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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1-04 08:34


민완기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회원


살면서 누군가를 닮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봉착하거나, 삶의 난관을 뚫고 나가야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도 그 이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곤 하였다아주 어려서는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걸을 때면 안간힘을 써서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빠른 걸음, 그리고 퇴근 때면 아버지 양복에서 나는 병원 알코올 냄새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 다니며 책이라는 것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줄곧 큰 바위 얼굴이 닮고 싶었다. 동화책에서 만난 한없이 깊은 눈동자와 인자한 얼굴을 떠올리며, 커서 나도 저런 얼굴을 가졌으면 하였다.

 

머리가 좀 커서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어디를 외출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워 지면서, 자연히 친구들이 우선이 되고는, 한때 기타를 치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친구가 참 부러웠다. 손가락으로 지판을 누를 때마다 그 시절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프로로만 듣던 멜로디가 실제로 내 눈앞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로 다가올 때 그 친구 옆에서 넋을 잃고 연주를 들으며 참 그가 한없이 닮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공책보다는 E.H. Carr의 서적이나 루카치의 문학사회학 관련 책들을 끼고 다니면서 역사와 사회와 조국의 분단현실을 고통스러워 하면서, 막걸리 잔을 연신 비우던 선배들이 닮고 싶을 때도 있었다. 늦게까지 문학반 동아리 모임에 남아 통음을 하며 시국과 광주와 그리고 영 불안하기만한 미래를 잊고자 미친듯이 오월의 노래를 불러제끼던 순간도 있었다.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욕된 역사 투쟁없이 어떻게 헤쳐나가랴/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 지금도 생생한 그 노래 가사…  그러던 어느 겨울날, 과 친구가 주선한 미팅이라는 자리에 나가게 되어서 한 여자아이를 만나고, 학보를 싼 띠지에 사연을 적어 보내며, 떨리는 마음을 함께 전하게 될 때, 그 아이의 선한 눈망울이 너무나 닮고 싶었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부터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선배들이 참 닮고 싶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살벌한 전쟁 가운데서도 정말 드물게 만날 수밖에는 없었지만, 뚝심 있고 속이 깊고 끝까지 남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몸을 기울여 경청해주던 몇몇 선배들의 얼굴이 내 삶의 훈장처럼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민을 선택하고 이제 만 197개월지금의 나는 누구를 닮고 싶어하고 있을까? 한때는 기도 잘하는 사람을 닮고 싶기도 하였고, 또 한때는 몇 에이커 땅에서 몇 배로 땅값이 뛰었다고 자랑 삼아 하는 얘기들이 부러운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도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제는 진심으로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굳이 닮으려 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름은 우리 옛말 가운데 나 자신을 뜻하는 말이니, ‘아름답다는 결국 가장 나 답다’, ‘자기 답다는 뜻이 되는 것이기에

 

누군가를 닮으려 애를 쓰기보다는 부족한대로 더욱 더 나 다워지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우보천리,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의 뜻을 되새겨보며    2021년을 새롭게 맞으면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그 길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끝까지 걸어가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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