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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안하구나”… 밤을 새운 ‘弔問 행렬’

안산=이지은 기자, 이동휘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4-23 14:09

노부부·학생 오전부터 행렬, 퇴근후엔 직장인·대학생 몰려… 어제 하루 1만2000여명 찾아
"딸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은 내가 그 마음 잘 알아…."

23일 저녁 안산시 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임시합동분향소에 중절모를 쓴 한 남성이 들어왔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서는 유창도(69)씨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다. 유씨는 2007년 캄보디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딸·사위와 쌍둥이 손자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는 "사고 수습하느라 캄보디아에서 닷새를 보냈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문 후 그는 단원고 학생과 교사 영정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임시합동분향소는 온종일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분향소가 문을 연 오전 9시 전부터 조문객들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갓난아기를 안고 온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함께 온 노부부, 외국인, 종교인, 학생…. 오후 11시까지 1만2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이곳을 찾았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는 직장인과 대학생, 가족들이 몰려 분향을 기다리는 줄이 100m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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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멘 대한민국 - ‘하늘에선 별과 같이 빛나길’. 화환에 새겨진 문구에 가슴이 저몄다.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세월호 희생자 임시합동분향소가 차려진 23일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오전 9시 전부터 줄을 섰고, 퇴근 시간 무렵엔 100m가 넘게 이어져 조문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윤동진 객원기자 >

외국인들도 동참했다. 오전에 이곳을 찾은 일본인 주부 나카타(48)씨는 "실종 여학생의 어머니 중 알고 지내던 일본인 어머니가 있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 진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말을 들었다"며 "어린 학생들의 마지막 길이 너무 가슴 아파 안산에 사는 일본인 아줌마들이 함께 왔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날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한 태국 왓포 사원 소속 스님 6명은 공항에서 바로 이곳을 찾았다. 프라하마 나린삭 싯겅(40) 주지 스님은 "석가탄신일(5월 6일)에 맞춰 한국에 올 계획이었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일정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는 양복을 입은 직장인과 인근 상인들이 몰렸다. 공기업에서 근무한다는 김모(42)씨는 동료 3명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점심 한 끼 안 먹어도 상관없죠. 희생자들 좋은 곳 가라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조문을 마친 김씨 일행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사무실을 향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오후에 이곳을 찾은 오모(68)씨는 분향소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우리 늦둥이 딸도 고2거든요. 단원고 학생들하고 같은 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원래는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만났어야 할 아이들이잖아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오씨는 조문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이나 분향소를 떠나지 못했다.

수원에서 온 박광근(53)씨는 "줄 서서 조문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지만 우리 모두 자식 키우는 입장인데, 진도는 못 가봐도 여긴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뇌 병변으로 거동이 힘든 단원고 3학년 임모(18)군은 이날 오후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제단 앞에 섰다. 임군은 "차가운 바닷속에 있었던 후배들은 나보다도 더 많이 아팠을 텐데…. 마지막 가는 길 인사라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라며 고개를 떨궜다. 아직 실종 상태인 단원고 교사 박육근씨의 제자 문모(25·대학생)씨는 제단 앞에서 몇분간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8년 전 중학생 시절 박 선생님을 많이 따랐어요. 자상한 분이셨는데…."

논술공부방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온 허진현(10)양은 "언니·오빠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울었다.

정치인·연예인 조문객도 줄을 이었다. 오전에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이곳을 찾았다.

안산시 올림픽기념관 체육관 벽에는 조문객들이 빼곡히 붙여놓은 메모가 바람에 나부꼈다. ‘옆집 아저씨야! 아픔 없는 곳에서 못다 한 꿈 다 펼치길 바란다!’ ‘어른들이 미안하다. 너무나 미안하다’ ‘이런 한심한 세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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