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덕분에, 때문에

김진양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6-01 15:14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인터넷이 하도 발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퍼트리니 그것을 통해 덕 보는 
일도 있지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소셜 미디어

(SNS)와 가깝지 않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찌 따라 갈 수 있을까! 주고받는 영상물을 
통해서 새 정보는 물론 좋다는 말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하도 많이 쏟아져 나와서 어떤 말
을 한다 해도 하나도 새롭지 않을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COVID-
19의 확산으로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되어 자연히 뇌도 많이 쉬고 있다. 이것을 ‘때문’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덕분’이라 해야 할지, 노년기의 주부로서 가정 일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여유의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더 보게 되고 이것저것 들추어 정리도 하고, 무료로 
보내주는 유명한 연주회나 오페라 등을 감상하며 불안정한 가운데 좋은 점도 꽤 있다. 글자
를 오래 드려다 보고 있으면 눈이 쉽게 피곤해져서 오디오 북을 많이 이용하게 됐다. 국내
외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접하며 전에 하지 않던 일이라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사회적 거리를 두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독특한 민족성
인 ‘빨리빨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 신입 사원 모집에 일차 서류 심사에 합격
한 사람들을 한 방에 모아 놓고 면접을 기다리게 했단다. 삼십 분이 지났는데 아무런 면접
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왜 시간을 안 지키지?’ 하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더 지나
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더욱 불평을 쏟아 
냈는데 그 중에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참고 기다리는 지원자도 있었다. 한 시간 삼
십 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채용관이 나타나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오늘 면접은 
이상으로 다 끝났고 합격자는 결정되었다고 했다. 모두 의아한 가운데, 그 결과는 불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던 사람이 뽑힌 것이다. 그 대기실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지원자의 모
습이 모두 녹화, 녹음되어 면접실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란다. 
 
    남편의 오래 전 어떤 일이 떠오른다. 밴쿠버의 큰 회사에서 회계감사로 오래 일하다가 
한 정부 기관에서 감사 책임자를 구한다는 것을 알고 서류를 냈다. 인터뷰하기로 한 날 오
후에 예정된 시간 보다 십 분 일찍 도착해서 대기실에 있는데 예고하지 않았던 필기 시험을
 삼십 분간 치르게 했다. 좀 의아했다. 그 후부터 한 사람씩 면접실로 들어가 인터뷰 받고 
나오는데 차례가 맨 나중이던 남편은 그 대기실 직원이 퇴근 하는데도 아직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와서 오늘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은근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그냥 하겠다고 해서 결국 면접실로 들어 갔다. 네 명의 면접
관과 이야기하는데 긴장과 피곤이 겹쳐 몇 마디 대답하고는 언짢은 심정을 이야기하니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 후에는 기분을 가라 앉혀 제대로 인터뷰를 마치고 속으로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닌 모양이다’ 고 생각하며 한 마디 더 하고 싶다 하고는,
“사실 기다리는 동안에 마음이 언짢았고 집에 가서 이 회사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것 보

다 지금 다 이야기하고 오늘 일은 잊겠다.” 하며 털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뜻밖에
 그 면접관 중 책임자로부터 어느 날부터 출근할 수 있겠느냐고 전화가 왔다. 오랜 후에 들
은 이야기이라는데 기다림도 기다림이었지만 그 날 마지막으로 던지고 나온 말 한 마디 때
문에 결정 되었다는 것이다.  회계감사라는 자리의 특성상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필요했던 
것 같다고… 그 후부터 종종 자기는 늘 ‘회개’ 하고‘감사’ 하면서 산다고 말한다. 
 
    학교가 전에 없던 온 라인으로 수업을 함으로 손주들이 컴퓨터를 쓰게 됐다. 때가 되면
 선물하고 싶은 품목이었던 차에 미리 선심 쓸 수있는 좋은 기회다. 공부하는데 필요할 테
니 원하는 컴퓨터 사라고 짧은 메모를 각각 붙여 수표 한 장씩 보내주었다. 며칠 후, 꼭 필
요한 컴퓨터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매우 감사하다고 신나는 목소리가 전화통을 울렸다
. 이 기회를 놓칠세라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힘 안들이고 하면서 앞으로 더 자주 연락
하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손주들과 새로운 통신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코로나 덕분에!
 
    이번 기회에 ‘빨리빨리’의 습성이 좀 나아지기 바라면서 기다림의 교훈을 되 뇌어 보며,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를 맞는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평생 현역 2024.01.02 (화)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난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라앉는 기분이지만 천운을 어찌하겠는가!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대학 선배님이 최근에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 달여 전에도 카톡 통신을 주고받았는데, 그때 코비드 감염으로 몸이 몹시 아프다고 했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실 줄은 생각 못 했다. 사인은 코비드 보다 갑작스러운 췌장암 진단에 의한 충격에 혈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하니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김진양
오카나간의 추억 2023.07.24 (월)
  작년 여름 휴가철에 두 아들이 주말 휴가를 제안해서 모처럼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COVID19로 인해 많은 사회적 제약을 견뎌내고 다행히 아무런 탈 없이 지내 온 것에 감사했다.  맏아들은 회사 일로 뉴욕에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라서 저녁 늦게 도착하여 하룻밤 지내고 아침에 함께 떠날 계획이었다. 단 네 식구만의 움직임이라 기대가 컸다. 새벽에 아들이 서두르며 나가려 하기에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밤중에 메시지를 받았는데 회의에...
김진양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줌으로 기도회를 마치고 등산 준비한다.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붙들어 놓는다. 시시각각 예보되는 날씨를 점검하면서 과연 이번 주말에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날씨는 쨍하지만 나를 포함해 함께 걷는 회원의 연륜이 높아져서 그냥 카페에서 만나 커피 타임만 갖자는 마음이 쌩하다.   이십 여 년 전에 여러 명의 교우와 건강 이야기를...
김진양
올봄에 우리 집 앞뜰에 도그우드 (Dogwood) 묘목 한 그루가 심어졌다. 어느새 이 타운하우스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옆집과 공동 소유인 한 뼘 앞마당에 다년생 화초들과 제법 커다란 캐나다 단풍나무가 있어서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었다. 이사 온 지 아마 3년 쯤 됐을까, 거실 앞 유리창 가까이에서 그늘이 되어주던 단풍나무에 병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 후 두어 해 지나고 결국 관리부의 결정으로 베어버리게 되었다. 곧 새 나무로 심어 준다고 한...
김진양
도그우드의 전설 2022.06.15 (수)
올봄에 우리 집 앞뜰에 도그우드 (Dogwood) 묘목 한 그루가 심어졌다. 어느새 이 타운하우스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옆집과 공동 소유인 한 뼘 앞마당에 다년생 화초들과 제법 커다란 캐나다 단풍나무가 있어서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었다. 이사 온 지 아마 3년 쯤 됐을까, 거실 앞 유리창 가까이에서 그늘이 되어주던 단풍나무에 병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 후 두어 해 지나고...
김진양
추억의 여행길 2021.10.28 (목)
언제쯤 자유롭게 여행을 하게 되려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코로나 범유행 시기를 지내면서 여행에 얽힌 크고 작은 지난 일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하와이섬 크루즈가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출발하여 15일 만에 돌아오는 일정이 있어서 다녀온  적이 있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니 한결 수월할 듯해서 그 항해를택했다. 출항해서 5일 동안 망망대해만 바라보며목적지에 도착하면 5일간 이 섬 저 섬 하루씩관광하고, 다시  5일...
김진양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미국 동부에 한 노인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시는, 나와 띠가 같은 숙모님께서 작년 말에 90세를 맞으셨다. 미국 생활을 감사해하시며 매일 노인정에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살아오시다가 지난해 봄부터는 코비드-19로 인해 나들이를 못 하신다. 자녀 가족들은 생신에 모여서 축하해 드리려던 계획을 미루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생신이므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 드리려고 미리 카드를 준비해 놓고...
김진양
희망 선율과 함께 2020.12.21 (월)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요즈음 방송 중에 많은 부분을 노래와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런 시간이 늘어가는 것 같다....
김진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