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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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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9-30 11:26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우리 집 패밀리 룸은 정남향이고 동쪽 서쪽 남쪽이 모두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밤이 아니면 늘 환하다. 여기서 뜰을 보면 마치 정원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햇빛이 강렬하고 무더운 여름 며칠을 제외하고는 늘 유리창 가리개를 젖혀 놓고 산다. 하지만 가을이 깊어 가면 우리는 할 수 없이 패밀리 룸 한쪽의 블라인드를 창틀 아래까지 내려놓아야 한다. 바로 새들 때문이다. 옆집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앵두같이 작고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는 나무가 세 그루 있다. 사람이 먹지는 않지만, 꽃처럼 예쁜 이 열매가 익어가면 개똥지빠귀가 떼를 지어 날아온다. 이들이 열매를 먹고는 쏜살같이 날아가는데 가끔 우리 집 유리창을 빈 공중인 줄 알고 날다가 부딪히고는 한다. 지지난해에는 무려 열 마리 가까운 새가 유리창을 박고 죽었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치우는 것은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리창이 하늘인지 알고 날다 죽는 이 가여운 생명이 안쓰러워서 새의 충돌을 막을 방법을 찾아봤다. 가장 쉬운 방법이 유리창 가리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생활 보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새들 덕분에 가을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새가 부딪히는 패밀리룸 서쪽의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산다.

  나는 비행기의 운항에 지장을 주는 새들 때문에 공항 주변에는 새를 쫓기 위해 소음기 같은 특별한 장치를 한다는 뉴스는 여러 번 접했다. 국제 민간 항공 협회에 따르면 매년 1만 회 이상 조류나 박쥐가 비행기와 충돌한다고 한다. 비행기와 승객에게는 안전 위험이지만 충돌하는 조류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들은 인간이 비행 물체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이전에는 하늘의 지배자였다. 그런 새들에게 하늘을 나는 커다란 괴물을 인지하고 적응하기에는 비행기의 역사 1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비행 물체와 부딪혀 죽는 조류의 수는 건물, 주로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조류의 수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쿠퍼 조류학회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여러 연구의 중앙값으로 연간 5억 9천 9백만 마리의 조류가 빌딩에 충돌해 죽는다고 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들 중 약 56%는 저층 건물에, 44%는 주거 시설에 부딪혀 죽고 1% 미만이 고층 건물에 부딪혀 죽는다고 한다. 건물, 특히 유리창은 사람이 조류에게 가하는 주요한 위협의 하나라고 한다.

  사람이 유리를 사용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우리나라 신라 시대 유물에도 유리 제품이 나오고 인도에서는 기원전 18세기에 유리구슬이 있었다고 하니. 하지만 거울의 방을 만든 전제 군주 루이 14세의 거울에 대한 끝없는 집착에도 불구하고 당시 4㎡ 크기의 유리 가격이 유리 기술자 한 사람의 4만 시간 임금에 상당했다는 것을 보면 유리는 19세기 대량 생산이 이뤄지기 전까지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1851년 영국의 수정 궁전은 유리를 건축 주자재로 사용한 최초의 건물 중의 하나이었고 이후 유리는 건축 자재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제는 건물 외벽을 아예 유리로만 지은 경우도 흔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방문은 주로 창호지를 발라 쉽게 미어지다 보니 자주 새로 발라야 했다. 이렇게 보니 인류가 창문을 유리로 만들어 산 것은 채 200년이 되지 못하는 셈이다. 200년은 진화를 통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날짐승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진화는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더딘 변화의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환경에 적응하고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변화를 빨리 따라잡을 수 있다. 우리 사람은 라디오, 텔레비전, 전화기, 자동차에서 선풍기, 세탁기, 청소기, 컴퓨터, 식기 세척기, 휴대전화, 인터넷 등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발명하고 상용화하였다. 그리고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이것들을 능숙하게 활용할 뿐 아니라 아예 이런 제품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고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사람의 놀라운 적응 능력이다. 그러나 어떤 동물도 이런 빠른 적응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무수한 날짐승이 사람이 만든 유리창을 포함한 물건들에 충돌해 죽는(bird strike) 근본 원인이다. 우리는 이미 하늘을 날고 싶은 오랜 욕망을 충족하고 날짐승의 생존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런 지상 최고의 능력자인 우리가 진정 조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의 멸종을 막으려면 그들에 대해 배려를 해야만 한다. 만약 여러분이 새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것을 본다면 유리창 전체에 새가 식별할 수 있게 표식을 함으로써 그들의 충돌을 줄이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우리가 뜻이 있다면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 집은 매년 10월이 되면 늘 패밀리 룸 서쪽의 블라인드를 내려놓아 새들의 충돌을 크게 줄이고 더는 사체를 치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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