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숙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남편의 1주기가 돌아온다. 세월이 쏜살같다 하나 이리도 빠른지 믿어지지 않다. 그 한 해가 내게는 참으로 잔인하고도 혹독한 시간이었다. 그리움과 싸워야했고 후회와 자책에 잠 못 이루며 가슴 쓸어내려야했던 고통의 나날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막연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잘 버텨주셨던 아버지셨기에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고, 잘 견디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5년 전 사고이후 단 하루도 엄마나 저 없이 지내시지 않았던 아버지가 코로나사태에 강제로 생이별을 당하고 2주간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딸이 사랑하는 아빠를 애도하며 영결식에서 낭독했던 조사 내용처럼 그 때를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사람, 그 울타리가 교통사고라는 거대한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15년이 넘도록 누워있었다. 다시는 세울 수 없는 울타리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변함없이 든든한 존재이었다. 모든 생명은 몸을 움직이며 살아야 제 구실을 하는 것 같지만 인간은 다르다. 남편은 다행이도 머리는 다치지 않아 정신적인 면에서는 정상이었다. 다만 생활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동안 가족의 헌신과 사랑, 남편을 도와주었던 고마운 분들 그리고 본인의 피나는 의지로 여태껏 지탱해왔다. 하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는 팬더믹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길다면 긴 남편의 투병생활이 본인은 물론 딸과 내게 힘들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늘 행복하고 감사했다. 남편과의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했기에 몸이 고된 건 문제되지 않았다. 남편은 가족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사람의 빈자리가 이렇게 넓은 지 무엇으로도 메꿀 수가 없다. 이제는 비 오듯 눈물이라도 쏟으며 펑펑 울 수도 있으련만 무엇이 두려워 울지 못하는지 고통스럽다. 사실 나는 남편이 사고로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남편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남편이 행여나 마음 약해져 생명 줄을 놓아버릴까 두려워서였다. 그 뒤로도 우리는 늘 조심했다.
사별한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건 그리움일 것이다. 그 다음은 후회와 자책인 것 같다. 끝나고 보니 왜 그리도 잘못한 것이 많고 후회스런 일들이 떠오르는지 모른다. 차라리 남편 곁에 가는 것이 이런저런 고통 겪지 않고 행복할 것 같은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부부간의 사별이 이리 힘든 줄 알았다면 과연 결혼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밤에는 꿈속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낮에는 두발로 땅을 딛고 살고 있을 때가 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허리를 쭉 펴 하늘 향해 손을 높이 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천국이 닿을 것만 같다. 이런 착각 속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한 동안을 살았다. 잠자리에 들면서는 어이없게도 “오늘 밤 꿈속에서 남편을 꼭 만나게 해 주세요”라며 어린 아이마냥 두 손 모우고 하나님께 떼를 쓰기도 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울에 갈 때마다 한 해가 다르게 노쇠해가신 어머니를 뵐 때 연로하신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때 어머니가 왜 그리 되셨는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이 아픔이 아닐까.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남편이 살아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일이다. 남편의 진실을 알면서도 남편이 얄미워 생떼를 쓴 적이 있었다. 그 몇 년 뒤 남편은 사고가 났고 그 일은 잊고 지냈지만 문득 문득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채 용서도 구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우리의 51년간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면 ‘이만하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남편의 공이 컸던 것 같다.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넘어갈 때가 많았고 화난 일이 있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워낙 성실하고 진실했던 남편 덕에 갈등 없이 어려움 모르고 살아왔다. 내가 좀 더 아내로써 성숙했다면 남편을 더 배려하고 더 아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내 손바닥에는 아직도 그의 체온이 남아있는데 다시 볼 수 없다니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이제는 훨훨 보내드려야 할텐데 놓고 싶지가 않다. 가끔 나를 쳐다보며 조그맣게 ‘고마워’하던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님이여, 사랑하는 나의 님이여 어이 하리까. 오늘도 보고픈 마음 숨길 수 없어 눈을 감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소서.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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