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기 / 한국문협 캐나다지부회원
금요일 오후 1시 30분, 권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일 저녁 부군 장로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양치를 하기 위해 2층 욕실로 올라가셔서는 그만 그대로 쓰러지신 후, 6일을
버티시다가 결국……
권사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이민 오던 해, 첫 주일 예배 때였다. 이제 막 개척한 지 6개월된 작은
교회를 우연히 한국에서부터 알게 되어 이민 가방을 미처 다 풀기 전에 맞이한 주일날, 설레고 또
떨리는 마음으로 4식구가 교회를 나가 만난 분 중에 권사님은 우리 가족을 가장 반갑게 맞아
주시던 분이었다. 원래 아보츠포드에서 비즈니스를 하시다가 부군께서 사업을 은퇴하시고 교회
근처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된 인연으로 지금까지 나의 19년 2개월여의 이민생활 동안 일가친척 없는
캐나다 땅에서 그야말로 한 식구와도 같은 관계로 지내오던 분이었다.
특별히 권사님의 요리 솜씨는 일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18번은 육개장과 게 요리였다. 부군의
취미와 나의 취미가 마침 같은지라 가끔씩 필드를 돌고 나면 어김없이 육개장을 끓여놓고는
집에서 기다리셨다. 운동을 마치고 먹는 육개장의 알싸했던 맛이란… 또한 이제 막 개척하여 일할
손이 없던 시절, 교회에 새 신자가 등록하거나 한국에서 기러기로 있던 아빠들이 방학기간 방문을
하게 되면, 또 어김없이 집으로 초대하여 게 요리로 성찬을 베푸시곤 하였다. 새 신자부를 따로
두지 못했던 시절, 권사님의 헌신은 너무도 귀한 밀알이 되곤 했다
무엇보다 권사님은 참 지혜로운 분이셨다. 남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는 모습을 도통 본 기억이 없다.
남편과 자식들에게는 현모양처로서, 교회에서는 기도의 어머니로서, 어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난 걱정 안해. 기도하는데 무슨 걱정 할 일이 있어?’하시면서 위로하려는 이를 오히려 위로하던
분이셨다.
권사님 부부와의 애틋한 추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두 차례의 여행은 지금도 보석처럼
생생하다. 권사님 환갑을 맞던 해, RV차로 떠난 캘거리, 에드먼톤, 밴프 여행과 칠순을 맞던 해 미국
섬으로 다녀온 나들이는 참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들이다. .
올해 초 머리가 아프시고 어지러운 증세로 병원을 다녀오셔서 뇌혈관 일부가 부은 위중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지만 연이어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수술 일자가 자꾸 늦어지고, 한국 행도 막힌
답답한 상황 속에서 이제 딱 한 달만 있으면 수술 일자를 맞게 되는 희망적인 상황이였는데…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준비없이 찾아오는가 싶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지인들과 작별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함이다. 또한 결국 만남과
이별이 곧 인생의 전부임을 깨닫는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은 우리에게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준다. 삶에서 겪어야 할 이러한 고통은 그러나 꼭 감당할 만큼만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상실감에서 다시 일어서서 극복해 나가야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상은 살아남은 자의 몫
일뿐이다. 내 마음 속에서 내 꿈속에서 이별한 이를 그리워하면서 살아도, 또한 지금 가슴이
미어지더라도, 먼저 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우주의 먼지로 흩어질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일 태양은 또 다시 뜰 것이기에…
생전에 찬양을 좋아하시던 우리 권사님이 때로 흥이 나거나, 울적하시면 부르시던 애창곡 ‘여자의
일생’을 권사님을 떠올리며 가만히 읊조려본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附記 삼가 고 최혜숙 권사님의 명복과 천국에서의 안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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