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사회생활을 통해 변해버린 것으로, 원래의 나는 아주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마저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한참 덜했던 것도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느긋한 내 성격 때문에 ‘속 터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서두르지 않기도 했고, 대부분의 것에 무감한 편이라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실수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충분히 생각하고 움직였으니까. 그런데 이런 성격은 사회에 나오면서 생각보다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게 했다. 세상은 아주 바삐 돌아가고, 나는 그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처음 취업해 일을 하며 겪었던 문제 중 하나는 어떤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사회 초년생이 영향력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사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 중에 적당한 것을 고르고 추려서 상사가 수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실수 없이. 그런데 이건 조금 어려웠다. 어떤 선택을 빠르게 하기엔 나는 생각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시간을 끈다고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압박 속에서 점점 생각을 짧게 하고 바로 결정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어느 날인가 문득 돌아본 나는 아주 급하고 고민하지 않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아주 빠르고 쉽게 결정했다. 이렇게 급히 결정을 내리다 보니 잦은 실수를 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히 직접적으로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나에겐 갓 십 대에 들어선 아들 둘이 있는데, 이 둘이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나의 성격을 닮아 느긋하고 무엇이든 천천히 결정하고 움직이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건 또 지금의 나를 아주 답답하게 만든다.
집안일을 하는 도중에 종종 아이들에게 일을 돕게 시키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집안일을 배우고 돕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혼자 다 처리하기 힘들기도 해서 강아지 먹이를 주거나 쓰레기를 비우거나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기 등의 간단한 집안일을 시킨다. 그런데 계획한 바에 따르면 벌써 몇 가지 일을 처리할 법한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느긋하게 하나도 채 마무리 못하거나 더 시간을 끌거나 한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강아지랑 노느라 느긋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면 자꾸 슬금 슬금 급한 성격이 나온다. 잘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끝내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아이들이 내 성에 차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나씩 풀어놓게 된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느려터진 동작이 빨라지는가? 그건 또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시계가 있었고, 자기들만의 행동 계획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곤 한다. 이건 어려서 나의 모습과 같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나도 어려서 종종 부모님의 화를 돋우기도 했었다. 마찬가지로 자기 원하는 시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노라면 엄청 화가 나면서도 또 한편으로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하루는 아이에게 똑같이 빨리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하라며 잔소리하던 찰나에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아주 논리적으로 나에게 답을 했다.
"엄마, 지금 하고 있는데 동시에 여러 개를 하라고 하면 힘들어요.”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하면 안 돼요?”
둘이 합심한 듯 같은 말을 꺼내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집안일이라는 게 지금 끝내나 조금 이따 끝내나 상관이 없는데,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압박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아이들을 괴롭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 청소를 하나 몇 시간 뒤에 청소를 하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미안해졌다.
나도 어려서는 저러했는데, 느긋하게 천천히 누구한테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로선 다시 돌아가기에 너무 많이 변해버린 모습이지만,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변하라고 강요하는 모양새와 같다고 깨닫고 나니 내 잘못이 눈에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이십 년 넘게 유지해 온 성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지라 여전히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하라는 잔소리를 하고 또 순간 잘못했다고 깨닫고 실수하고 하는 습관은 지금까지 또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에 비해 조금은 자제하게 되었다는 정도.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들이 나와 같이 급하고 잦은 실수를 하는 성격으로 자라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정도. 딱 그 상태다.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빠짐없이 아이들에게 빨리라는 말을 꺼내곤 하는데 그래도 약간 더 신경 쓴다면 전보다 살짝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세상에 뒤처져 느리기만 한 것도 별로지만 굳이 아이들의 성품을 어려서부터 내 속도에 맞춰서 바꾸라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사는 자세가 억지로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시금 내가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전 스스로 속으로 한 번쯤 읊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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