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즈음 방송 중에 많은 부분을 노래와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런 시간이 늘어가는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방송을 더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두움이 점점 길어지고 뉴스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지역마다 더욱더 심하게 퍼지고 있다니 아무리 애를 써도 울적한 마음이 치솟곤 한다. 이럴 때 잠시라도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러한 방송은 좋은 것 같다. 모여서 하던 노래 교실도, 다른 취미 활동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역시 멜로디가 섞인 어떤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세계의 공통 언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근래에 유 튜브 방송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오중주 ‘송어’>를 경회루 연못 가에서 연주하는 것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 멜로디가 주는 아름다움은 말할 수도 없고 연륜이 짙어 보이는 흰 머리카락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젊은 음악인들과 함께 COVID -19로 힘든 국민에게, 아니 전 세계인에게 희망을 주는 뜻 깊은 연주를 한 것이다. 이 곡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나에게도 특별히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남편이 주 정부의 한 기관에 감사 책임자로 있을 때 그 부서에 회계사 한 사람을 채용하는 일이 있었다. 여러 지원자 가운데 랜스 라는 홍콩 사람을 택하게 되었다. 지원자들의 회계 경력이 중요하지만, 그 자리의 특성상 개개인이 지닌 다른 면을 종합해서 한 사람을 뽑게 된 것이다. 랜스는 원래가 음악 전공자로 영국 왕정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캐나다 몬트리올 심포니의 단원이 되었다가 팔에 문제가 생겨 연주 생활을 못하고 회계사 공부를 하게 되었단다. 비슷한 실력자들 가운데 랜스의 경우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할 정도였으니 배경이 남다를 수 있고, 그만큼 다른 세계를 경험했을 것이며, 또한 이민자로 사는 삶에서 부딪치는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도 무언가 다른 점이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한다. 그 직원이 출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난 뒤에, 상사인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우리 부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가 보니 자기네 친구들도 몇 명 와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맛있게 준비한 음식을 들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 이 친구들이 방에서 악기를 하나씩 들고나오더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TROUT’(송어)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전혀 예상치 못한 깜작 쇼였다. 얼마나 아름답고 인상적인 분위기였던지, 이러한 대접은 전에도 후에도 다시없는 추억이 되었고, 음악을 통해 많은 공통 주제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토론토 RCM(Royal Conservatory of Music)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공부하신 J님이 지도하는 밴기우(밴쿠버 기타 우쿨릴리) 합주반에서 우쿨릴리를 꾸준히 배우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모이기를 중단했다가 선생님의 열정으로 여름에 다시 시작해서 가을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 모두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이전 같으면 성탄절을 맞아 양로원에 위문 공연도, 그리고 교민 행사에 찬조 공연도 했을 터인데 모든 것이 마비된 상태라서 매우 아쉽다. 그래도 가라앉은 마음들에 용기를 주고, 또한 이러한 상황에도 영상을 만들어 세계인이 보는 유 튜브에 올리심으로 나에게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지도 모를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미숙하지만 함께 하는 멤버들의 훈훈한 응원 덕분에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을 멜로디와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어 매우 감사하다.
오늘도 경회루의 연주 ‘송어’를 또 들으면서 마치 연못에서 송어가 선율에 맞추어 힘차게, 그리고 유유히 노니는 모습을 연상하며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경복궁 동네로 안내해 주어 무한한 향수에 젖으며, 특히 성탄절을 맞으면서 캐럴과 희망 멜로디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 주님의 귀한 은혜임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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