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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우스에서 버나비 마운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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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2-19 11:34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줌으로 기도회를 마치고 등산 준비한다.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붙들어 놓는다. 시시각각 예보되는 날씨를 점검하면서 과연 이번 주말에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날씨는 쨍하지만 나를 포함해 함께 걷는 회원의 연륜이 높아져서 그냥 카페에서 만나 커피 타임만 갖자는 마음이 쌩하다.

   이십 여 년 전에 여러 명의 교우와 건강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걷는 모임을 시작하자는 의견에 마음을 모아 그라우스(Grouse) 마운틴 등산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산정을 바라보는 위치에 살아서 곤돌라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지내던 때였다. 첫 번 모이던 날, 과연 그 힘들다는 길을 걸어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소지해야 할 것들과 가파른 등산로에 대한 주의 사항에 유의하며 아마도 십 여 명이 함께 출발했던 것 같다. 날씨가 좋았고 처음 시도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렵게 도전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참 올라가니 겨우 ¼ 지점 표지판이 보였다. 잠시 멈추어 땀을 닦고 호흡을 고른 뒤에 다시 오르기 시작해서 중간 지점에 다다르니 인제 그만 중단하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서 내려가기는 더 힘들다는 사전 경고를 들은 지라 어쨌든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씩 목을 축이며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하며 꾸준하게 걷다 보니 ¾ 지점까지 다다랐다.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바라다보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이란! 아마 1시간 40분 쯤 걸렸을까? 마지막 대원을 기다려 모두 카페에 모여 앉아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마시는 아침 커피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품이었다.

   그 후에 두 번 더 올라갔으며 이것이 나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몇몇이 캐필라노(Capilano)강 물소리를 즐기며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점점 그 수가 늘면서 코스를 바꾸어 다 같이 린 밸리로 옮기자는 의견에 뜻을 모아, 흔들 다리를 건너 라이스 레이크 주변으로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택했다. 때에 따라 곰 주의보를 보기도 하고, 잘 익은 열매를 따서 새콤달콤한 맛을 보기도 하고, 재잘거리는 새소리도 들어가며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즐겼다. 이때만 해도 눈과 비를 겁내지 않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때로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의 가사를 되새기기도 했다. 마치는 대로 린 밸리 길에 있는 맥 카페에 모여 김이 오르는 커피를 홀짝이며 정겨운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린 밸리는 이민 첫해에 직장을 가지고 1년 동안 살던 동네여서 그때 일하던 곳을 매주 지나치며 옛날을 회상했다. 정든 옛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반세기가 훌쩍 넘은 그때 그 동네의 모습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다.

   삼 년 전에 갑자기 코비드(Covid) 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모든 사람의 발과 마음을 묶어 놓았다. 참으로 무서운 현상들을 보면서 정부의 지침에 꼼짝 없이 따라야 했다. 그런 상황에 남편에게 척추 압박 골절이라는 어려움이 닥쳤다. 오랜 기간을 통증으로 시달리면서, 특별한 치료 방법 없이 자연 치유를 기다려야 하는 어려운 질환이다. 가정의나 전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게다가 그 여름은 폭염으로 더더욱 끔찍한 시간이었다. 산악회의 일원으로 밴쿠버 근처의 힘든 산행을 많이 했었는데! 일 년 여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전염병 예방 접종을 1, 2차 하고 난 어느 날, 우리 산행 팀 리더로부터 걷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메시지가 왔다. 매우 반갑긴 한데 남편이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나 오랜 시간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만남이 필요했다. 처음이라 아주 평평한 공원에서 모였고, 굽어진 남편의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거듭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에 힘을 얻고 이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어 달 뒤에 좀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버나비 마운틴 등산로로 바꾸어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이 긴 세월 동안에 우리의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발걸음마다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눈 때문에 못 가는 아침엔 하얀 지붕 넘어 버나비산 등성을 바라보며 맥 카페의 커피 향 대신 따끈한 생강 차 한잔을 즐긴다. 머지않은 새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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