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한국문협 회원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콕 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여러 자잘한 부침이
생기더라.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친구들과 뛰어놀던 일상을 보내던 아이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꽤 힘들었을 법도 하다. 자기들끼리 도 자꾸 싸우고
별거 아닌 것에도 쉽게 화를 내며 짜증을 냈다.
당연히 아이들은 매일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경향이 늘어만
갔다. 엄마인 나는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만 나면 계속 비디오 게임을 하려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했고, 화를 내기도 하고, 또 점점 더 강하게 아이들을 제재하려다 보니
관계가 자꾸만 나빠졌다. 기존에 우리가 살던 일상으로 당장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무엇이든 ‘안돼’만 할 수는 없을 터인데. 나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지치고 죄책감이 커졌다.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품고 있던 차였는데,
하루는 한 지인과의 통화하며 얻은 작은 조언이 크게 위안이 되었다.
“자기도 힘들지? 우리도 이런 거 경험 안 해봤잖아. 애들은 오죽하겠어?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인데, 아이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해보는 게 어때? 게임 좀 하면 어때? 쟤들도
얼마나 답답하겠어.”
문득 나 자신도 지금의 상황이 너무 괴롭고 답답하기만 했는데, 아이들도 친구들과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뭐가 문제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엄마도 같이해보면 안돼? 너네만 재미있지 말고, 나도 같이 좀 재미있어 보자.”
아이들은 도리어 기쁘게 답하며 그동안 엄마와 게임을 너무 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날부터 함께 아이들과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함께 앉아서 같은 게임을
하는데, 게임을 잘 모르는 나를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용어로 ‘눕(noob)’이라고 부르더라.
그리고 이것저것 가르쳐주면서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 것 같았다. 그간 나만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했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게임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소통을 좀 더
하게 되기도 했다. 공동의 목표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도
했나 보다. 그리고 어리버리한 어색한 모습에 웃음도 나오고 엄마가 부쩍 가깝게 다가왔다고
하더라.
나 또한 그간 아이들이 왜 그렇게 게임에 몰두하고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나 했는데, 함께
하다 보니 아이들이 좀 더 이해되기도 하더라. 그리고 지나치게 늘어지는 게임 시간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정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물론 게임도 생각보다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려 조금은 더 노력하게
되었다. 나만의 룰 안에 아이들을 가두고 그대로 따르게 하던 방식을 고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더 많이 의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불만과 짜증이 줄어들어서, 나도
전처럼 화를 내는 죄책감 가득한 엄마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늦은 것은 아닌지, 너무
아이들에게 못된 엄마이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후회의 마음이 약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간다는 것에 감사함을 갖기도 한다. 한편으론 일상을 잃은
어려움 속에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 그나마 이 시기에 얻게 된 작은
선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엇보다 다시 천금 같은 평범했던 그 시간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긴 한다. 그렇다면 분명 지금의 경험으로 훨씬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그런
희망으로 기다림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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