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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70_정운경 회계사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5-12 11:52

“회계사로 인생 2막, 집착 버리니 마음에는 평화가…”
이민자의 삶은 종종 인생 2막에 비유되곤 한다. 무대의 배경이 한국 어딘가에서 이곳 밴쿠버로 꾸며진다는 점에서, ‘2막’이라는 표현은 꽤 적절해 보인다.

2막은 또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단어다. 지루한 1막을 연출한 누군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2막을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채운다는 게 쉽지가 않다. 무대 위 다른 배우들이 쓰는 언어가 너무 낯설고, 1막에서의 경험을 인정받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런 무대 위에서 이민자는 오랜 시간 침묵만 지켜온 단역 배우처럼 위축되기 쉽다. 새로운 대사를 만들고, 새로운 장면을 시도할 용기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낯선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50세 즈음, 그는 은행이라는 탄탄한 직장을 뒤로 하고 이민을 결심했다. 그리고 50대 중반부터 회계사 시험에 매달린다. 이를 위해 그는 장사가 그런대로 잘됐던 식당을 미련없이 접었다고 했다. 회계사 정운경씨(사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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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평가가 그리 중요한가요?”

지난 2003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족을 제외한 주변의 반응은 ‘응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이 먹어서 공부는 무슨 공부, 뭐 이런 식의 얘기를 많이 들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정 회계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문자 그대로 몰입해 왔다. 그런 그에게 남들의 평가가 최우선 가치일리 없다. 

“처음 이민 와서는 식당을 하나 했어요. 기업 이민으로 캐나다에 왔는데, 이민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식당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지요.”

식당은 수익이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었다. 몸이 힘든 날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 식당일은 익숙해졌고,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이민 조건이 충족된 날, 그는 바로 식당을 정리했다. 


도대체 왜죠? 식당을 접는다는 것,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는 좀 무모한 결정 아닌가요?
이민 왔을 때부터 회계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식당 사업을 쉽게 그만둘 수 있었던 거죠.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이 적자가 나도, 손해를 메우기 전까지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못하잖아요. 뭐 다 집착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방향 전환이  좀 쉬워요. 내가 뭘 해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련 없이 바로 행동에 옮깁니다. 한마디로 집착 같은 건 하지 않아요. 돈에만 끌리는 일도 없지요. 그래서 마음이 늘 편안합니다.

회계사가 돼야겠다는 결심,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오랜 시간 은행에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은행 출신들은 이민 와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우선 그게 궁금했지요. 그래서 좀 면밀히 알아봤지요. 누구는 모텔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구는 그로서리를 하고 있고…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요. 그게 바로 회계사였어요. 저는 회계하는 게 참 편하고 즐거워요. 다른 일을 했다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게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회계사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공부 시작하고 회계사 되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는데, 저는 그 과정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유달리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 당연히 그리고 즐겁게 한 것 뿐이지요.

공부 스타일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몰입한 거죠. 어려운 문제 혹은 이해 안 되는 부분과 맞닥뜨리게 되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해요. 어떨 때는 꿈에서도 그 문제 생각 뿐이에요. 그러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딱 치게 되는 순간이 오지요. 

50대 중반에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영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텐데요.
그때 그때 주어진 상황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달라지잖아요. 예를 들어 식당 할 때의 영어와 회계사 할 때의 영어는 다릅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저 같은 이민자는 처음에는 잘 못알아 듣죠. 하지만 상황에 적응하면 자기 나름대로의 영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가 어떤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계속해서 매달리다 보면 답과 마주하게 됩니다.

몰입했다고 하셨는데, 하루 공부량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대여섯 시간 정도만 자고 나머지는 죄다 공부만 한 거 같습니다. 도시락 두 개 싸 들고 도서관 가서, 날 어두워진 후까지 계속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던 그때가 나름 좋았습니다.

회계사 시험에 최종 통과한 뒤 주변의 시선이 많아 달라졌겠습니다.
과목 하나하나를 합격하는 순간은 물론 즐겁지요. 하지만 뭐 그렇다고 특별한 쾌감 같은 건 없었어요. 주변의 시선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회계사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이 직업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죠. 은행에서부터 회계 업무를 했는데, 이 일이 제 적성에 딱 맞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목표로 세워지면, 이런저런 생각 말고 거기에만 매달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에 끌리고, 또 다른 무엇인가에 끌리고…. 그러면 곤란한다는 거죠. 계속 반복되는 얘기지만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그 외에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늘 편안합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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