미래를 그려 나갈 있도록 말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사회생활을 통해 변해버린 것으로, 원래의 나는 아주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마저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한참 덜했던 것도 같다.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느긋한 내 성격 때문에 ‘속 터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윤의정
 이제 캐나다 밴쿠버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나는 캐나다 운전에도 얼추 익숙해졌다. 아주 많이 다른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운전했던 것에 비해 처음 밴쿠버에 도착해 운전 문화가 아주 약간 다르다고 느꼈다. 한국,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바쁘게 하루를 살고, 또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무척 익숙했기 때문에 늘 쫓기는 듯 살았기 때문이다.  마흔이 가까워 왔던 캐나다 밴쿠버는 조금 달랐다. 물론 밴쿠버는 캐나다의 또 다른...
윤의정
  캐나다에서 살며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운전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 학교, 운동, 종교 그 모든 활동은 집에서 쉽게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대중교통도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다양한 수단이나 노선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한다. 특히 운동을 하는 둘째는 다른 도시로 여기저기 원정 경기를 가기 때문에 꽤 장거리를 운전할 때가 잦은 편이다.먼 거리를 운전하다 보면 졸리거나 지루한 시간이...
윤의정
엄마 손은 약손 2022.12.14 (수)
 최근 한동안 감기가 유행했다. 이 감기라는 놈이 얼마나 독했는지, 코로나보다 더 오래 여러 아이가 멈추지 않는 기침과 고열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우리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일주일 내내 기침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더디게 조금씩 회복되더니 어느새 큰 아이는 깨끗이 나아 다시 학교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면 좀 더 어린 둘째 아이는 쉽사리 낫지...
윤의정
  열 두 살이 지난 큰아들이 요새 부쩍 짜증을 잘 내곤 한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 평소 천성이 착하고 따뜻한 편이라 엄마인 나에게도 곧잘 “사랑해요.”라며 의사 표현을 잘하던 아이가 갑작스레 차갑게 대하거나 기존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적잖이 당황 중이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와 부딪힘 없이 무난히 이 시기를 지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사춘기가 그렇게 어렵다.애들 아빠는 그렇게 사춘기가...
윤의정
얼마 전 눈이 연이어 많이 온 날이었다. 유독 몸이 좋지 않아 피곤한 아침이었던 터라 게으름을 부리고 있던 터였다. 눈이 워낙 많이 왔고, 기록적인 영하의 날씨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눈을 치워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누워있는 내내 처리하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내내 불편했고 왠지 일종의 할 일을 미루는 중이라는 죄책감도 있었다. 하지만 쉬이 몸이 일어나지지 않더라. 그렇게 마음은 편치 않게 한 시간 정도를 빈둥대며...
윤의정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이모, 이모는 어렸을 때 뭐하고 놀았어요?”친한 언니의 딸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는 오징어 게임 열풍을 겪으며 한국 과거의 놀이가 궁금했나 보다. 무엇을 했던가? 나는 어떤 놀이를 했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에게 설명해주려고 했다.“음…… 딱 하나만 하고 논 건 아니야. 이것저것 하고 놀았는데, 우리는 아무래도 고무줄 놀이를 많이 했지?”“고무줄이요? 고무줄로 어떻게 놀아요?”아이는 고무 밴드...
윤의정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