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복부 비만, 늘어나는 허리둘레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다.
나는 한번 늙어보고 싶다.“ 암으로 투병하던 36세의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 둘과 남편을 세상에 두고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 말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에, 살아야 할 이유와 절절했던 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건장한 젊은 남성 연예인이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브라운관을 통한 한 드라마에서였다. 귀해 보이는 외모에 환한 미소가 빛나던 청년으로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랬던 그가 왜, 한창나이에 귀중한 삶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누구는 간절히 살고자 하나 살 수가 없고, 누구는 살 수 있지만 스스로 죽으려 한다. 이 모순적 사실이 오늘의 화두로 떠오른다.
요즘 들어 한국 사회에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극심한 생활고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거나 불치병으로 희망의 끈을 놓는 이해할 수 있는 이유보다, 이해하기 힘든 정신적인 이유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풍요로워진 생활만큼 삶의 질이나 부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상대적인 자괴감이나 정신적 빈곤의 체감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인식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까닭이다. 자신을 주인으로 보지 않고 타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주위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마저 스스로를 용납 못 하는 자학의 원인이 크다 하겠다. 실패 역시 우리가 가는 길 중 하나의 길이라 생각했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고 모처럼 스산한 바람이 있는 저녁이다. 발코니에 나가려고 문을 여는데 벌 한 마리가 모기장에 붙어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손으로 두드려도 날아가지 않는다. 불을 꺼 보니 그제서야 날아간다. 불을 끄지 않았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온몸의 기운을 탕진하거나, 누군가 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왔다면 결국 생명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빛으로 향하는 집념이 결국 자신을 다치게 할지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기대와 그 기대 속에 보이는 환상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넘지 못할 불빛의 벽을 향해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다. 그 길이 아니면 보다 나은 미래도 없을 것이라 단정 지었고, 그런 삶을 더는 허용하고 싶지 않았었다. 만일 그때 삶의 끈을 놓았다면, 나와 더불어 두 자녀와 지금의 내 가족은 현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부모 형제와 지인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불빛 속에는 행복의 그림자를 비추는 허상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친구로, 동료로, 사회 속의 한 지체로서 말이다. 가끔, 삶은 나에게 무력감을 안겨 주기도 하고 짙은 허무 속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비록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해도 자신이 원하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곁에, 현재 내 자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인 고(故) 스티븐 호킹은 그의 환갑 기념 심포지엄에서 당신이 이룬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 내가 이룬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21세부터 찾아든 루게릭병이라는 육체의 감옥 속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버텨온 그의 의지를 감히 엿볼 수 있다. 그가 이룩한 빅뱅 이론이나 블랙홀 개념 등의 수많은 물리학적 업적도 그의 생의 기적에 속해 있기에, 지금껏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값진 일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다 보면 바위 위에 터를 잡은, 비틀리고 구부러져 미처 크지 못한 나무를 볼 수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도 척박한 환경에 뿌리내려졌는가, 가슴이 아릿해진다. 그 비루한 가지에 눈물 같이 매달린 작은 잎새들. 생명의 경이로움과 고통의 결실을 하늘 아래 펼쳐 보이고 있다. 거칠 것 없는 바람을 견디며 단단한 돌 틈새를 비집고 힘겹게 뿌리내리는, 그 살고자 하는 욕망은 처절하고도 숭고하다. 어떤 조건에서라도 주어진 생명에 최선을 다하여 지키는 것 또한, 생의 의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삶의 의미를 잃었던 지난 시절,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이유 없는 삶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하여 평생 해지지 않을 가죽 신발을 준비하느라, 내게 허락된 오늘을 소비하지 않기를 스스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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