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을 구상하며 진통과 산통을 거듭하는 순간은 참 버겁기만하다. 적잖은 세월 글을 읽고, 또 써 왔다고는 해도 언제나 그 시간 앞에서는 길 잃은 양이 되고, 잔고 없는 통장을 들고 출금기 앞에 서 있는 듯한 초라함이 느껴지고, 지도와 네비게이션 없이 초행길을 차 몰고 나선 심정이 되곤 한다. 내 손에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펜이라도 하나 들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속이 쓰려 올 때까지 커피를 내려 마시고, 공연히 서가에서 이 책 저 책을 꺼내서 읽지도 않고는 도로 제 자리에 끼워 놓다가,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써핑을 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느라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과연 내가 쓰는 글에 ‘힘’이 있기는 할까? 자문해본다. 바라기는 내 글이 등산길 배낭에서 꺼내 먹는 사과 반쪽처럼 달거나,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누군가 새벽에 그 물을 마시고 입술이라도 적셔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지만, 산통의 절정의 이 순간에는 그 꿈이 아득히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진정 힘이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실제 그 고양된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끔하는 글이야말로 명실상부한 힘이 있는 글이라 할 것이다. 굳이 영웅들의 서사시나, ‘나의 투쟁’과 같은 왜곡된 인간관의 자서전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잔잔한 가운데 힘 있는 글의 예는 우리 일상 가운데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광장. 나이 든 장님이 종이박스에 자신의 처지를 알린 채 구걸을 하고 있다. “I’m blind. Please help.”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 두는 사람은 없었다. 한 노신사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다가 되돌아와 그가 들고 있는 종이를 뒤집어 뭐라 뭐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열의 아홉이 장님에게 돈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동전뿐만 아니라 지폐들이 쌓여, 어느새 그가 들고 있던 박스는 가득해졌다. 장님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노신사에게 물었다. “What did you do to my sign?” 노신사는 대답하였다. “I wrote the same but in different words.” 그가 쓴 내용을 볼 수 없는 장님은 노신사에게 종이박스에 쓰여진 글귀를 읽어달라고 하였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두 문장이면 족히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주머니를 열어서 이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없는 이에게 그 하늘을 혼자서 본 미안함의 대가를 지불하게끔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964년에 태어나 서른 세 살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젊은 가수 김광석은 일찍이 이러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의 수많은 절창 가운데에서도 지금의 나의 고민과 한계 앞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노래를 남겨주었으니 그 노래를 소개하며 조용히 읊조려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울음 속에서 / 마음의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힘 / 나의 노래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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