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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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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6-28 08:45

심현숙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금 나는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나의 세 번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나의 인생을 결혼 전과 결혼 후 그리고 혼자가 된 현재로 나누어본다. 훌륭하신 부모님과 여덟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던 첫 번째는 축복의 삶이었다면, 두 번째의 삶은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성실하고 진실했던 남편과 남매를 둔 남부럽지 않은 51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제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었다. 상실감과 허탈감, 후회와 자책 그리고 그리움으로 죽을 것 같았던, 아니 죽고만 싶었던 1년 3개월이 지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야하는 앞날이 두렵기도 하지만 개척자적인 정신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더 압도적이다. 가능한 한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을 비축해야할 것 같다. 이미 탈진된 체력이 칠순이 넘은 나이에 쉽사리 재생될 리 없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열심히 수영장도 다니고, 스트레칭이나 걷기로 무릎근육을 키우는 일이 무릎관절에 문제가 있는 내게 시급한 과제이다.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내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다.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나 물건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 집에서 나갈 때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 많아야 4분의 일 정도로 줄여야하지 않을까 싶다. 손때 묻은 정든 물건들을 떼어내야 하니 여간 고민이 아니다. 옷가지나 책 역시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언젠가 입을 것 같고 언젠가 봐야할 일이 생길 것 같아 벌써부터 망설여진다. 그러나 어차피 다 버리고 가야할 텐데 버리는 연습을 이번 기회에 해나야겠다. ‘버리자 더 버리자’를 표어처럼 가슴에 새기고 짐정리, 살림정리에 임해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집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머리 아픈 일이다. 여기저기 수리도 해야 하고 손볼 곳도 많으니 생각만 해도 벌써 지치려고 한다. 워낙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24년을 넘게 살았다. 한 집에서 오래 살다보니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해서 좋다. 길눈이 밝지 못한 이유로 항상 운전에 자신이 없어서 낯익은 길에 들어서면 안심이 된다. 고향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과의 결별이 영원한 이별처럼 느껴져 슬프기도 하다. 남편과의 추억이 구석구석 베여있는 아늑하고 예쁜 집을 떠나기는 정말 싫다. 이제 나이가 드니 하나하나 이별할 일들만 생긴다. 모든 걸 담대하게 받아드리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가을나무처럼 지혜롭게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낙엽교목이 되자.


 아쉽지만 모든 걸 정리하고 필요한 공간과 물건에만 둘려 쌓여 간편하게 산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 여백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한다면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시간까지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처럼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그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남은 삶은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시간계획을 알차게 짜서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부지런히 의욕적으로 살 것이고, TV 앞에서 시간만 보낸다면 아무래도 무기력한 나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할머니시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자유와 편리함을 누리며 살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자된 노인들에게 외로움은 건강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다. 나 역시 그렇다. 취미생활이나 운동, 단체 활동이 다소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 나이가 들면 뼈 속에만 구멍이 숭숭 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마치 허공같은 빈 독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누구도 메워줄 수 없는 그 구멍에 우울증이나 치매 그리고 병마가 기웃거린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해서 정신까지 나약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훈계하지만 종종 낙심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큰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의 시간을 견뎌내며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하는 길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친해야할 대상은 나 자신이라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공들여 보내야할 것 같다.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칭찬하는 여유로움도 자신에게 주고 싶다.


 또 하나 해야 할 일은 마음의 정리정돈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줄이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이미 바꿀 수 없는 일에 매이지 않고, 걱정할 필요 없는 일로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헛되지 않는 건강한 여생을 살고 싶다. 남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노후의 삶이 될지언정 한 송이의 할미꽃을 피우기 위해 혼신을 다 하련다.


 마지막으로, 나의 세 번째 인생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신앙생활이다. 언제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날지 모르는 노년기이다. 이 시기는 건강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는 내리막을 향한 삶이다. 그러나 단 하나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신앙이다. 그 길을 시간과 온 맘 다해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 나는 오늘도 하루를 돌아보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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