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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꿈나무들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되겠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6-01 10:49

전(前) 유니버시아드 한국 국가대표, ‘BC 사커 아케데미’ 김종찬 감독

밴쿠버 한인사회를 기웃거리다 보면 ‘왕년에 내가 말이지···’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간혹 접하게 된다. 과거를 향한 그 숱한 ‘찬가’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좀 심하게 윤색돼서 듣기에 좀 거북하기까지 하지만, 이 남자 김종찬씨의 스토리는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인다.

그는 축구선수였고, 그의 축구인생은 거침이 없었다. 한국 청소년 국가대표,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등 얼핏 봐도 그 이력이 꽤 화려하다. 88년 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 93년 대학 시절에는 대표팀 주장으로 세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해 준우승을 이끌었다. 전국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손에 거머쥔 것도 여러 번이다.

대학 졸업 무렵 그는 금융팀을 택했다. 당시에는 한국 프로리그가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던 때였다. 태극전사 황선홍은 독일 무대에 도전했고, 열혈 수비수로 알려진 김태영도 김종찬씨처럼 은행에서 뛰기로 했다. ‘K리그’는 그만큼 활력이 없었다. 연봉상한제 탓에 신인들에 대한 대우도 좋지 않았다. 김종찬씨는 프로보다는 평생 직장으로 전혀 손색 없는 은행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는 농담이라고 믿고 싶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탄해 보이던 은행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이른바 IMF사태의 여파다. 소속팀은 해체됐고, 은행은 타 금융기관과 합병됐다.

선수로 활짝 꽃피우기도 전에 그는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운드를 활주하던 그는 꽤나 얌전해 보이는 은행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돈 세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적성이라는 것은 마음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 안에 갇힌 종마처럼 갑갑했고, 결국 은행을 나왔다. 중고등학교에서 축구를 가르치며 다시 ‘솔잎’을 먹기 시작한 김종찬씨는 지난 2004년 밴쿠버 이민 길에 오르게 된다. 이민은 축구인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기려는 축구’에서 ‘즐기는 축구’로 생각의 전환
“이민 오고 처음 3개월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말 그대로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때 찾아간 곳이 한남 수퍼마켓이에요.”

난생 처음 해 보는 수퍼마켓 일이었지만 그는 성실히 일했다. 그 결과 매니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축구와의 끈은 놓지 않았다. BC한인청소년축구클럽을 만들어 퇴근 후에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다. 이때 그는 아이들을 통해 축구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기려는 축구’만 배웠고, 또 그렇게 해 왔죠. 그런데 이곳에서 접한 축구는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더군요. 그것보다는 즐기기 위한 축구가 먼저인 것 같아요. 이른바 ‘엘리트 축구’만을 추구해 온 저로선 참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수퍼마켓 매니저와 축구코치. 그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6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축구를 배우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정의 순간, 그의 눈은 축구를 향해 있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생각처럼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꼬박꼬박 나오던 ‘급여봉투’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가계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수퍼마켓 매니저로 사는 게 훨씬 안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저한테는 축구였습니다.”

그는 ‘BC 사커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곳은 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인큐베이터 같은 공간이다. 자신이 만든 팀을 이끌고 지역 축구클럽과 겨루어 보겠다는 것도 그 꿈 중 하나다.

“다문화사회인데도, 축구 클럽에서 뛰고 있는 한인 청소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저는 이게 좀 이상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한인 중심의 축구팀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지역 다른 팀과 뛰게 되면, 아이들에게도 뿌리인 한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경험일 겁니다.”


지역 클럽리그에 당당히 이름 올리고 싶어
지도자로서 김종찬씨가 축구를 ‘두둔’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다는 다소 거창해 보이는 꿈 이외에도 축구를 통해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까 잠깐 말씀 드렸지만,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즐기는 축구’를 합니다. 잔디 위에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 같은 것은 금새 날려버릴 수 있죠.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한,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그는 자신의 아이 얘기를 해주었다. 큰 아들 ‘솔’이는 축구를 하고 돌아온 날은 밥도 잘 먹고, 엄마 말도 잘 듣고, 잠도 잘 잔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지낸 날은 컴퓨터 게임만 하려 하고, 식탁 위에서 실랑이를 하고, 잠투정도 많아진다. 김종찬씨가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 축구장으로 나서는 이유다.

“축구를 즐기다 보면, 단체운동이다 보니 리더십이나 협동심 같은 것도 기를 수 있어요. 이곳 학교에서는 아이의 학업성과, 그러니까 ‘점수’만을 강조하지 않지요.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리더십이 없다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데, 축구가 그런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축구에 대한 칭찬 릴레이는 밤이 새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화제를 그의 꿈으로 다시 돌렸다. 그후 그의 고민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지역 클럽과 한무대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으려면 스폰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주고 받았다. 포드 같은 대형 업체가 지역 축구팀을 지원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후원을 지금 당장 기대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천천히 가려구요. 초석을 다져 놓으면,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벽돌 한 장 정도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말씀드린 것보다 더 거창한 꿈을 갖고 있어요. 이곳에서 축구 꿈나무를 발굴하고, 그 아이들을 프리미어리거로 만들고 싶다는 꿈, 한인축구장학재단을 만들어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꿈···. 정말 거창하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가다 보면 그 열매를 누군가는 꼭 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지금 김종찬 감독은 자신의 꿈을 세우기 위해 바닥을 다지는 중이다. 그 작업 중 하나가 6월 2일 시작되는 ‘축구교실’이다. 일정 및 장소는 다음과 같다.


▲버나비, 코퀴틀람 지역-버나비 컴플렉스 운동장(3676 Kensington Ave., burnaby) 6월 6일부터 8월 29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5시30분부터 7시
▲밴쿠버, 다운타운 지역-버나비 컴플렉스 운동장(3676 Kensington Ave., burnaby) 6월 2일부터 8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30분부터 7시
▲써리, 랭리 지역-길포드몰 수퍼스토어 뒤 Hjorth park. 6월 3일부터 9월 2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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